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언제나 웃으며 다시 만나요, 네트는 광활하니까.”
그의 구닥다리 레트로풍(?)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아직도 이 글귀가 방문객을 반기고 있습니다. ‘록 윌 네버 다이(http://www.rockwillneverdie.com/)’라는 주소도 여전합니다. 1980~90년대 로큰롤 스타들은 멋과 허세로 살았다지만 그는 그렇지 않습니다. 불룩한 배와 야구 모자, 잘 정돈되지 않은 수염이 그의 모습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사람을 좋아했다죠. 참, LG트윈스의 오래된 팬이기도 했고요.(이제 강팀이 된 트윈스를 보면서 그는 흐뭇해하고 있겠지요?)
나무위키에 들어가면 목이 터져라 노래 부르는 그의 사진을 만날 수 있습니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활동했던 그는 아직도 많은 팬의 머릿속에서 살아 있습니다. 가끔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그가 3집을 발표했을 무렵에는 <오마이뉴스> 지면을 빌어 시민기자 자격으로 글을 쓴 적 있어요. 제목은 편집국에서 달아줬는데 “좌절해도 돼, 요정이 위로해줄 거야”였습니다. 그가 떠난 지 13년이 지났는데도 저는 아직 그의 노래와 노랫말, 더듬거리면서도 확고한 신념으로 내뱉던 말들이 그립습니다. 노래 작업과 앨범 제작을 직접 담당해 가내수공업형 음악인이라 불렸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야기입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가수는 아닙니다. 홍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1인 밴드였던 데다, 텔레비전 같은 미디어 노출도도 적은 편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멜로디와 연주, 시원시원한 목소리를 지닌 로커였습니다. 대표곡 ‘절룩거리네’와 ‘스끼다시 내 인생’, ‘361 타고 집에 간다’, ‘행운아’, ‘도토리’, ‘고기반찬’, ‘치킨런’, ‘축배’, ‘입금하라’ 등 무수한 히트곡을 보면 그가 어떤 음악인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에 때때로 울적하기도 하지만, 끝끝내 쓰러지거나 굴복하지는 않겠다는 그의 노랫말들은 당시 제게 깊숙이 박혔습니다. 다른 말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게 어디 저뿐이었을까요. 제 친구 경수 군은 물론 당대 청춘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지요.
알 수 없는 그 어떤 힘이 언제나/날 지켜주고 있어/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거야/난 행운아/죽는 날까지 살겠어, 어렵지 않아/난 자신 있어 한 번 살아보겠어/쓰러져도 난 다시 또 일어나/다시 시작해 니가 없어도 좋아 이젠/나는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언제 어느 때 어디에서/내게 다가올 그 행운들에/조금씩 다가서고 있었던 거야/나는 행운아 나는 행운아/이젠 내게 와 나의 행운아 나는 행운아
그래도 제일 오래 기억에 남는 건 1집 수록곡 ‘행운아’입니다.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는 2010년 11월 1일, 집에서 콩나물국을 끓이던 도중 원인 모를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당시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무려 30시간 만에 발견되었고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5일 후인 2010년 11월 6일 오전 8시 10분경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37년을 살았군요. 40년도 채 되지 못한 인생이라니. 많은 명곡을 남겼고, 앞으로도 쓰고 불러야 할 노래들이 많았을 텐데 말입니다.
‘행운아’라는 노래에는 정말 신기한 기운이 담겨 있습니다. 노랫말처럼 ‘알 수 없는 힘’이 이 노래를 지켜주는 것 같습니다. 한 달에 백만 원 버는 것도 쉽지 않은 인디 가수의 상황에도 그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부릅니다. 한 번 살아보겠다고, 쓰러져도 다시 또 일어나면 된다고 말하네요. ‘니가 없어도’ 그는 자신에게 다가올 행운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 행운아여서 이 노래를 불렀을까요, 아니면 이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행운아인 걸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습니다. 이 노래를 듣는 내내 제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긍정적인 기운을 듬뿍 받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는 ‘나의 노래’라는 곡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덤벼라, 건방진 세상아! 이제는 더 참을 수가 없다. 붙어보자. 피하지 않겠다.”
생각해보면 그의 노래를 들을 당시 저는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제 일과 삶에 대한 그 어떤 확신도 없었죠. 때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제 뒤통수를 때렸어요. 정신 차리라고 말이죠. 실은 아직도 그렇습니다. 불안하고 우울할 때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한 대 제대로 맞은 기분이 듭니다. 정신이 번쩍 들고 나면 한결 기분이 나아집니다. 그의 노랫말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정말 행운아입니다. 활동을 멈춘 지 십여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누군가의 삶을 찬란하게 빛내주고 있으니까요. 그런 환한 빛은 행운아가 아니라면 가질 수 없는 것 아닐지요. 덕분에 저도 모처럼 행운아 코스프레를 해봅니다. 참, 이 주제에 그래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어디선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호통을 치는 듯합니다. 고마워요, 진원이 형(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본명). 이제야 이 말을 남깁니다. 정말 고마웠다고, 당신 덕에 고된 청춘의 길이 외롭지만은 않았다고 말입니다. ‘언제나 웃으며 다시 만나요. 네트는 광활하니까.’ 나무위키에는 그의 사망일이 적혀 있지만, 전 믿지 않으렵니다. 그의 홈페이지 문구처럼 그는 어디선가 숨어 있다가, 슬쩍 웃으면서 인사해줄 것만 같습니다. 네트는 광활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