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검색에 따르면 서연의 ‘여름 안에서’가 나온 건 2003년 9월입니다. 그해 전 대학교 3학년이자 복학생이었어요. 후배 학번들은 복학생과 대화 나누길 부담스러워했고, 여자 동기들은 대개 졸업한 상태였죠. 그나마 위안이 된 건 편입생으로 들어왔던 경수 군과 친구가 됐다는 거예요. 시를 쓰는 경수, 소설과 시 사이에서 방황하던 저는 혈기만 가득한 문청(문학청년)이었어요. “학과의 창작 모임은 우리의 방향성과 맞지 않아. 합평 소모임을 만들자. 여자고 남자고 봐주지 말고 토씨 하나까지 물고 뜯어야 해. 왜 거기에다 쉼표를 찍었고, 왜 굳이 그곳에서 문단을 나눠야 했는지 물어볼 거야. 합평 받다가 눈물 흘려도 어쩔 수 없어. 그래야 성장할 수 있는 거니까.”
성장은 정말 망할 키워드입니다. 진중권 교수가 <100분 토론> ‘디 워 편’에서 언급했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매우 급작스럽고 간편하게 작중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사기 캐릭터나 연출 요소 등을 일컫는 말)’ 같달까요. 상대를 압박하고 괴롭히다가 들키면 “성장을 위해서 그랬어”라고 말하면 그만이니까요. 부패한 사회의 부패한 변명을 당시 저도 앵무새처럼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아마도 경수와 제가 1학년 때 선배들에게 학습 받았기 때문일 거예요. 대학생이 돼 처음 가입한 동아리는 학과 내 공식 문학 동아리였고, 첫 합평회에서 놀라운 광경들과 마주했습니다. 소설이 뭔지도 모르는 1학년이 가지고 온 소설을 두고 2~4학년 선배들은 늑대처럼 달려들더군요. 첫 글자부터, 마지막 마침표까지 펜이 시뻘게질 정도로 해체해버렸죠. 두어 시간의 합평이 끝나고 나면 습작 소설은 너덜너덜해졌습니다. ‘깨끗이 빨아서 햇볕 잘 드는 옥상에다 널어놓을까? 그러면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버텼던 시절이에요.
하지만 경험상 성장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더군요. 본인이 스스로 깨달아서 한 걸음 더 내딛지 않는 이상, 강압에 의한 학습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경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슈퍼스타 K>부터 최근 <스트릿 우먼 파이터2>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서바이벌 경쟁 프로그램’의 모토는 대개 성장이에요. 방송 PD와 작가들이 시청률을 위해 참여자들을 경쟁시키고 반목을 부추기죠. 그래놓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이런 무한 경쟁을 통해 우정을 다지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겁니다. 헛소리라고 생각해요. 그들이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유명세와 돈입니다. 광고와 각종 콘텐츠에 출연하며 돈을 쓸어 담는 게 순기능이라면 순기능이겠지요.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어쨌든 ‘강압을 통한 성장’에 경도돼 있던 당시 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방식이 너무 거칠었기에 주변 여자애들은 저나 경수를 피했어요. 그럴 만했습니다. 후배들을 울리겠다는 포부의 문학 모임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경수가 아니면 난 주로 혼자 다녔고 그럴 때마다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음악은 단짝이 돼주었습니다. 그때 한창 즐겨들었던 음악이 서연의 ‘여름 안에서’예요. 본래 듀스가 1994년 발표한 2.5집 <RHYTHM LIGHT BEAT BLACK>에 수록된 곡이 원곡이지요. 당시 이 노래는 크게 히트해 듀스의 가장 대중적인 노래로 알려졌습니다. 원곡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곡은 달라요. 제게 ‘여름 안에서’는 듀스가 아닌 서연의 노래입니다.
밝고 청량한 목소리로 “난 너를 사랑해”를 외치는 서연의 퍼포먼스와 노래를 매일 듣고 봤던 것 같아요. <윤도현의 러브레터> 같은 곳에서 보여준 라이브 무대를 보면 춤은 물론 노래 실력도 괜찮았습니다. 또래의 엇비슷한 여자 가수나 걸그룹과는 결이 달랐어요. 발라드 가수들처럼 지나치게 진지하지도 않았고, 걸그룹처럼 귀여운 척을 하거나 예쁜 척을 하지도 않았죠. 밝은 표정으로 격렬하게 춤을 추면서도, 목소리는 한없이 안정적이고 청량했습니다.
언제나 꿈꿔온 순간이 여기 지금 내게 시작되고 있어/그렇게 너를 사랑했던 내 마음을 넌 받아주었어/오, 내 기분만큼 밝은 태양과 시원한 바람들이 내게 다가와/나는 이렇게 행복을 느껴/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 있어 그리고 내 곁에는 니가 있어/환한 미소와 함께 서 있는 그래 너는 푸른 바다야
‘언제나 꿈꿔온 순간’이라는 노랫말과 그 노랫말을 부르는 서연의 목소리가 좋았습니다. 그걸 듣고 있으면 잠시나마 제가 진짜 ‘꿈꿔온 순간’에 당도한 듯 느껴졌어요. 그 짜릿한 행복에 이끌렸지만, 서연의 가수 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여름 안에서’가 수록된 1집 이후 앨범은 더 발표한 것 같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이후에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어요.
문득 서연의 근황이 궁금해집니다. 본인이 꿈꿔온 순간을 짧게 만끽했지만 이내 묻히고, 다른 삶을 선택해야 했던 그의 삶은 어떠할까요. 그는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요.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얼마나 성장했을까요. 하지만 성장 같은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과연 성장이 꼭 필요할까요? 초등학생 때 경쟁하고, 중학생 때도 경쟁하고, 대학생, 직장인이 돼서도 끝없이 경쟁합니다. 경쟁을 통해 성장하라는 거죠. 그중 진정한 성장과 경쟁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여. 과연 있긴 할까요.
중요한 건 행복을 느끼는 지금 이 순간인데. “내 기분만큼 밝은 태양과 시원한 바람들”이 있고,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까요.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성장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안정과 행복이니까요. 경쟁과 성장을 외치는 시대에서 살아남는 법은 남들보다 더 빨리 걷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다른 샛길을 찾아보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