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3 댓글 1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행복이 날아온다

호접란(꽃잎이 나비모양 닮았다)

by 랑지 Mar 15. 2025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선물로 들어오는 화분은 넘쳐 났었다. 지금 시절에야 김영란법이니 하며 화분이나 화환을 잘 보내지 않지만 그 이전에는 정말 어마 어마 하게 들어왔다. 한 사무실에 30개 50개씩 난(蘭) 화분이 들어오면 빛이 들어오는 창가자리에는 일렬로 난초를 가득가득 채워 놨다. 물 주기 담당은 모두 여직원들 몫이었다. 돌아가면서 물 담당을 해보기도 했지만 사무실 온도나 기후에 맞지 않았는지 난초들은 시름시름 앓다가 누렇게 말라갔다. 한 뿌리 두 뿌리 뽑아 내다보면 어느새 밑동만 버석거리며 남아있게 된다. 물 준답시고 들고 왔다 갔다 하며 깨 먹은 화분도 꽤 된다. 

    

아파트 생활을 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야심 차게 화단을 만들어 정원을 꾸몄다. 갖가지 나무와 화초 들을 베란다에 심고 정글 숲을 만들 작정이었다. 식물을 가꾸고 기르는 것으로 삭막한 서울 생활에 정서적인 도움을 바랐다. 하지만 내 정성으로는 정글은 커녕 사막이 되고 말았다. 논밭의 곡식들도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익어간다는 데 우리 집 화초는 관심도 없고 말 한마디 건네주지 못한 채 말라가고 있었다. 바쁜 직장생활 핑계로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었다. 화초들은 물을 너무 한꺼번에 많이 준탓에 익사해서 죽고, 때론 너무 무관심하게 놔둔 탓에 말라갔다. 또 다른 식물들은 바람이 부족했던 건지 햇빛을 덜 받았던 건지 저마다의 부족함으로 한두 개 뽑아내다 보니 결국 화단의 식물들도 모두 다 들어냈다.


그렇게 식물을 잘 키워내지 못하는 똥손인데 봄이면 푸릇한 생명을 피워내는 식물에 마음이 팔랑거려 매년 봄이면 화원을 기웃거리며 영산홍이나 쟈스민을 들여놨다. 이번에는 잘 가꿔보리라 다짐하면서 물 주기며 바람 온도등 학습해 오며 각오를 단단히 한다. 처음 피워낸 꽃이 지면 그다음부터는 시들해지고 두 해를 넘기지 못했다. 빈 화분만 베란다에 쌓여가고 이제는 정말 식물은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해 시장길에서 화분을 파는 노점상을 보았다. 작고 큰 식물들이 또 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비닐 화분에 담겨 있는 작은 호접란이었다. 넓죽한 잎사귀가 꽤나 두툼해서 강인해 보였고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된다는 아저씨의 설명에 덥석 안고 들어왔다.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과연 호접란은 생명력이 강했다. 

넓은 잎사귀도 손수건으로 정성스레 닦아주니 반짝이며 윤기를 냈고 내 손길에 보답이라도 하듯 표현하기 힘든 색감을 내뿜으며 화려한 꽃을 피워냈다. 너무나 감탄하며 거실 한가운데로 갖다 놓고 오며 가며 쓰다듬고 기뻐해줬다. 


대부분의 꽃들은 열흘 못 넘기지만 호접란은 한 달은 넘게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한다. 우아하고 섬세한 모습으로 말이다. 때가 되니 꽃은 시들었다. 꽃이 진 자리의 꽃대는 또 하나의 넓은 잎사귀를 내뿜으며 자리를 넓혀갔고 뿌리를 든든하게 채워갔다. 겨울엔 얼지 않게 실내에서 보호를 했다. 또 한 해를 살아내려는지 호접란은 푸른 잎의 굵은 줄기를 내밀면서 화려한 꽃을 피워 올렸다. 그렇게 호접란의 꽃은 우리에게 두번씩 찿아왔다.


추위가 막 끝나고 바람 끝에 아지랑이가 묻어날 때쯤 한 번 피고, 한 여름 강한 햇살에 더 짙은 초록잎이 무성해지면 또 한 번 불태우는 꽃. 볼 때마다 색감도 달라지고 꽃 수술도 더 풍성해 보인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며 나비처럼 나에게 날아오는 모습 같다. 꽃말처럼 말이다. 넓은 잎사귀를 흰 무명천으로 닦아주면서 감성적인 대화를 시도해 본다. "아름다운 꽃 피워 줘서 고마워." 

아무 대가 없이 이토록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식물을 보니 무한한 겸허함이 느껴진다. 

영화 레옹 (이미지출처-네이버영화)영화 레옹 (이미지출처-네이버영화)

    

영화 '레옹'을 보면 마틸다는 쫓기는 순간에도 아끼는 화분을 한 순간도 놓지 않는다. 생명의 대한 예의, 그 식물에게서 받아들이는 영혼의 향기를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식물을 아끼고 돌봄으로써 그 예의를 가지는 것, 하찮아 보이는 식물에도 생명에 대한 마음을 다해 바라봐주는 것. 봄을 맞는 내 마음에 호접란의 꽃 색이 물들듯이 들어온다. 


호접란에 예의를 다하면서 마틸다의 순수한 마음을 가져 본다. 호접란의 꽃말처럼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며 훨훨 날아가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그리움 되살리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