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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이 그냥 호강허난 제주 맛집 <3>

한라산아래첫마을, 메밀밭에가시리, 골목식당, ㅍㄷㅍㄷ

by 신동욱

제주민속촌까지 답사를 마치니 시간은 오후 5시를 넘겼다. 평소 저녁 식사라면 약간 이르다 싶은 시간이지만 이날은 아니었다. 오전엔 아부오름과 송당승마장 그리고 산굼부리, 오후에는 제주돌문화공원에 있는 제주전통초가마을과 성읍민속마을을 답사했다. 그러고서야 마침내 이날 마지막 목적지로 예정했던 제주민속촌에 닿을 수 있었다. 하루에 여섯 군데를 들렀고 이중 오름이 두 군데였다. 제주돌문화공원이나 성읍민속마을, 제주민속촌은 부지도 넓다. 가까운 곳을 모아 다녔다고는 해도 체력을 감안하지 않은 무리한 경로였다. 점심에 먹은 국수와 순대 정도가 여태 소화되지 않았을 리 없었다. 나는 6시 뒤로 저녁 식사를 미루고 싶지 않았고 식당 찾기에 쓸 에너지도 거의 없었다. 이날 갤럭시워치는 내가 2만 4568보를 걸었고, 248분을 활동했다고 했다.


한라산아래첫마을

제주민속촌 입구에 있는 '한라산아래첫마을'은 면식 좋아하는 지친 길손에게 더할나위 없는 식당이다. 제주에서 기른 100% 메밀로만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만든다. 보통 이런 선택지에서 나는 주저하지 않고 시원한 물냉면, 가능하다면 곱배기를 시킨다. 그렇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곳의 시그니처는 비비작작면이다. 제주에서 난 제철나물과 들깨, 들기름을 넣어 메밀면과 함께 비벼 먹는 향토 음식이다. 이름을 처음 듣는 음식에 호기심이 끌렸다.

비비작작면은 어감만큼이나 씹는 맛도 재밌다. 흐트리기 아깝도록 예쁘게 나온 재료들을 한데 비벼 먹으면 입에서 '작작' 하는 소리가 난다. 들깨가 어금니에서 기분 좋게 터지는 소리다. 비비면 입에서 소리가 작작한다고 비비작작면인 건 아니다. 아이들이 낙서하듯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리면 이 모습을 두고 제주도에서는 '비비작작하다' 또는 '비비작작거리다'라고 한다. 애들 그림처럼 대충 마구 섞어서 비벼 먹으라고 붙인 이름이 비비작작면이다. 들깨 터지는 식감에다 고소한 들기름 버무린 담백한 면발이 함께 씹히는 그 맛에 면식 애호가인 나는 완전히 신세계를 경험했다. 오후 6시면 가게 문을 닫으니 늦어도 5시 20분쯤엔 음식 주문이 주방에 들어가야 한다. 나는 이날 '한라산아래첫마을' 제주민속촌점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운이 좋았지만 아쉽게도 메밀문화원까지 둘러볼 시간까지는 없었다.


제주도는 작물을 기르기에는 척박한 땅이다. 기반암이 현무암이어서 비가 내려도 물은 죄다 바다로 빠져나가 버린다. 농사에 쓸 물이 없으니 제주도는 조선시대부터 늘 식량이 귀했다. 강한 바람과 높은 습도, 잦은 강우도 농작물 재배를 어렵게 했다. 그래서 제주도민들은 이모작이 가능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다른 작물에 비해 생육기간이 짧은 메밀을 오래 전부터 재배해 먹었다. 사람들이 메밀 하면 소설 '메밀꽃 필 무렵' 때문인지 강원도 평창만 생각하는데, 국내 메밀 생산량 절반 이상이 제주도에서 나온다. 메밀을 이용한 음식 문화도 제주도에서 유독 발달했다. 아이 낳은 산모의 첫 음식으로 먹는 메밀 조베기를 비롯해 빙떡, 메밀 범벅, 메밀 칼국수 등 다양한 음식들이 제주도에 여전히 남아있다. 비비작작면은 이보다는 비교적 최근에 제주도와 오름을 형상화해 개발한 향토 음식이다.


제주가 고향인 배우 고두심이 그 유명한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출연하여 향토 음식으로 비비작작면을 추천한 적이 있다. 그래서 같은 가게라도 '한라산아래첫마을' 본점 격인 제주메밀식당점 웨이팅은 직영점인 제주민속촌점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점심 시간에 아내와 함께 갔다가 줄을 보고 식겁한 적이 있다. 꼭 제주메밀식당점에서 먹어보고 싶다면 할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제주민속촌점 훌륭한 대안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메밀밭에가시리


비비작작면이 아닌 다른 메밀 음식을 다양하게 맛보고 싶다면 '메밀밭에가시리' 동광점을 꼭 추천한다. 메밀 소불고기부터 들깨칼국수, 납작소바, 비빔면과 물냉면까지 메밀 음식 종류가 많은 식당이다. 여기서 아내는 비빔면을, 나는 물냉면을 먹었는데 그날부터 우리는 지금까지 라면을 비롯한 모든 밀가루면을 아예 끊어 버렸다. 말도 안 되는 면발이다. 100% 메밀로 이렇게 쫄깃한 면발이 어떻게 가능한가 생각하며 우리는 연신 감탄했다.

가게에서 포장해 따로 팔고 있는 메밀면까지 사서 부산으로 들고 왔다. 그러고는 국수가 먹고 싶던 어느 날 면을 삶아 열무김치와 고추장에 참기름을 넣고 비벼 먹었다. 라면보다야 당연히 가격이 비싸더라도, 건강을 함께 생각한다면 고민할 이유가 아예 없는 맛이라고 장담한다. 우리 부부는 '메밀밭에가시리'에서 파는 이 메밀면을 쿠팡으로 주문해서 국수가 당길 때마다 삶아 먹고 있다. 추천하고 싶어 자세하게 알려드릴 뿐 전혀 광고도 아니며 사장님과 일면식도 없다. 표선면에 본점이 있고, 최근엔 제주시 일도동에도 지점을 냈다.


골목식당


'메밀밭에가시리'에서처럼 지금은 기술과 요령이 쌓여 메밀면도 쫄깃하게 즐길 수 있지만, 옛날에는 메밀만으로는 아무리 해도 반죽을 찰지게 만들 수 없었다. 메밀은 글루텐 함량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쫄깃하지 않기 때문에 호불호는 있지만 전통 방식 메밀면에도 묘한 매력이 있다. 이 맛을 느끼고 싶은 분께는 동문시장에 있는 '골목식당'이 딱이다. '살인의보이' 멤버들과 처음 이곳에 가서 해장을 겸해 메밀 꿩칼국수를 시켜 먹었다가 맛에 놀라 아직까지 기억하는 곳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곳 면발은 짧고 뚝뚝 잘 끊어진다. 먹방 잘한다는 누가 오더라도 면치기 할 면발은 아니다. 이곳 사장님께서 손으로 직접 뽑은 100% 메밀면이다. 슴슴한 국물 맛에서는 떡국이 생각난다. 꿩요리 전문점 답게 육수는 꿩을 삶아 뽀얗게 만든다. 여기에 두께가 일정하지 않은 메밀면 씹는 재미가 있다. 시원하고 고소하면서 소화도 잘 돼 속까지 편안하니 해장으로도 아주 좋았다. 메밀 특유의 씁쓸한 맛과 거친 식감을 좋아하시거나, 전통 방식의 메밀 음식을 찾으시는 분들께 '골목식당'은 반드시 추천하는 곳이다. 제주를 그렇게 돌아다녔어도 아직 제주 향토 음식을 한참 모르는구나 싶 맛이다.


ㅍㄷㅍㄷ


볼 것 다 보고, 먹을 것 다 먹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는 마음은 늘 허전하다. 제주공항 바로 앞까지 와서도 괜히 밍기적거리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더라도 가급적이면 공항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물고 싶다. 그러나 공항 근처라면 제주국제공항도 김포나 김해처럼 늘 갈 만한 곳이 마땅하지 않다. 그러다 제주도에서 어렵게 찾아낸 곳이 있다. 간판에는 자음만 'ㅍㄷㅍㄷ'라고 써 두었는데 상호명은 푸딩푸딩이다. 일본에서 먹어 본 푸딩보다 더 맛있는 푸딩을 여기서 먹을 수 있다. 음식 궁합도 좋다. 초코푸딩을 주문했더니 바나나를 올려 말돈 소금과 함께 내주었다. 아내가 주문한 커스타드 푸딩 말랑말랑 흔들리는 모습은 말그대로 '푸딩푸딩'하다. 최상급 표현은 가급적 조심해야 하지만 단언컨대 이곳 푸딩이 내가 먹어본 푸딩 중에서는 제일 맛있다. 비행기 시간만 맞으면 무조건 가는 곳이다.

그야말로 '푸딩푸딩'한 푸딩

맛만 좋은 것도 아니다. 사장님 애착품들이 가게 한쪽에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안경'도 있었다. '언젠가 평론가님 사인을 받으려고 하니 안경을 소중히 다뤄달라'며 사장님께서 메모도 함께 써붙여 두었다. 이런 메모들이 화장실을 포함하여 가게 곳곳에 붙어 있다. 하나같이 착하고 귀여운 내용이다. 그래서 푸딩 한 숟가락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제주 여행을 마무리하기에는 '푸딩푸딩'만한 곳이 없다. 아내와 나도 제주 갈 일이 있으면 돌아올 땐 렌터카 반납 직전에 꼭 이곳을 들르고 있다. 다만 주차는 알아서 잘 해결해야 한다. 이곳에서 한 번 주차 딱지 끊긴 적이 있었다. 이공이오공팔일오.



✦ 한라산아래첫마을 제주민속촌점

- 맛 ★★★★ 비비작작면의 작작한 식감과 담백한 메밀면의 신세계

- 가격 ★★★☆ 새로운 맛에 딱 맞는 가격

- 분위기 ★★★☆ 비 오는 날 창가 자리 추천

- 접근성 ★★★★★ 제주민속촌 입구 바로 앞, 답사 후 들르기 최적지


✦ 메밀밭에가시리 동광점

- 맛 ★★★★☆ 라면을 끊게 한 100% 메밀면의 쫄깃한 식감

- 가격 ★★★★ 가족 단위 외식에 적당한 가격

- 분위기 ★★★ 깔끔하지만 특별히 개성 있는 인테리어는 아님

- 접근성 ★★★★ 제주 서남부 쪽 답사 필수 코스 한복판에 있음


✦ 동문시장 골목식당

- 맛 ★★★★☆ 100% 메밀 꿩칼국수, 뚝뚝 끊어지는 전통 면발의 매력

- 가격 ★★★☆ 꿩메밀칼국수 12,000원. 꿩구이 35,000원

- 분위기 ★★★☆ 소박한 노포에서 내어주는 꾸밈없는 정직한 한 그릇

- 접근성 ★★★☆ 동문시장 관광을 겸할 수 있지만 별도 주차장은 없음


✦ ㅍㄷㅍㄷ(푸딩푸딩)

- 맛 ★★★★★ 전국 1타 푸딩

- 가격 ★★★★☆ 다른 가게 푸딩이 이 가격이면 비싼 편이지만

- 분위기 ★★★★★ 사장님 감성 100% 이해할 수 있음

- 접근성 ★★★☆ 공항에서 가깝지만 전용 주차장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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