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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을 깨. 그냥 느껴.

by 틔우머
영화 : 스탑메이킹센스


나에게는 셜록홈즈 같은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모든 것에 의미를 찾고 부여하는 습관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대중교통을 탄다. 기사님이 튼 라디오에서 우연히 어떤 노래가 흘러나온다. 운명처럼, 마치 그 가사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난리 난다. 그 사람이 언급하는 모든 것을 찾아본다. 왜 이 노래를 좋아할까.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할까. 그를 해석하고 분석한다.


고민을 가득 안고 요가나 명상 수업을 들으러 간다. 내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선생님이 고민을 관통하는 말을 건넨다. 이건 분명 신의 계시임이 틀림없다.


이렇게 나만의 의미를 찾고 해석하며 사는 건 재미있지만, 때로는 ‘지금 이 순간’을 놓치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도 그랬다.

기타 소리와 함께 노래가 시작됐는데 이상했다.

삑사리가 나도 그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가사를 유의 깊게 봤다. '나에게 와닿는 가사가 분명 있을 거야.'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봐도, 웬걸,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그의 광기 어린 눈과, 헤드뱅잉을 하며 코러스 하는 그녀들, 알 수 없는 춤을 추는 그들을 보며 무엇을 말하려는지 꼭 이해하고 싶었다. 무슨 의미일까... ?


모르겠다. 도무지, 모르겠다.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자 알게 된 건, 몸은 정직하다는 것이었다. 발은 이미 음악에 맞춰 박자를 타고 있었고, 어깨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이 밴드가 말하고자 하는 걸 알게 됐다. 영화 제목 그대로였다.


Stop Making sense.

틀을 깨. 이해하려 하지 마.

그들은 말이 안 되는 것들을 보여줬고, 보는 사람은 그저 느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음악은 신체적인 것이고, 종종 머리보다 몸이 먼저 이해한다"라는 데이비드 번의 말처럼, 이 또한 명상이었다.


삶에서도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머리로 이해하고 해석하려 애쓰는 순간 내 안의 틀에 갇혀버린다. 경계는 점점 단단해진다.


이때 명상이 내 안의 틀과 경계를 바라보고 지금을 온전히 느끼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걸 발견하게 한다.


토킹헤즈의 공연처럼,

매 순간을 생경하게, 그저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내 안의 틀과 경계를 하나씩 걷어내면서.

말이 안돼도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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