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nyeong Aug 23. 2023

Just pop, Just positive

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10여 년 전인가 좋아했던 마이언트메리의 노래 '골드 글러브'(앨범 <Just Pop> 수록곡)를 들으며 출근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르포 <언더그라운드>를 읽으면서 말이죠. 지옥철이라 할 만큼 사람이 빽빽하게 늘어선 전동차 안에서 의미 없이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건 제 성향인 것 같아요. 지하철, 버스 같은 대중교통 공간에서는 유독 집중이 잘되거든요. 그러니 그 시간 동안 (내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 거죠. '골든 글러브'의 노랫말은 더없이 밝고 희망적입니다. 마치 1990년대~2000년대 일본 청춘영화의 주인공이 부를 법하죠.



'다리에 힘이 빠져 그냥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시간이 다 됐다고 날 재촉하지 마/아직 내겐 끝나지 않은 걸/지나간 내 눈물과 사랑도 모든 꿈도 이제 다 한순간에 담아서/마지막 순간에 난 다시 일어서/내게 남겨진 시간을 준비하겠어/아직도 게임은 끝나지 않았어/뒤돌아 설 일은 없어/'



이 노래가 발표된 2004년 당시 처음 들으면서 '힘들 때 들으면 좋겠네' 생각했어요. 근데 되돌아보니 전 항상 힘들어 했습니다. 모든 상황을 극단적이고 과장되게 해석했던 것 같아요. 내가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있고, 나만이 슬프고, 설령 나만이 아니더라도 내가 가장 슬프며, 내가 가장 슬픈 게 아니더라도 상관 없는데, 왜냐면 난 슬프다는 사실을 남에게 인정받을 생각이 없으니까! 뭐 이런 생각이었죠. 주변에서 아무리 뭐라고 떠들어대도 전 신경쓰지 않고 슬픔에 몰입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 연민과 동정이 피어납니다. 그 연민과 동정에 취한 채로 지난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골든 글러브' 같은 노래는 그런 제 연민에 힘을 실어주었죠. 그래, 언젠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야. 슬퍼해도 괜찮아.



한동안 이 노래를 잊고 살다가 오늘 다시 듣는데 그때와는 기분이 좀 달랐습니다. 하루키의 책 영향이 있었을 겁니다. 1995년 3월 20일 도쿄 지하철에서 벌어진 사린가스 살포 사건을 다룬 책이니까요. 죽음의 그림자가 눈앞까지 다가왔음을 느꼈던 사람들의 고백이 절박하고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눈으로 하루키가 옮겨 적은 생존자들의 고백을 따라가고, 귀로는 마이언트메리의 노래를 들었죠. 마치 노래가 생존자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넌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뒤돌아 설 일은 없어. 괜찮아. 갑자기 울컥하더군요. 눈물을 흘리진 않았습니다. 실은 튀어나올 것 같은 눈물들을 억누르고 있었어요.



마이언트메리는 홍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인디 밴드입니다만, '홍대병'이나 '중2병'의 정서는 거의 느낄 수 없는 팝 밴드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없이 긍정적이어서 당시 홍대 출신 뮤지션들의 음악과는 정서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싫어 하는 음악 매니아들도 있었어요. 지금 들어보니 그것 참, 이런 명곡이 또 없습니다. 앨범 제목은 또 얼마나 멋집니까? 'Just Pop!' 우리는 팝 음악을 하는 대중 밴드일 뿐이야, 라고 자신있게 외치는 것처럼 들리지 않나요? 마치 1995년 도쿄 지하철 생존자들에게 그저 긍정적으로(Just positive) 살아보자고 말하는 듯 보입니다.



긍정적인 삶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때로 한없는, 대책없는 긍정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땅을 파고 들어가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쯤, 짙은 안개에 휩싸여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한한 긍정이 아닐런지요. ‘난 당신의 사정을 잘 모르지만 이렇게 말할 뿐이야.’ 긍정적으로 살다보면 또 다른 시간, 또 다른 자기 자신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만날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가능성'만이라도 느껴지는 건 참 행복한 일이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요. 하지만 생각하고 움직인다면 적어도 아주 조금의 가능성을 맛볼 수 있죠. 그 짜릿함을 느낀 출근길이었습니다. 이제 곧 10시, 업무 시간이 시작됩니다. '골드글러브'의 노랫말을 헤아리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