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이름은 아빠?
고개를 뒤로 한 참 젖혀야만 천장을 볼 수 있는 공항은, 내부로 쏟아지는 빛과 튼튼한 조형물이 어우러져 깨끗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도착과 출발을 알리는 대형 전광판의 숫자와 항공기 글자들을 보고만 있어도 왠지 모르는 설렘이 느껴지는 곳. 내가 떠나는 것도 아닌 것 만, 바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덩달아 즐거움이 전해졌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또 떠나거나. 다들 배낭가방에 한가득 짐을 메고 걸어가는 모습들이 활기차보였다.
둘째 딸이 6개월 인턴으로 채용되어 캄보디아로 떠나는 날이다. 기다랗게 늘어선 줄은 키오스크가 많아져서 금방 금방 줄어들었다. 25Kg짜리 캐리어 2개를 위탁수하물로 부치고 나니 탑승시간까지는 꽤 여유가 있었다. 남편은 수하물까지 부치고 나니 급격히 말수가 줄어들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빠진 게 없는지 확인하거나 25Kg에 맞춰 수하물을 부치는 일을 다하고 난 후 이별의 순간이 왔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간단히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매 끼니를 거르는 법이 없는 남편이 웬일인지 자기는 식사를 안 한다는 것이다. 아침을 먹은 게 소화가 안된다는데 평생 소화제라는 걸 모르고 사는 사람이 갑자기?. 시간은 벌써 오후 3시가 다 되어 가는데 말이다. 눈치가 빠른 둘째 딸은 아빠의 그런 마음을 이해했는지 장난스레 이런저런 농담을 걸어주곤 한다. 물만 마셔대던 남편은 일행을 만나러 가는 딸의 뒷모습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결국 울컥하며 눈물을 쏟고 말았다.
운다고? 이게 울일인가? 싶었다. 이민을 가는 것도 아니고, 오랜 기간 떠나는 것도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드는 나와 큰 딸은 눈을 껌뻑이며 입술을 씰룩이며 웃음을 꾹 참았다.
이런 일로 우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남편의 감성을 지켜줘야 했기에 우린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몇 년 전 내가 회사에서 한 동료로 인해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낼 때였다. 시간이 약이겠거니 생각하며 지내오다가 도저히 견디기 힘든 시기가 와서 나는 퇴사를 하기로 마음먹고 남편에게 의논 겸 속상한 일을 얘기했다. 그때 내가 남편에게 바랐던 마음은 누구의 잘잘못보다는 나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길 바랐었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아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에 화가 났는지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그런 같잖은 것들 하나 제압하지 못하냐고'
지금도 그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의 남편 말 때문인지 공감능력과 다정함이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버린 걸까? 남편의 눈물이 너무나 어색했다. 하지만 나는 남편처럼 말하지 않았다. 상황은 물론 다르지만.
" 여보 우리 딸 너무 멋지지 않아 인턴이 해외 파견 나가고, 더 멋지게 성장해 올 텐데 울지 마요"
내 말이 썩 마음에 와닿지 않았는지 남편은 오후 내내 멍하니 거실에 앉아 있다가 늦은 저녁 EBS에서 방영해 주는 '장수상회'라는 영화를 시청했다. 특별히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지만 딸이 도착할 때쯤 전화 통화를 하기 위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치매에 걸린 남편을 위해 가족들은 어머니를 내세워 새로운 만남을 이어간다. 남편의 옛 기억을 되살리려는 아내와 자녀들의 에피소드를 그린 내용이다. 가족, 치매, 첫사랑, 그리고 자식의 이야기까지.
그런데 극 중 남편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대사가 있었으니.
"자식은 묵직한 돌덩이가 가슴 한편에 들어앉은 것이다"
하필 그 대사가 울고 싶은 남편의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 파버린 것이다. 어랏 또 울어? 하긴 이 장면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기도 했다. 영화에서 읊조린 대사 때문이기도 했고, 자식을 멀리 떠나보낸 아빠의 부정이기도 했을까. 남편은 그날 밤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다. 2시간 시차라 평소보다 더 늦은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도착 여부를 묻고, 아침 출근길에 연락해서 밤새 별일 없었는지 확인을 한다. 모기는 없는지. 바퀴벌레는 안 나왔는지. 에어컨 가동은 잘 되는지. 문단속은 잘했는지.
"아빠 여기 내 방보다 더 좋으니까 걱정 마요"라며 안심을 시켜보지만 궁금할 때마다 바로바로 전화하는 아빠의 성격 때문에 딸은 약간의 피로감 마저 느끼는 것 같았다. 급기야 농담반 진담반으로 아빠에게 3일에 한 번씩 전화하라는 부탁까지 했지만 소용없었다.
딸이 떠나고 일주일쯤 지인 결혼식에 초대되어 방문한 예식장에서도 또 다른 아빠의 눈물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딸과 친정엄마의 눈물 바람이 흔한 모습이었는데 요즘은 아빠와 딸로 그 모습이 바뀌어 가는 것일까. 그날 신부의 아버지는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다. 신부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에 첫발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초로의 아빠는 연신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늦둥이로 딸 하나를 두고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은 제 짝을 찾아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게 맞건만, 아빠는 아픈 엄마와 함께 살자며 오죽했으면 결혼하지 말라고까지 했을까?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싱글거리는 신부와는 달리 신부의 엄마는 웃음도 눈물도 없이 어느 기억 언저리를 찾아내려는지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혼주석에 쓸쓸히 앉아 있다. 사연을 모르는 사람들은 신부 엄마의 미동도 없는 표정과 행동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곤 저마다 쑥덕이곤 했다. 버진로드의 끝에서 신랑에게 딸의 손을 건네줘야 하는 신부의 아버지는 딸의 손을 잡고 펑펑 울며 차마 그 손을 건네지 못하고 있다. 하얀 장갑보다 더 희어진 머리칼이 왠지 힘없이 축 늘어져 보였다. 연신 눈물을 닦아대는 신부의 아버지의 가냘픈 어깨가 살짝 흔들렸지만 새신랑은 야속하게 신부의 손을 덥석 잡고 돌아서고 만다. 장인어른 한번 안아드렸으면 하는 아쉬움뿐.
그런데 우리 집 중년 남자 아까부터 부스럭 대더니 손수건을 펼쳤다 접었다 해댄다. 이것 참 섬섬옥수 같은 내 손이라도 내밀어야 되는 건가? 언제일지 모를 딸 결혼식에는 중년아빠는 어떤 모습일까? 벌써부터 눈물바람을 하는 걸 보니 아빠 손 잡고 입장하면 대성통곡할 것 같은데, 엄마가 딸 손을 잡고 들어가야 하는 것으로 예식의 콘셉트를 바꿔야 하는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눈물 많은 F(MBTI - 감성이 풍부) 남자.
이 남자, 오늘 저녁도 딸과 통화를 할 텐데 명랑 쾌활한 딸의 모습을 보면서 애틋함에 가득 차 또 울컥할 것이다. 그런 아빠의 눈물이 벌써부터 내 눈앞에 그려진다.
대문사진출처:tom-pumford-T5 lmpSYxnSU-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