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렇게 되더라고요.
이전에 근무했던 곳에서 임산부 한 분이 계셨다. 임신 초기 쯤이어서 많이 힘들어 하신 듯 보였다. 임신 초기여서 그런지 배가 나오진 않았지만 뭐랄까, 몸에서 아기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해서 그랬을까. 몸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이 꽤 많이 힘들어보였다. 아기를 가져본 경험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입덧도 힘들어 보이고, 속도 안좋았는지 얼굴색은 하얗게 질려서 헉헉거리는 모습이 꽤나 고통스러워보여서, 보는 내가 다 안쓰러워 보였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만약 나에게도 아기가 생긴다면...'이라는 전제로 생각을 한 번 해봤다. 모르긴 몰라도 그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배가 서서히 불러와서 잠잘 때도 똑바로 누워서 자는 건 힘든 일이 되겠지. 그래도 그건 괜찮아, 난 원래 똑바로 누워서 자는 편은 아니니까. 앉고 일어나는 일조차도 가벼운 일이 아니게 될거고, 방광이 눌려서 그 와중에 화장실을 가고 싶은 마음도 자주 들겠지. 배가 무거워지는 느낌은 무슨 느낌일까. 엄청 무거운 책가방을 앞으로 메고 다니는 느낌일까? 아기가 크는 동안에는 그런 불편함을 감수한다고는 하지만, 막상 아기가 태어날 때 쯤에는 얼마나 아플까? 배가 아픈건 큰 볼일이 보고 싶을 때 아픈 느낌에서 훨씬 더 강도가 높은 아픔일까?
이런 저런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들을 여지껏 내가 느꼈던 기억에 비추어 열심히 추측을 해봤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든건, 왜 꼭 아파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임신, 출산 과정뿐만이 아니라 뭔가를 얻을려면 고통스럽거나 힘들었던 시간을 거치게 되는 듯 싶은데, 왜 아파야지만이 얻을 수 있을까? 왜 힘들어야지 가질 수 있을까?
왜 새로운 이가 나려면 아파야할까?
왜 잘 걸을려면 부들부들하면서 걷기 시작해야할까?
왜 연습과정이 있어야 잘할 수 있는걸까?
왜 이별은 아프고 슬플까?
왜 넘어져야 안넘어지는 방법을 알까?
왜 한번은 호되게 당해봐야 성숙한 생각을 할 수 있는걸까?
왜 탈탈 털려봐야 강철멘탈로 거듭날 수 있는걸까?
왜 시행착오라는 혼돈의 시간을 경험해야 초연(超然)해질 수 있을까?
그냥 바로 잘해낼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뭐 저런걸 궁금해하나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겠다. 또 누군가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치라 이유가 필요한가 싶을 수도 있다. 그래도 궁금한건 궁금하다. 세상 모든 것에서 성장하고 성숙해지기위해서는 "아파야지만이" 클 수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새삼 그 깨달음이 좀 슬프게 느껴졌다. 오죽 무능하면 아픔 없이 바로 얻지 못하는걸까 싶다. 내가 '사람'이란는 존재를 너무 과대평가한걸까?
내가 전지전능한 신은 아니어서 이런 억울한(?) 세상 이치에 현답을 내릴 수는 없다. 지구에 사는 사람 중에서 내 의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현재로서는 그 어느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힘들더라도 얻는 게 우선이니 일단 하는 수밖에 없다. 답을 알기 전까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남들은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데, 나만 멈춰있을 수는 없잖아'의 문제가 아니다. 이유는 제쳐두고 그냥 '한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하는거다. 막상 시작해 보면, 몰입한 나를 발견할 수 있고, 그 시간이 마냥 고통스럽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되는 듯하다. 그래도 고통의 양이 10 중의 8 정도 된다면 이 외에 다른 좋은 기억은 2나 3 정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이유를 불문하고 연습하고, 반복하고, 정리되어 있지 않은 지루하고, 어지러운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건, 고통이라는 어둠 속 이전보다 '좀 더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이라는 한줄기 빛을 믿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막상 그 아픔의 시간을 거치고 나면 내가 바랬던 것만 얻는게 아닌 듯 싶다. 편함을 버리고 능숙함을 얻음과 동시에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길을 만들어주지 않았나. 먼저 가봤으니 알려줄 수도 있고, 좀 더 나은 방향이 뭔지도 알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초심자는 나름 자신만의 뚝심이 있어 고분고분하지 않기 때문에 더 쉽게 간다고 억울해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무엇보다 같은 길을 간다고 하더라도 다들 길을 헤매는 부분은 다르더라.) 그렇게 나도 모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도 얻었다.
제일 신기한 건, 한번 어려워보면 비슷한 일을 다시 해야하는 일을 해야할 때, 처음만큼 막막하지 않고도 해낼 수 있는 게 제일 신기했다. 마치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다른 언어를 금방 습득하듯이, 한 악기를 다뤄본 사람이 다른 악기를 배울 때 처음 배웠던 시간만큼 오래 걸리지 않듯이 말이다. 무슨 원리로 처음만큼 힘들이지 않고도 해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고 또 다행이다. 처음에 겪었던 힘듦보다 덜 힘들어진거니까 말이다. 어떻게 보면 사람이 받은 축복 중 하나가 아닐까.
처음.
첫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이렇게 보니 맞는 말이지 싶다. 예전에는 그냥 그게 위로인 줄 알았다. 모든 '처음'인 사람은 무섭기도 하고 잘할 수 있을까 싶어서 잔뜩 쫄아있으니까 그냥 힘내라고 해주는 말인 줄 알았는데, 한 걸음 내딛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는 막상 해보니까 알겠더라. 절대 작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뒤에는 남들에게 함부로 뭔가에 대해 조언하지 않게 된 것도 있다. 그냥 그렇게 가볍게 말하기엔 그 사람의 결심과 인생이 너무 귀하고 또 중요하지 않나.
시작은 늘 아프고, 고되고, 고통스럽다. 귀찮고, 그래서 관둘까 싶은 마음이 수십번도 치솟아 오른다. 그 와중에 이 모든 걸 알고도 매번 성실하게 그 고통속으로 들어가 배우고, 익히고, 완벽히 되지 않아 반복하고 단련하는 모든 사람들이 난 참 멋있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왜 불편하고, 아파야 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그런 불편함 앞에서 쭈뼛쭈뼛 대고 싶지 않다. 너무나 힘들 걸 알지만, 망설이지 않고 과감하게 뛰어들고 싶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이런 바램들이 있을까? 아니면 이미 뛰어들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 용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
누가 그랬다. 역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곳 저 곳 헤매야 땅이 넓어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