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냐, 너.
그는 지난 몇 개월간 햇빛도 못 보고 야근을 한 사람처럼,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어 보인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은 조금씩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의 배꼽 부위에 알 수 없는 줄이 보인다. 그동안 안주로 수없이 접했던 곱창, 막창과 그 모양새가 비슷해 보인다. 갑자기 낯선 여자가 수줍은 듯 내게 가위를 건네며 자르라고 미소 짓는다. 가위를 건네받고 호기롭게 자르려는데 생각보다 질기다. 가위 탓인지 기분 탓인지 2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겨우 분리에 성공한다.
비로소 그와 아내의 연결고리를 끊는 순간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VS 아내 배 속에서 온 남자]
달라도 너무 다른 그다.
난 O형인데 그는 B형으로, 혈액형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다. 생식기만 같을 뿐, 전혀 다른 그와의 하루하루는 지옥과 또 다른 지옥을 넘나들며 아찔한 진자운동을 반복한다. 과묵한 그는 뭘 물어봐도 늘 대답이 없다. 말을 걸어도 장난감을 보여줘도 옅은 미소만 띤 채 말이 없다.
[악마를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늘 그랬듯이 경건한 자세로 기저귀를 막 갈고 있을 때였다. 기존 기저귀를 벗기고 새 기저귀를 손으로 집는 순간, 세상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따스함이 얼굴에 직사광선처럼 느껴졌다. 그의 오줌발은 내 손과 눈보다 훨씬 빨랐다. 시원하게 내 얼굴에 오줌을 싸면서, 깔깔대며 자지러지게 웃던 그의 모습은 천사와 악마의 어느 경계쯤으로 보였다. 수치스러움과 억울함으로 고통받고 있을 무렵, 등 뒤에서 웃고 있던 아내의 모습에서 진정한 악마를 보았다.
[불효자의 아빠는 웁니다.]
그는 태어날 때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라는 질환을 선물로 가져왔다.
그냥 몸만 와도 괜찮은데, 굳이 선물까지 준비해온 정성에 폭풍 감동받았는지 아내는 초반에 자주 울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앞으로 이런저런 일로 울 일이 종종 생길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있었나 보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고,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원래 그런지 그가 유별난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순간부터 자주 아팠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퇴원을 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평화롭게 입원 중이던 어느 날 소아병동에서 사건이 터졌다. 그는 여전히 주삿바늘에 예민한 상태로 처치실에 들어갔다. 주사를 다 맞고 나가려는 찰나.
“어머!”
간호사는 흠칫 놀라며 짧은 외침을 내뱉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가, 누가 봐도 20대 초반으로 보일법한 앳된 간호사의 엉덩이를 만지고 (주무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억울했지만, 대신 간호사에게 고개 숙여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몇몇 국회의원들이 자녀가 본인 얼굴에 똥칠하는 사고 쳤을 때, 대신 고개 숙여 연신 죄송하다고 코스프레하는 것처럼 나도 최선을 다해 사과했다. 나의 진심 어린 사죄에 감동받았는지 그 간호사는 다행히도 선처를 해 주셨다. 그렇게 그는 잠재되어 있던 본능을 하나씩 드러내고 있었다. 불효자는 웃고, 나는 울었다.
[28개월, 아직 끝나지 않은 약정기간]
스마트폰은 24개월이 지나면 약정기간이 끝나는데,
2년 하고도 4개월이 더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그는 여전히 건재하다. 아니 날이 갈수록 크고, 난 늙고 있다. 서로 처음이라서 많이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늘 그렇듯 우린 아무튼 해내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덕분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다 좋은데 굳이 바라는 점이 하나 있다면,
'이젠 서로, 각자 혼자만의 시간을 좀 가져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처음으로 우리에게 찾아온 날, 처음으로 웃어준 날, 처음으로 이유식 다 흘리고 먹던 날,
처음으로 나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던 날, 첫 생일. 그와 함께 맞이한 모든 날이 좋았다.
그리고
그가 나를 처음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나는
그렇게 ‘아빠’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