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1995년 결성돼 홍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밴드 코코어는 델리스파이스, 크라잉넛, 언니네이발관 등과 함께 한국 인디 음악신의 1세대 밴드라 불립니다. 다른 밴드에 비해 인지도는 낮지만 그런지 음악의 개척자이자 공연 문화를 정착시킨 밴드라는 평가(나무위키 참조)를 받는다고 해요. 코코어라고 하면 역시 프론트맨 이우성 씨(보컬, 리듬기타)가 떠오릅니다. ‘커트 코베인’을 연상시키는 거친 목소리가 매력적이죠.
코코어 활동 초기에는 그 존재 자체를 몰랐습니다. 2003년 발매한 3집 ‘슬픈 노래’ 뮤직비디오를 케이블 채널에서 본 게 계기가 됐죠. 몹시 조악한 화면에서 밴드 멤버들은 광대처럼, 하지만 의도적으로 엉터리 분장을 한 채로 거리를 쏘다닙니다. “유행가는 언제나 나를 고문하네/피하고 피해도 늘 나의 귀를 찌르네”라고 외치면서 말이죠. 유행가, 대중가요의 시대에 유행가가 자신을 고문하고 있다는 이 패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코코어의 지난 앨범과 공연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도 코코어는 4집 <Fire, Dance With Me>와 5집 <Relax> 등 좋은 앨범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우성 씨는 이후로도 몸과 마음, 아내와 함께 듀오로 활동한 싸지타 등의 밴드를 결성해 앨범을 몇 장 냈습니다. 현재는 음악 활동은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홍대 부근에서 바를 한다고 들었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무조건 잘됐으면, 사는 데 지장이 없었으면 합니다.
이우성 씨는 남자가 봐도 참 잘생겼습니다. 180센티미터의 훤칠한 키에 말끔한 조각 미남이라 활동 당시에는 팬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는 그런 말끔한 얼굴로 거친 목소리를 내뱉었지요. 특히 제가 좋아했던 노래는 1집 앨범의 ‘아무래도’라는 곡입니다.
난 그냥 내 나름대로 살고 싶은데/넌 이런 날 잘못됐다고 얘기했지만/아무래도 나는 괜찮아 처음부터 나는 원래/난 원래 난 원래 나는 원래 그랬잖아/내가 언젠 내가 언젠 제정신인 적 있었니/아무래도 아무렇게 돼도 난 상관이 없어/내가 언젠 내가 언젠 네 마음에 든 적 있었니/언제나 난 이유 없이 잠 못 이루고/늘 가슴만 너무 빨리 뛰고 있었네/아무래도 이상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누가 봐도 “나는 커트 코베인이다!”라고 외치는 듯한 음악 스타일과 보컬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원래 그랬잖아, 내가 언젠 제정신인 적 있었니? 지방대학의 문예창작학과를 다녔던 저는 열등감 덩어리였습니다(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제가 꿈꾸던 중대 문창과나 서울예대 문창과에 입학하지 못해서, 남들처럼 멋지게 생기지 못해서, 남들에게 주목받지 못해서 저는 마음껏 비뚤어졌습니다. 반골이라기보단 청개구리에 가까웠어요. 이렇게 하라고 하면 저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하면 이렇게 했으니까요.
‘아무래도’라는 곡은 당시 제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했습니다. 잔뜩 갈아서 만들어낸 거친 목소리로 질러대는 “나는 원래 그랬잖아/내가 언젠 네 마음에 든 적 있었니”라는 노랫말은 당시 제 마음 그 자체였으니까요. “이유 없이 잠 못 이루고 늘 가슴만 너무 빨리 뛰고” 있다고 느끼던 시절입니다. “아무래도 이상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죠.
제 청춘을 지배했다고 봐도 좋을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가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다시 들어보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제 청춘의 반항을 지나치게 이상화시키고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저는 이 노래에 빗대 나는 이렇게 반항하는 멋진 청춘이다, 그러니까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덕분에 저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주 주저앉았습니다. 쓰러지고 좌절하고 울고 화를 내도 ‘아무래도’라는 곡은 제게 좋은 변명거리가 됐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잖아. 괜찮아. 다들 그런 거야.
그때 조금만 자신을 객관적으로 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제 꿈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지 않았을까요. 왜 저는 여행하지도 않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보지도 않고, 골방에 갇혀 이 노래에만 열중했던 걸까요. 아쉬움이 남지만 흘러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래요. 제가 저만의 감성과 스타일을 갖게 된 건 따지고 보면 그때 방황의 시간 덕분인지도 모르죠. 그때 제가 바른생활, 새 나라의 어른으로 성장했다면 지금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는 회사원이 됐을까요? 어쩌면 별 볼 일 없으면서도 글도 쓰지 않는 사람으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생각해보면 끔찍하네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 주인공처럼 같은 날을 반복해서 살지 않는 이상은 말이죠. 저는 제 선택으로 하나의 길을 선택했고 그 결과 지금의 제가 만들어졌습니다. 후회도 많고 아쉬운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다른 길을 선택해도 크게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저 앞으로 걸어갈 뿐이죠. 청개구리, 반항의 시절을 거쳐 안착한 지금의 저는 직장을 다니면서 취미로 글을 쓰고 몇 개의 꿈을 품고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때로 꿈은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만족감을 줍니다. 그러니 이제 저는 이런 제 자신이 싫지 않다고 말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