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정말로 공부 잘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공부 방법이 있다. 그리고 최근 여러 영상이나 저서들을 통해 다양한 공부 방법들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강의들의 대부분은 실전에서 적용하기 매우 까다롭다는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학생은 10시간씩 공부할 수 없다. 또 10시간을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그 시간에 집중할 수 없다. 사실 이러한 측면에서 공부가 유전적인 영향이 강하게 작용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겐 10시간을 앉아 있는 것도, 그 시간의 대부분을 집중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유전적으로 타고난 사람만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앞선 장들에서 끊임없이 이야기 하였듯이,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지능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조금 더 풀어보자면, 필자는 기본적으로 시험에서 '받을 수 있는 점수'는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받을 수 있는 점수'가 '받아 온 점수'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차이는 시험 당일의 컨디션이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그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공부량의 총량'을 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지간한 시험에서는 모두 100점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재능 있는 학생은 몇 주만 공부해도 그것이 가능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려야 한다. 효율적인 공부방법이란 바로 이 '달성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시켜 준다.
따라서 '시간 절약'은 결국 '지능의 상승'과 같은 의미가 된다. 모두가 정해진 날에, 정해진 문제로 시험에 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능이 높아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시간을 모두 쓰지 않으면 100점을 받을 수 없고 머리가 나빠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시간을 모두 쓴다면 100점을 받을 수 있다.
학교 시험은 '고시'처럼 모두가 절박하고 또 열심히 하는 시험이 아니다. 그러니 머리를 탓하고 있을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공부한다면 대부분은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장에서는 다양한 공부 방법들을 소개하려 한다. 그냥 닥치는 대로 앉아서 줄구장창 공부만 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방법들을 알고 또 훈련하여 공부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아껴주기 때문이다.
사실 이 첫번째 방법은 필자가 아이들에게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공부는 기본적으로 솔직해야 한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 붙어서 결국은 '알아 내야' 공부를 잘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는 과목에만 시간을 투자하고 못하는 과목은 하기 싫어한다. 이유는 당연히 그 과목을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못하는 과목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잘하는 과목에서도 '자신이 못하는 부분'은 공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이 못하는 과목, 즉 모르는 게 많은 과목을 두려워 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용기라고 부르지만, 학자들은 이것을 '결정'이라고 부른다. 제일 못하는 과목을 공부하는 것은 용기라는 거창한 단어가 붙을 필요가 없다. 그저 그 과목을 공부하겠다고 결정하고, 실행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제일 못하는 과목을 제일 먼저 제일 많이 하게 된다면, 평균적인 점수가 상승하게 된다. 2등급이었던 과목을 1등급으로 올리는 것과, 4등급인 과목을 3등급으로 올리는 것은 둘 다 동등하게 1등급의 상승이고 평균 등급에 공평하게 반영된다.
하지만 2등급이 1등급이 되는 것보다, 4등급이 3등급이 되는 것이 압도적으로 쉽다. 따라서 같은 시간이 주어졌을 때, 2등급 과목 하나를 1등급으로 높이는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4등급 과목 두 개를 각 3등급으로 높이는 것이 평균 등급에 더 높은 상승을 보이는 것이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시간 절약'은 곧 지능의 상승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제일 못하는 과목을 제일 먼저 제일 많이 하는 것은 시간 활용에 있어서 압도적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방법에 숙달된다면, 매주 제일 못하는 과목이 바뀔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단계에 접어들게 되면 자신이 모르는 것을 지속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다.
이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내포한다. 이러한 공부 방법이 '앎의 질'을 높인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공부는 전체에서 시작해 시험에 출제되는 부분으로 점점 집약된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찾아 가는 공부는, 자신이 '그것을 잘 모른다.'라는 인식을 하기 위해 '이것이 출제된다.'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즉, 자신이 '모른다'라는 것은 그것이 시험에 '나온다'와 같고, 이러한 '모른다'를 줄여나가는 공부방법은 공부해야 할 총량을 줄여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제일 못하는 과목을, 제일 먼저, 제일 많이 하기를 추천한다.
학생들의 공부를 방해하는 가장 나쁜 놈은 바로 '정각 관념'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정각'에 대한 관념이 강하다. 어떤 일을 할 때에 웃돈을 얹어서라도 일정한 수로 맞춘다든지, 약속 시간은 항상 30분 단위의 정각이다. 하물며 거리를 표현할 때도, 대략 1시간, 1시간 반 등으로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각 관념은 학생들을 좀 먹는다. 예컨대, 특정 과목을 1시간 23분에 끝낼 수 있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학생들은 1시간 23분이 걸리는 일을 1시간 30분에 맞추려 한다. 사실 더 일반적으로는 2시간에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사실은 37분을 더 공부할 수 있었음에도 2시간을 다 써버리고서야 공부를 마무리 하게 돼버리고 이러한 과목의 수가 많아질수록 실제 공부량이 총 공부시간에 턱없이 미달되어 버린다.
또한 정각 관념은 '휴식 시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학생들은 공부하다 쉬는 시간에 주로 핸드폰을 한다. 가만 살펴 보면 보통 영상들을 보게 되는데, 문제는 이 영상들의 길이가 천차 만별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학생 A가 1시 50분부터 쉬기 시작했고 2시까지 쉬기로 했다고 가정하자. 그럼 학생은 휴대폰을 켜고 영상을 하나 시청하니 1시 57분이 되었다. 이때 학생이 선택하는 방법은 다른 영상을 하나 더 시청하는 것이다. 학생은 생각한다. '이것만 보고 꺼야지.' 하지만 실제 영상이 끝나고 나면, 2시 00분이 아니라 2시 1분 내지는 3분이 되어 있다.
그럼 학생들은 다시 '딱 2시 5분까지만, 아니 10분까지만 쉬어야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영상을 보면 2시 9분이거나 12분 쯤 된다. 그럼 이 시간이 15분으로 늘어나고 다시 30분 그러다가 한 시간을 내리 쉬게 돼버리는 것이다.
이렇듯 정각에 대한 관념은 엄청난 시간 낭비를 야기한다. 여유가 필요한 것은 '삶'이지 '학업'이 아니다. 그리고 삶의 여유를 느끼고 싶다면, 정각을 피해서 빨리 그날의 공부를 끝내고 집에 가서 쉬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이 방법은 학업에 아주 능숙한 학생들이 사용하면 좋은 방법이다. 특히 시험이 임박했을 때 사용하기를 추천한다.
과목 스윗치(Switch)란 말 그대로 과목을 바꾸어 가며 공부하는 것이다. 이를 앞선 '정각 피하기'와 연결하면 대략 한 과목을 공부하는 데에 '37분 공부 - 2분 휴식'의 덩어리가 형성된다. 다시 말해 39분에 한 번 공부하는 과목이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이 효과가 있는 이유는 인간의 행동 메커니즘을 생각하면 쉽다. 인간은 언제 움직이고 언제 게을러질까? 목 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인간의 행동 메커니즘을 잘 설명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행동한다.
날씨가 추우면 추위로 인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행동한다. 더우면 더위를 피하기 위해 행동한다. 허기가 지면 허기로 인한 불편을 피하기 위해 행동한다. 세상의 모든 발명과 진보도 다 이 인간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반면 인간은 만족 상태에 놓일 때 게을러진다. 조금 어렵게 말하면 심리적 긴장이 이완되는 것인데, 배가 고프면 예민해지고 배가 부르면 몸이 나른해지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이다.
이를 37분에 적용해 보면, 주어진 시간은 자신이 해야 할 공부를 완수하기에는 몹시 짧은 시간이다. 따라서 과목을 변경하게 되면 인간은 심리적 불편함을 느낀다. 해야 할 일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과목을 바꾼 후 다시 처음 과목으로 돌아왔을 때 강한 행동력을 갖게 된다.
이를 조금 더 보기 쉽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A: 37분 -> B: 37분 -> C:37분 -> A: 37분'
이러한 과정은 오늘 해야 할 A과목 공부가 끝났을 때에야 불편함이 완벽히 해소되게 만든다. 즉, A 한 과목을 공부하는 데에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을 집중하며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1시간 4분이면 할 일을 1시간 반, 2시간까지 끌고 가는 것이 정각을 지키는 사람의 습성이다.
사실 정각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공부하는 모든 시간을 집중할 수 없다. 따라서 집중했을 때 1시간 4분이면 할 일이 평소에는 1시간 반, 2시간 가까이 걸리게 되는 것이다. 과목 스윗치는 과목을 공부하는 시간 내내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해준다. 주어진 시간은 짧고, 불편함의 크기는 크기 때문이다.
또한 이 방법의 장점은 '이완의 최소화'에 있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A,B,C 세 과목을 공부해야 할 때, 각 한 과목씩 완벽하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A과목을 완벽하게 끝냈을 때 인간은 마치 배가 부른 것과 같은 '이완'상태에 놓이게 되며, 이러한 이완은 다시 B과목에 집중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소모되게끔 유도한다. 하지만 세 과목을 바꿔가며 공부하는 경우는 이러한 이완의 시간을 최소화 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복습에 대해서는 워낙 유명한 이야기기 때문에 짧게 줄이도록 하겠다. 복습은 한 번 학습한 내용을 최대한 빨리 최대한 자주 진행할 때에 효과적이다. 이는 수많은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으며 이에 대한 의심을 하기는 어렵다.
다만 복습을 진행하는 '시간'은 '공부'에 포함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게 필자의 조언이다. 다시 말해 무언가를 복습하는 시간은 자신이 '공부'하겠다고 앉은 곳에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는 쉬는 시간 2~3분과 등하교 시간 등에 복습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러한 시간들은 실제로는 낭비되는 시간이고 공부에 집중하기에는 부적합한 시간이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이라도 반복적으로 정보가 노출된다면, 복습의 효과는 집중적으로 복습하는 것과 큰 차이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복습'을 토대로 한 '공부'는 공부다. 다시 말해, 개념의 이해가 부족했던 부분을 복습하는 과정에서 더 공고히 하고 문제를 풀며 완전히 체화하는 것은 복습이 아니라 공부다. 이를 인지수행이라 하는데, 이러한 인지 수행의 경우는 짧게 자주 하는 것보다는 하루를 마무리 할 때에 하루의 총 공부를 정리하며 진행하는 것이 좋다.
가끔 노트 정리를 하는 학생들을 보면, 노트 정리를 다 한 후에 그것을 보며 외우겠다는 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노동'이지 '노력'이 아니다. 노트 필기를 하는 시간 동안 '시간 소모'만 될 뿐 공부를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트 필기를 할 때에는 반드시 '쓰면서 외운다.'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노트 필기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용을 재편집 해야 한다. 교과서나 교재에 제시된 것은 '설명문'의 형식이지 '암기의 형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것을 '잘 설명하는 글'은 '잘 외워지는 글'과는 다르다. 따라서 학생들은 노트 필기를 하기 위해서 내용을 재편집하며 자신이 '잘 외워지는 형식'으로 바꿔주어야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그것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쓰면서 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필기만 줄구장창 하느라 시험 기간의 대부분이 지나가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어설픈 완벽주의는 결국 일을 시작도 못하게 한다. 실제로 어떤 행동을 자꾸 미루는 사람들을 모아두고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연구하였더니 그들이 '완벽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일을 반드시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 탓에 완벽하지 않게는 어떤 일도 진행해 내지 못했다.
노트 필기는 그러한 어설픈 완벽주의의 가장 큰 표현이 될 수 있다. 알록달록한 글씨로 마치 그림 공부를 하듯 아름답게 노트 필기를 하는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그 완벽함을 추구하다가 공부할 시간을 모두 빼앗기고 만다. 혹은 방대한 양을 노트 필기 해야 한다는 강박 탓에 그 과목에 대한 공부 자체를 게을리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노트 필기는 반드시 '쓰면서 외워야만' 한다. 쓰면서 외우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로 노동일 뿐 노력이 아니다. 꼭 필기를 '다 하고' '외우겠다'는 어설픈 완벽주의는 결국 일을 망친다. 그러므로 노트 필기를 할 때에는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1. 자신이 잘 외워지는 방식으로 내용을 재편집할 것
2. 반드시 쓰면서 외울 것.
교재를 몇 회독을 하건, 노트 필기를 깔끔하게 하건 무엇인가 방대한 양을 암기하기 위해서는 '자기 설명'이 함께여야 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결인데, 교재에 수록된 글들은 잘 설명된 글이지 잘 외워지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어떤 것을 외우기 위해 잘 설명된 글을 재편집 하였다면, 그것을 외울 때에는 다시 '자신 스스로에게 설명'하며 외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정 정도의 수준을 넘어간 시험에서는 단순히 'A=B'꼴로 암기만 해서는 고득점을 하기 어렵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험은 바로 그 일정 정도의 수준을 넘어간 시험이다. 따라서 단순히 어떤 내용이 있는지만을 외워서는 고득점을 할 수 없고 그 정보와 정보들 사이의 연결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무엇인가를 암기하려 할 때에는 재편집 된 정보를 자신만의 언어로 설명하는 '자기 설명'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인간은 대상을 설명할 때 어떻게 설명할까? 아주 간단하게 취미에 대해 설명해 보도록 하자. 그럼 우리는 일반적으로 '난 영화를 좋아하는데, 특히 멜로 장르의 영화를 좋아해. 그 대표작으로는 타이타닉이 있는데 그 영화에서 디카프리오가 정말 멋있었어.'라고 설명할 것이다.
이러한 예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설명할 때, 즉 상대가 특정 정보를 "집어 넣길 바랄 때"는 큰 범주에서 작은 범주로 나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어떤 정보를 기억하는 형태가, 큰 범주 안에 작은 것들을 집어 넣는 방식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따라서 어떤 정보를 암기할 때에는, 큰 범주에서 작은 범주로 나누어 외우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 노트 필기를 하건 자기 설명을 하건 세세한 것들을 먼저 외우려 하지 말고 큰 범주의 것들을 다 외운 후 세세한 것들을 외우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세간에 알려진 '목차 외우기'나 '백지 복습'은 모두 이와 같은 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은 모두 가장 먼저 큰 범주의 정보를 외우고 그 안에 작은 범주의 정보를 집어 넣으려 하기 때문이다.
'집중'은 공부의 핵심이다. 10시간을 공부해도 집중하지 못했다면 별로 소득이 없을 것이고 1시간을 공부해도 집중해서 공부했다면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나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학생들은 필자에게 '집중이 안 돼요.'라고 말하곤 하는데, 필자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이들을 엄하게 타이른다.
집중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만약 집중이 되는 것이라면, 모두가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집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그것이 곧 바로 집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집중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하지만 집중을 하고 싶어도 유독 집중하기 어려운 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 과학자들은 이미 오랜 기간 연구를 진행해 왔고 그에 따른 대답을 '집중을 연기'하는 것을 제시하였다.
집중을 연기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집중을 하는 듯한 모습을 연기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엄청난 속도로 고개를 돌리고 책장을 넘겨가며 무언가를 옮겨 쓰는 사람을 보고 있다면, 여러분은 누구나 그 사람이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집중을 연기한다는 것은 위의 예시처럼 누가 봐도 집중을 하는 사람처럼 연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집중을 연기하는 시간이 2분 정도 지속된다면, 자신도 모르게 이미 집중하고 있게 된다.
그러므로 유독 집중하기 어려울 때에는, 집중하는 연기를 함으로써 실제로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