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뿐인 나에게 보내는 화(火)가 섞인 응원
"이번에는 피아노 꼭 잘 칠거야!(비장)"
또 시작이다. 나에게 악기 하나 쯤은 잘 다루고 싶은 시기가 찾아왔다. 막상 시작해보자 하고 나름의 거금을 주고 꼭 잘 치겠다라는 결심을 했다. 방 한쪽에 피아노를 정리해두고, 한번 앉아서 건반을 쳐보면서 뚱땅거려 보기도 하고, 뭔가 될 거 같은 기분에 딱히 뭘 하지도 않았는데 뿌듯해진다. 이 정도면 상상으로 이미 조지 듀크와 같은 재즈피아니스트가 곧 나다. 하지만 막상 다른 일에 치여 피아노는 또 내 안중에서 멀어져 가고 소복소복 먼지만 쌓여간다. 이제는 나보다 우리집 고양이들이 말 그대로 피아노를 더 잘 치게 되는 듯하다. 다른 사람들을 이럴 때 스스로를 보면서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나의 모습을 볼 때면 현타가 세게 온다.
'에휴, 나는 왜 맨날 이 모양이지. 분명 잘 시작할 여건도 되고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는데, 왜 막상 준비가 다 되었을 때는 그 때 그 마음이 그대로 남아있지가 않고 귀찮아지는 걸까 (투덜투덜)'라고 하면서 한숨을 푹 내쉰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적이 한 번도 아니니 이 쯤되면 내 인생은 결심해서 살아온게 없어보이고 더 나아가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까지 살아온 것도 그냥 강의 물줄기를 타고 흘러가는 나뭇잎 마냥 살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당최 나라는 사람은 결단력이 있지도, 실행하는 마음이 단단하지도 않는 것 같고, 스스로를 하염없이 하찮게 볼 때가 있다. 부정적이고 어두운 골목길 같은 나에게도 긍정적인 빛 한줄기가 생길 수 있을까.
언젠가는 어느 모임에서 어떤 여성분을 본 적이 있다. 말 한마디 걸어본 적은 없지만, 사람 분위기라는게 있지 않나. 멀리서부터 그 사람에게는 긍정적이고 화---한 분위기가 풍겨지고 있는 걸 느낀 적이 있다. 너무 신기했다. 애써 그렇게 만든 노력된 결과물인지 아니면 원체 날 때부터 그렇게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서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부분을 그 사람에게서 보니 신기함을 넘어서서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왠지 그 사람이 한 결심이라면 흐지부지 되지 않고, 뭐라도 결과물이 생길 수 있는 것 같고, 뭔가를 시도했다가 잘 안되더라도 금새 오뚜기마냥 일어나서 툭툭 털고 "괜찮아! 다시 또 해보면 되지^^" 라고 할 것 같은 사람처럼 보여 한 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앞서 말한 긍정의 그녀처럼 나는 그렇게 세상 만사 모든 일에 도전적이고, 매사에 긍정적일 자신이 없다. 그녀의 화---한 태도의 원천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는 없으나, 나는 실행력 떨어지는 스스로에게서 느끼는 지겨움을 원동력삼아 그나마도 없던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매번 뭔가에 대해서 실패하는 것 같고, 도전조차 보류해버리는 나 스스로에게 대노(大怒)하는 시점이 항상 온다. 몇 번이고 미루는 것을 반복하다보면 'XX, 이게 벌써 몇 번째야?! 아 왜 자꾸 미루게 되지?! 이제는 미루면 그 때는 진짜 XX 되는거다 진짜 아오"라고 맘 먹게 되고, 그 짜증과 분노로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어떤 감정을 원동력 삼아서 무슨 일을 해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해내고자 하는 일을 다 이루었을 때의 멋진 본인의 모습을 원동력삼아 열심히 달리는 분들도 있을거고, 별 거 없이 그냥 하는 거지 싶은 분들도 있을거다. 또는 상상속에서 이미 충분이 성취가 되었고, 현실은 이불 속에서 아늑하게 누워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삶은 어제처럼 똑같이 돌아가고, 시간은 멈추는 일없이 흘러가고, 개개인은 여전히 살아있다. 다만 행동하는 것에 있어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되고, 어떠한 생각을 가지게 되는지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나처럼 말은 쉽고 행동이 어려운 누군가에게는 내가 써보는 방법을 한번 참고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어느 것도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정체되어 있는 스스로를 보며 약간의 분노(?)를 원동력삼아 시작을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나온 치아키 선배가 더러워질 때로 더러워진 노다메의 방을 화(火)로 치워준 것처럼 말이다. 만약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뤘다면, 그래서 분노조차 힘이 될 수 없다면 그 다음에는 아마 상황이 점점 벼랑 끝으로 밀지 않을까? 사실 그것만큼 특효약도 없기는 하지만, 되레 탈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좀 염려스럽다.
셀 수 없이 많은 색깔처럼 다 알 수 없는 여러 종류의 기로에서 각자의 맡은 일을 하고 있는 많은 분들의 삶 속에서 일부라도 이 글이 힘을 발휘한다면 더할나위 없이 뿌듯할 것이다. 세상 모든 게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렵지만 한번 행동하기 시작하면 두번째, 세번째는 처음보다 분명 쉬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영원하지 않은 삶 속, 몇번의 찰나로 인해 우리는 다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