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썼던 ..
"
내가 사람을 죽였어
"
오랜만의 주말이었다.
5 일이 지나면 자연히 따라오고 반복되는 것이 주말이지만, 지난 몇 주간 동민에게는 주말이 찾아오지 않았다. 첫째 주가 지나면 둘째 주가 따라오고, 셋째 주가 또 넷째 주가 따라올 뿐인 몇 달 간이었다. 동민이 첫 프레젠테이션에, 첫 회식에, 첫 마감에 주말을 미뤄둔 동안 주연도 그녀의 몇 달들을 지나 보냈다. 몇 번의 달이 뜨고는 이내 졌고. 그녀는 그를 기다렸다.
그렇게 둘의 주말이 오랜만에서야 찾아왔다.
느긋한 주말 햇살이 등을 데우고 있을 때, 그녀는 그에게 살인을 고백했다.
"
왜?
"
"
재미있게 살려면 이 밖에는 없어
"
가만히 그를 기다리는 지루함에 그녀가 미쳐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녀 역시 그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둘은 빛나는 미래를 향해 달려 가기 위해 거쳐가는 수많은 모임과 무리들 사이에서 서로를 찾아냈다.무리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어둠을 숨겨야 했다. 공통 주제에 대한 자신의 열정, 관심 그리고 노력을 입증하되, 어둠은 내 보이지 않아야만, 하나의 집단적 타이틀을 겨우 얻어낼 수 있었다.
수영을 할 때
숨을 참고 레인에 뛰어드는 순간, 수경 뒤에 숨겨진 사람들이 다 똑같아 보이듯이. 그리고 그 차이를 구별하고자 하는 의도조차 없듯이, 레이스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어둠을 숨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숨겨진 어둠이 있다. 어둠의 깊이와 종류에는 모두 차이가 있지만 구김 없는 증명 사진 뒤에 사람들은 자신만의 성격적 결함을, 결핍을 숨기고 있다. 단지 레이스 동안 그것을 잘도 숨겨낼 뿐이다. 숨가쁜 레이스와 레이스 사이, 잠깐 수경을 올리고 숨을 고르는 연약한 그 순간에, 비슷한 그림자를 숨긴 둘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는 이 십 몇 년의 해 동안 삐끗하지 않으려 애를 써왔다 조금의 일탈들은 있었지만, 큰 잘못은 없었다. 나중에 해결할 수 있는 만큼만의 잘못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빼곡히 살아왔다. 그런 동민과 주연이 가까워진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자라난 동네는 달랐지만 다른 공간에 서도 둘은 대충 겹쳐 보일 수 있을 궤적을 따라 성장했다. 공부에 열심이었던 여고생과 남고생은 가끔은 남들이 모르는 노래도 들었다. 성인이 되어서 그는 증시에, 그녀는 미디어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비슷한 울타리 안에서 자라난 스물 몇 살의 두 사람은 동류가 주는 안정감에서 사랑을 느꼈다. 서로의 미래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 할 수 있었고 어쩌면 그 안정적 미래에 서로가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결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동민이 생각하는 그녀는 그랬다. 안정된 미래를 위해 지금의 절충을 이해하는 사람. 본인의 그런 면을 그녀도 마찬가지이니까 이해해주는 사람, 그렇게 그녀를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씩 외로움이 찾아오는 날에는, 서로의 존재에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살인은 나중에 만회하기에는 너무나 큰 잘못이었다. 왜냐고 묻는 그에게 그녀는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라고 했다. 주연은 혼란스러워 하는 동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방법은 이것 뿐이었다고
“
왜냐면 너는 , 그리고 나는 절대 지금 당장 포기할 수 가 없어 미래가 너무 소중 해서 지금 당장을
지금 당장을 포기 하지를 못해 그래서 우리한테서 도망치려고 그랬어
"
그가
뭐라고 대꾸하기 전에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
너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너가
나를 버릴 거라고 생각은 안 하지만 혹시나 너가 그 럴려고 말해서
내가
상처받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먼저 말 할게
나
혼자는 못 가 . 너랑 나랑 같이 가야 돼
"
동민에게는 입사전 다른 증권사에 근무했던 이력이 있었다 몇 개월 간의 인턴 생활 동안 그는 처음 해 보는 사회 생활에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내면 밖 세상에 크게 흔들리는 타입이 아니었다.
몇 개월의 경험은 안정된 미래로 가는 아주 가까운 사다리처럼 보였고 보기보다 그는 괜찮았다.
보기보다
그는 대학 진학 후 쌓아온 여러 경험들 덕분에 꽤 두각이 드러나는 인턴이었다 . 근무 동안 그는 지시 받은 사항들을 꽤 잘해냈다. 그리고 그 사항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갔다. 멀끔한 그와 그의 그 사항들은 마치 도둑질 당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동기들을 비롯한 다 른 사 람 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괜찮았다.
“
그 때 그 선배
사람들은 내가 그 사람이랑 안면있는 건 몰라 . 너 입사 못하게 했던 건 알겠지만
어젯밤에
내가 너 핸드폰으로 불러냈었어
"
사회 생활에도 원 만 했 던 그는 회사 밖에서도 회사 선배들을 만나곤 했고, 성화에 못 이겨 그의 여자친구가 뒤늦게 참여하기도 했다. 왜 그 선배였냐는 질문에, 그 선배가 동민 모르게 그녀를 괴롭히거나 화나게 한 일은 없었다고 한다. 단지 눈빛이 징그러워서 맘에 안 들었다고. 말투도 짜증나긴 했지만
그런 사람은 한둘도 아니라고 했다.
그녀는 그냥
그와 함께 하고 싶어서 그를 골랐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날들에 대해 아득히 이야기했다. 이력서도 자격증도 대외활동도 학자금 대출도 없는 날들에 대해. 단지 그냥 적당한 시간 내에 떠나면 그만이라고 문 밖에 작열하는 태양도 그 열을 식혀 줄 빗줄기도 모두 둘을 위해 있다고
BGM ♬ by 혜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