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oofs Oct 31. 2024

[장편소설] 붉은 눈 3부 -10-

국가라는 것은 무엇이요? 박사는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잘 알고 있겠지만.

*

 석철과 동식은 밤 10시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한 시까지 마르크를 데리고 두시에는 공단에   도착해야 한다. 그래야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동식은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쉽지 않을 것 같소. 동식이 말을 꺼냈다. 둘이서 가능하겠소? 아무래도 경비도 있을 것이고 말이지. 화약과 위험물질을 보관하는 곳인데

거긴 사회 안전성 소관이니 군보다는 그리 경비가 심하지 않아. 광산에 누가 신경이나 쓰나. 그냥 경비 인원일 뿐이야. 우리가 화약을 빼간 것을 알아도 관리자들은 잠시 졸았다고 말하겠지. 양의 차이가 있다고 하면 중간에 누가 빼먹었다고 고래고래 소리 칠 테고 자아비판을 요구하겠지 누구든 책임을 추궁당하기 싫을 테니.

 빠르게 처리하고 나와야 한다. 둘은 장평군 탄하리에 있는 광산 쪽으로 차를 몰았다.

조심하쇼. 여기 얼마 전 교전이 있던 곳이니. 이 근방이었지 우리가 개성으로 들어올 때 폭탄이 떨어지고구른 곳이. 그때 죽는 줄 알았는데 이곳을 다시 올 줄이야. 동식이 창밖을 보며 안심한 듯 말했다.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석철이 대답했다. 한시간정도 움직여 이들은 광산 입구에 도착했다. 근처에 차를 세우고 조심스레 움직였다. 건물입구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철문으로 된 정문은 살짝 열려있었고 옆에 간이 출입통제소가 있었다. 저 멀리 건물 두세 동이 보였고 평토기(주: 불도저) 2, 3기가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통제소에 가까이 가자 한 사람이 책상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것이 보였다. 조심스레 이동해 경비의 눈을 가렸다. 그는 갑작스런 침입에 화들짝 놀라 몸을 벌벌 떨었다.


한 번만 말하겠어. 잘 들으라. 석철은 그의 목에 칼을들이댔다. 차가운 금속성 물체가 경비의 목에 닿았다. 그는 몸서리를 쳤다. 경비의 목을 조금 찌르자 피가 흘러 나왔다.

너 하나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우리도 널 죽일 생각은 없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건 련속발파용 화약이다. 그거만 가져가면 된다. 많이도 필요 없고 건물을 하나 부숴야 하기에. 만약 인민의 영웅이 되어 보겠다고 쓸 때 없는 짓을 하면 우리도 어쩔 수 없지. 놀란 경비는 몸을 떨며 손으로 아래의 열쇄가 들어있는 상자를 가리켰다.

저저……안에 있소. 안으로 들어가서 왼쪽에 창고 건물로 들어가면 되오.

아니면?

뭣 하러 거짓말을 하겠소. 죽을 판에.

그렇겠지. 석철은 동식에게 고개 짓을 했다. 그는 열쇄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동식은 손으로 0자를 그렸다. 그의 말이 맞다는 것이었다.

음……석철은 손으로 경비의 목을 졸랐다. 잠시 후 그는 기절해 의식을 잃었다. 눈의 붕대를 풀어주고 엎드려 뉘었다. 누가 보더라도 졸다가 쓰러진 모양새였다. 석철과 동식은 부지런히 화약을 날라 차에 싣고 그 장소를 빠져나왔다.

이정도의 분량이면 충분 한 건가?

모르지. 안되면 다 써버리면 돼. 오늘 모든 일정을 마쳐야 한다. 시간은 한시 반 가까웠다. 석철은 개성시내로 가는 길 중간에 판문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검문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멘트로 포장된길은 수없이 차량을 울컥거리게 만들었다. 곧 비포장 길에 도착했다. 라이트를 끄고 신경을 곤두세워 천천히 그들은 앞으로 나아갔다. 봉동역과 선화역 사이로 차를 몰았다. 근처에서 박사를 만나기로 했다. 잠시 차량을 멈추고 헤드라이트를 두어 번 컸다가 껐다. 마르크에게 손 전화를 했다. 마르크는 걸어와 뒷 자석에 올랐다.


오늘 안으로 끝낼 수 있나? 마르크가 물었다.

가서 챙길 것이 있소. 나는 먼저 물건부터 챙기고 폭약설치를 도와주겠소. 이번에 자료를 확보하지 못하면 기회가 없어.

서둘러야 할 거요. 시간이 많이 없소. 동식이 말했다이들의 차량은 천천히 공단으로 나가갔다. 평화유지군이 주둔한 이후로 공단출입구의 검문은 형식적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비포장 이면도로는 검문이 잘 이뤄지지 않고 거리도 짧아 지름길로 제격이었다. 물론 길은 험했다. 잠시 후 암흑의 공간을 지나자 전구를 매달아 놓은 것 같은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목적지에 거의 다 온 듯 했다.

공단의 운영방식이 바뀌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야간경비 2명이 연구동과 시설 동을 돌아보고 있을 것이오. 연구동 인원을 먼저 처리해 어디에 묶어 놓으면 될 거요.  침묵을 깨고 마르크가 말을 꺼냈다.

해주를 거쳐 남포까지 간 적이 있었소. 해가 질 때 서해갑문에서 노을이 지는 광경을 봤지. 아마 잊지 못할 평생의 기억으로 남을 것 같소. 그때 실험을 함께 했던 당신들이 떠오르더군. 공단에서 벗어나 어떤 삶을 살지. 누군가를 위한 도구가 될 것인가. 그게궁금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같이 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소. 마르크의 말에 둘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이들은 묵묵히 앞을 보고 있었다.

박사, 우리가 박사 얘기를 사령관에게 한 적이 있소. 한번 만나 보는 게 어떻겠소? 박사가 생각하는 그런 뭐라 그랬지? 오래전 얘기했던 이상적인 공동체? 뭐그런 것을 만드는데 사령관이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뭐 그를 써먹을 수도 있을 거고. 서로 도움이 된다면 말이지. 그런 거 아니겠소? 아무튼 공단에 다 온 것 같소.


마르크는 특별한 말은 하지 않았다. 공단근처는 더 조용한 느낌이 들었다. 휑한 건물과 공간에 인기척이 없어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로변 가로등은 군데군데 켜져 있었다. 차량의 라이트를 끄고 이들은 움직였다. 동식이 먼저 시설동으로 움직여 경비실로 향했다. 경비한명은 경비실에서 무엇인가를 집중해 열심히 보고 있었다. 대 여섯 명의 여자들이 나와서 뭔가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쉴새없이 자막이 나오는 것을 보니 남한의 쇼 프로그램인 모양이다. 동식은 조용히 뒤로 움직여 그의 뒤통수를 힘껏 내려쳤다. 그는 풀썩 하고 쓰려졌다. 그의 손발을 묶어 경비실의 옷장에 가뒀다. 채 5분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에미나이가 이쁘구만 그래. 동식은 그 말을 끝으로 모니터를 꺼버렸다. 재빨리 밖으로 나가 석철과 마르크에게 상황을 알리고 다시 연구동으로 향했다.

건물의 대들보가 되는 기둥에 폭약을 설치해야하오 그래야 중심을 잃고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소. 박사는 일단 자료를 챙기시오. 나와 동식이 설치를 할 테니. 최대한 빨리 움직이시오.


둘은 정문으로 들어갔다. 경비는 tv를 커 놓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을 뜨고 주위를 살피기를 반복했다. 인기척이 나자 그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르크는 무시하고 바로 지하계단으로 향했다. 뒤따라오던 석철이 그의 목을 졸라 바로 제압하고 탕비실의 구석에 몸을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재갈을 물렸다. 석철은 동식이 있는 곳으로 재빠르게 이동했다. 마르크는 지하 출입문을 열었다. 단테의 희곡에 나오는 지옥그림을 밀고 지문 장치에 손을 대 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이곳에 왔지만 마치 어제 온 것 같은 생생한 기억이 떠올랐다. 중앙통제장치로 가서 컴퓨터를 살펴보았다. 메모리 장치를 찾아 연구내용에서 중요한 부분을 찾았다. 아직 본인의 아이디는 살아 있는 듯 했다. 재빨리 필요한 연구데이터를 옮겨 담은 후 지하 시설을 나왔다. 그 급박한 시간 마르크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또 다른 데이터 장치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지하시설 2층의 중앙 계단의 공간에 통제실이 있었다. 메인데크는 연구동과 각방을 모두 볼 수 있는 판옵티콘(주:일망감시시설)과 같은 구조로 설계되어 있었다. 지하 1층은 동물실험과 자원배치 그리고 실험을 위한 공간 및 각종 약품이 보관시설로 활용됐다.


지하 2층에 21호가 있다는 것을 마르크는 데이터를 옮기며 처음 알았다. 가장 마지막인 20호실 안에서 이어지는 문이 있었고 그곳은 마치 수조 시스템 같았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공기 정화장치 보존시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중이었다. 각종 실험을 하며 냉동이나 냉장 장치가 필요할 경우를 대비한 시설처럼 보였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비상전원장치가 연결돼 있었다. 마르크는 혹시 자신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을 듯 했다. 그는 20호실로 들어가 벽에 달린 문을 밀어서 열었다. 출입구와 같은 시스템이라고 하면 밀어서 열릴 것이다.


 ―아..

 마르크는 한동안 마치 유령을 본 것과 같은 충격에 빠졌다. 이런. 그 광경을 보고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밖에서 마르크를 부르는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마르크는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마르크는 아직까지 기괴한 모습을 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그 유리관은 무엇이란 말인가. 마르크는 기괴하고도 공포스러운 감정에 사로잡혔다.  어느새 동식이 연구동으로 이동해 마르크를 불렀다.
 

박사, 정신 차리시오. 시간이 없소. 이 폭약을 저쪽에 설치해 주시오. 그러면 기둥에는 모두 설치가 끝나게 되오. 그리고 준비가 다 되면 이동하면서 기폭장치를 눌러 터뜨릴 것이오. 건물을 폭발시키는데 얼마의 폭약이 필요한지 몰라서 다 넣었고 가스설비와 폭발을 증폭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최대치로 열어 놓았소. 작은 폭발이 생기면 이제 건물이 무너져 내릴 거요. 뭘 본거요? 뭐가 있길래 그렇게 얼이 빠져 있소?


마르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것은 자신이 벌인 일이 아니었다. 석철과 동식은 한명씩 경비를 어께에 메고 출입문 바깥의 공터에 던졌다. 곧이어 이들은 차에 올랐다. 출발과 동시에 기폭장치를 눌렀다. 순식간에 콰다당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화염이 건물위로 솟구쳤다.

가져온 화약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던 게로 구만. 동식이 중얼거렸다. 하늘위의 거인이 거대한 불꽃을 빨아들이듯 연기가 치솟았다. 폭발음은 생산시설동의 유리창을 깨버렸다. 애앵~ 공습사이렌과 같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정도 폭발음과 불꽃은 개성시내에서도 눈치 챌 정도 일 것이다.

평양과의 교전이 또 시작된다고 생각하겠구만. 동식이 중얼거렸다.

석철은 개성 시내 쪽으로 차를 몰았다. 마르크는 폭발광경을 오랫동안 보았다. 몇 년간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이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자신의 손에는 중요한 연구데이터가 들려 있었다. 대부분의 자료는 그 안에 있다. 마지막으로 본 210호 옆의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폭발로 인해  대량 생산해 쌓아두었던 마약은 다 불타서 없어졌을 것이다. 김수필은 이제 당분간 약을 만들 수 없다. 아니 저들은 시설을 개보수해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지도 모른다. 개성의 장마당으로 풀리는 양은 줄어들겠지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남한으로 내려가는 양도 줄어들겠지. 하지만 끝은 아니다. 누군가가 또 만들 테니까. 차는 그렇게 불꽃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이틀 뒤 석철은 마르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령관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마르크는 일단 그의 제안에 응했다. 김병철은 차를 보냈다. 김병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었다. 차량은 24사단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마르크가 노동 교화소에서 나와 처음 이동했던 그 장소였다. 석철은 이 모든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차량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는 갑작스레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눈의 시야가 붉어지는 듯 했다.


근육의 과도한 사용은 발작의 빈도를 높이고 몸에 무리를 주게 되오. 근육은 위축되고 붕괴될 것이오. 스스로 약물을 조절을 할 수 있어야 해. 마르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하자면 세포와 근육의 수명 일부를 당겨서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요. 그 과정을 늦출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 줄 테니 그대로 진행하도록 하시오. 과도한 근육의 사용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하오. 눈의 혈관이 터지면 근육은 반응하기 시작하오. 정문을 통과해 보초병은 석철에게 경례를 했다. 이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마르크와 석철은 연병장을 지나 계단을 올랐다. 묵직한 철문을 경비병 두명이 힘껏 밀어 열었다. 드드득 거리는 소음이 크게 들렸다. 시멘트로 된 바닥에는 붉은색 카펫이 깔려 있었고 이들은 곧 2층으로 이동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김병철과 부관이 그들을 맞이 했다.


어서 오시라요 박사.

 김병철이 인사를 건냈다. 그는 군인 같아 보이지 않았다. 흡사 오래된 노회한 정치인 같은 모습이었다. 사실 그렇기도 했다. 개성지역을 점령하고 당과 군을 장학하고 사회 안전성까지 영향력을 미쳐 일대를 장악해 나가는 것은 무력으로만은 불가능하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천천히 자신의 사람을 심고 관리를 해왔을 것이다. 아무리 김정일의 최 측근이었다고 하지만 감시가 심한 이 사회에서 이러한 능력은 그가 일반인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그는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몸에 붙는 인민복을 입고 있었다. 짧게 자른 머리는 절반정도는 흰색을 띄고 있었고 뭉툭한 콧날과 튀어나올 정도로 두툼한 입술은 강한 의지를 상대에게 느끼도록 했다. 흡사 김정일과 유사한 이미지였다. 그 이미지를 차용해 개성을 통치하는데 활용하고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드는 외모였다. 마르크는 손을 내밀어 그의 악수에 응했다. 김병철은 부관을 내보내고 마르크와 단둘이 마주 앉았다.

한잔 하시겠소? 그는 위스키를 따라 건내 주었다. 마르크는 잔을 받아 탁자에 내려 놓았고 마시지는 않았다. 김병철은 목을 축인후 잠시후 말을 시작했다.

박사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소이다. 공단에서 일하다 여러 사정이 있어서 기억을 잃었고 가까스로 살아남았다고. 강석철이 알려주더군. 그래 연구는 어떻게 할 거요? 강석철은 내 호위부대를 맡고 있지. 능력이 뛰어나. 군에서 저렇게 내쳐질 인물이 아니야. 새로 부임한 정치장교가 그에게 누명을 씌웠더군. 그것만 봐도 이 공화국의 군대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방증이야. 그건 그렇고 난 박사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그게 궁금하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난 박사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소.


 마르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군인답지 않은 친화력이 김병철의 장점인 듯 했다. 상대방의 능력을 인정하고 분위기를 만들어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어온다. 이후 원하는 바를 말하고 상대가 자신의 의도에 따라 실행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는 노련한 협상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성에 와서 많은 것을 보았소.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고 알고 있던 것과 많이 달랐소이다.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했고. 거꾸로 사령관님께 묻고 싶소. 사령관님은 왜 개성일대를 점령했소? 본인의 생존을 위해서인가? 무엇을 하려는 거요? 마르크는 김병철이라는 사람이 궁금했다. 저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은 김전호나 김병철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박사, 나는 말이요. 김정일의 최 측근으로 있었소. 알고 있겠지만.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누려봤지. 그런내가 스스로의 안위만을 위해서 일을 도모했을 것 같나? 뭐 부인하지는 않겠소. 김정은이가 집권하면 난 숙청되고 처형되겠지. 그건 어쩔 수 없지. 권력의 속성이니. 더군다나 말이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가진 것을 내려놓지 않으니까. 그런데 나는 의문이 있소. 과연 이 공화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것 말이요. 그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꺼냈다.


국가라는 것은 무엇이요? 박사는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잘 알고 있겠지만. 그 유명하다는 사람들의 얘기는 집어치우쇼. 국가는 국민들의 삶을 지켜줄 수 있어야 하오. 먹는 것을 해결해 줘야하고 그들이 최소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것이요. 계약을 한 것이니 말이요. 국가도 권력도 숭배 하는 게 아니오. 이용하는 것에 불과해. 하지만 김씨 부자가 장악한 이 공화국은 제 역할을 못하오. 김씨 부자에게 아부 떠는 인간들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인민들은 헐벗고 굶주려 있지. 국가를 위해서 헌신한 사람들. 국가를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답과 믿음을 줘야 하는 것이요. 인민들의 삶을 보았다고 했소? 어떻소 박사는 여기가 사회주의 낙원이라 생각하오? 잠시 후 마르크는 말을 꺼냈다. 그도 앞에 있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기 시작했다.


사령관의 말씀은 잘 알겠소이다. 장마당에서 마약을 팔고 수많은 사람들이 중독돼 죽어나가고 있소. 어린여자애들을 납치해 마약을 먹이고 매춘을 시키고 있고. 그것도 국가를 위한 것이오?

 물론 나도 알고 있지. 거기에 누가 붙어 있는지. 보위부와 퇴역한 군 간부가 힘을 쓰고 있는 것도. 하지만 뭐든 처음부터 잘되는 법은 없지 않소? 마약과 매춘문제가 이곳의 문제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건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오. 박사가 연구시설을 날려버린 것처럼 조만간 그들도 정리 될 거요. 이제 개성에서 불법적인 마약은 엄격하게 처벌될 것이고 곧 준비작업에 돌입했다고 보면 되겠지. 왜 기를 쓰고 위험을 무릅써가며 공단을 유지하고 확장해 나가려 했다 생각하시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으로 중독자의 수를 늘릴 필요는 없는 것이요. 김병철은 말을 계속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박사도 이곳에서의 연구가 원래 생각과 다르게 진행된 것 아니었소? 그래서 강석철과 함께 연구시설을 날려버린 것 아니요? 본인에게는 관대하면서 왜 개성의 상황에 대해서는 그 관대함을 거두는 것이요? 절차가 있어야하고 명분과 구실을 만들어야지. 그래야 인민들은 수긍할 것이요. 갑자기 자신의 지위와 밥그릇을 잃은 자들을 극한으로 몰아버리면 저들은 판을 뒤엎기 위해 또 계략을 꾸밀게요. 마르크는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야하는 그의 입장도 이해할만한 부분은 있었다.

 박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이요? 남으로 갈 것이요? 아니면 다시 미국으로? 나는 박사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소. 기억을 되찾은 후 북조선을 둘러봤다 했소? 무엇을 느낀 게요? 이곳을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은 없소? 난 그것을 원하오. 언제까지 외국군대가 이곳에 주둔할 수는 없을 것이요저들은 곧 이곳을 나갈 테고. 남조선 군대도 마찬가지겠지. 그럼 슬슬 다음을 준비해야 할 거요. 반대세력은 어디에나 있소. 나를 못마땅해 하는 세력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지만 그들은 또 나올게요. 공단을 유지하고 키워야 하는데 동의하지 않는 세력들도 있지. 남조선이 들어와 있는 것도 그렇고. 그들을 당장 다 처리할 수는 없지. 달래서 갈수 있는 한 같이 가야 할 거요. 그게 솔직한 내 심정이요.


그렇다면 무엇을 하면 되오?  마르크는 그의 의중을 알고 싶었다.    

박사는 아마도 내가 남조선 당국이 요구 한 것처럼 붉은 눈 군대를 만들어 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소인민들은 석철 일행을 붉은 눈으로 부르더군. 물론 인민의 군대를 두텁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오. 하지만 이곳 개성은 상황이 다르오. 그것보다는 이곳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선이요. 박사는 자본주의 경제도 알고 남한과 미국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고 있소. 나는 그 사회처럼 이곳이 그렇게 돌아가기를 원하오. 그 구조를 아는 사람. 일할 사람이 우리는 당장 필요 한 거요. 김병철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남조선에는 이제 뭔가 변화가 닥칠 것 같지 않소?    

무슨 말씀이요? 마르크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거기도 뭔가 바뀔 때가 됐다는 거지. 리무영이가 남측 안보실장과 회담을 하고 와서 말하더군. 김전호 실장은 사회혼란을 일으켜 달라 요구한다고. 그래서 실질적으로 공단수익은 비율을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더 가져올 수 있었소. 남조선 인민들은 약에 많이 취해 있다지? 그들은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별 수를 다 쓸 거요. 김정일을 비롯해 여기 공화국에서도 그랬지. 평양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저들은 감시체계를 더 꼼꼼하게 만들었소. 하지만 틈은 생기게 마련이요. 남조선도 마찬가지겠지. 그게 얼마나 가겠소. 박사가 남조선으로 간다 해도 할 게 별로 없을지도 모르오. 마르크는 묵묵히 김병철의 말을 듣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