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위대함에 대하여
한 직장에서만 20년을 어떻게 버틸까.
어떻게 한 가지 일을 그 오랜 시간 동안 해낼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한 이십년, 또는 넘게 키워낼 수 있을까.
나무는 어떻게 죽지도 않고, 그 오랜 시간을 같은 자리에서 살아낼 수 있을까.
말만 들어도, 부담이 어깨에 턱 하고 내려 앉아 내 곁을 영원히 벗어나지 않을 것 같은 공포감을 준다. 참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었다 깨어나도, 나로서는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계약직이 좋았다. 기간을 정하고 그 기간 동안만 버티면 되니까. 무엇보다 끝이 가늠이 되는 게 좋았다. 까마득하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그래서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매번 일을 구할 때마다 면접 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고, 몇 번의 반복 끝에 '그래서 정규직 정규직 하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종종 좋은 기회가 있다 싶으면 놓치지 않고 잡으려 했고, 그래서 잡았던 때도 있었다.
막상 근로계약서를 쓸 때 보니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늘 내가 경험해온 계약서에는 기간이 적혀져 있었는데, 기간은 적혀져 있지 않는게 꼭 이 직장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 같아 조금은 섬뜩했다. 주기적으로 면접을 보면서 떨어질지 붙을지 모르는 불안정 대신 정년까지 다달이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안정을 얻었지만, 마냥 한시름 놓을 수 만은 없는 어딘가 묵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한 곳에서 십 년 넘게 오랫동안 근무해오신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오랜 세월을 마냥 평탄하게만 보내지 않았을거라 감히 짐작해보지만, 결국에는 그 어렵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며, 뿌듯하기도 했던, 희노애락이 세월의 여기 저기 덕지 덕지 발라진 그 시간들을 버텨내신게 아닌가. 멀리서 보면 그 시간들은 마치 가을 단풍처럼 아름답게 물들여져 있지 않을까? 무엇이 그 시간들을 이겨내게 했는지 잘 모르지만, 자신의 힘듦보다 더 큰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게 아니었을까.
직장 뿐만이 아닌 어떤 한 가지 일이나, 자식을 키우는 일, 무엇인가 오래 기르는 일 등 오랜 시간 변함없는 마음으로 꾸준하게 존.버 해온 것 자체가 참 멋있는 일이다. 버티게 한 동기가 사랑이나, 불가피한 상황과는 관계없이 수없이 요동치는 마음 속 혼돈을 이겨내고 결국에는 매번 지금 지키고 있는 그 자리를, 그 일들을 하기로 결정했던 게 아닌가. 별거 아닌 작은 가지가 꽤나 무성해진 나무가 된 듯 하다.
눈 뜨면 휙휙 바뀌어 있는 유행 속에 살고 있는 요즘, 변함없이 제자리에서 꾸준하고 묵묵히 해내는 많은 존버의 모습들이 되려 더 뚝심있고, 위대해 보인다.
나도 그럴 수 있는 한결된 마음을 가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