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가수 김광석 씨는 1964년 태어나 1996년 생을 마감했습니다. 서른둘 한창때 눈을 감았네요. 검색하면서 탄식했습니다. 1,000회 이상 공연하며 많은 이를 웃고 울렸던 가객의 생이 고작 32년이라니. 한편으로는 감탄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그 많은 공연 횟수를 소화했다는 게 놀랍지 않나요? 전 그 나이쯤 뭘 했을까요?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
저는 작은 일도, 큰 일도 깊게 많이 생각하는 편입니다. ‘아, 이걸 어쩌지? 혹시 일이 잘못되진 않을까?’ 일이 잘 풀려도 고민합니다. ‘이러다가 일이 어그러지면 어떡하지? 결국 나는 안 되는 사람인 걸까?’ 고민과 불안을 달고 사는 게 일상입니다. 회사 업무와 가족 일은 물론이고, 사소한 선택을 할 때도 그래요. 이를테면 카페에서 그 많은 메뉴 중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면 대체 뭘 마셔야 할지 한참 고민하고는 해요. 고민은 또 다른 고민을 낳고, 그 고민은 또 다른 불안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니 이래저래 불안은 제 곁을 떠나지 않더군요.
어느 퇴근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일과 미래에 대한 고민부터 저녁 식사와 다음 날 도시락 메뉴까지 고민하고 있었지요. 그때 유튜브 뮤직은 알고리즘으로 제게 한 곡을 추천해줬습니다. 김광석의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입니다. 김광석은 서른둘에 멈춰 있으니 저보다는 어린 셈인데도 여전히 그를 ‘광석이형’이라고 부릅니다. ‘광석이 형’이라고 써야 한다고 누군가 말해주지만, 저는 굳이 붙여서 ‘광석이형’이라 쓰고 싶어요. 제게 이 단어는 고유명사 같은 거니까요.
노래 부를 때 목소리도, 중간에 관객에게 건네는 말투도, 친근한 함박웃음도 역시 동네 친한 형 같습니다. 이런 형이 제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형, 소주 한잔할래요? 고민이 있어요.”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을 건네면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라며 툭 말해줄 것 같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크게 웃는 소리도 들릴 것만 같아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오직 슬픔만이 돌아오잖아/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외로움이 친구가 된 지금도/아름다운 노랜 남아 있잖아 (중략)/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어린아이들의 가벼운 웃음처럼/아주 쉽게 아주 쉽게 잊을 수 있어/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스쳐가는 의미 없는 나날을/두 손 가득히 움켜쥘 순 없잖아/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가시 돋친 폐허 속에 남겨진/너의 평범함을 외면하진 마
“외로움이 친구가 된 지금도 아름다운 노랜 남아 있잖아”라는 광석이형 말에 제 마음의 빗장이 열립니다. “스쳐가는 의미 없는 날들을 두 손으로 움켜쥘 순” 없지 않느냐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가시 돋힌 폐허 속에 남겨진 너의 평범함을 외면하”지 말라는 마지막 말에 전 그만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광석이형 말에는 틀린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지나간 일을 깊이 생각한다고 되돌아오진 않겠지요. 저는 <백 투 더 퓨처>의 맥플라이처럼 드로리언(타임머신)을 갖고 있지 못하니까요. 시간은 앞으로만 흐릅니다. 되돌아가는 법이 없어요. 저도 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되돌아보며 후회하고 분노하는 것이 사람인 모양입니다. 원하는 결말은 애당초 다가오지 않을 텐데도, 그걸 잘 아는데도 몰두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럴 때 광석이형이 있었다면 이렇게 말해줬겠지요. “어린아이들의 가벼운 웃음처럼 아주 쉽게 아주 쉽게 잊을 수 있어.”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사랑하는 연인이 떠났든, 가족과 이별했든 한번 닥친 슬픔은 쉽게 제 곁을 떠나주지 않습니다. 알면서도 당하는 것이 슬픔입니다. 그래도 누군가 곁에서 이렇게 말해준다는 건 의미 있는 일입니다. 제가 혼자 걷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가슴은 어느새 따뜻해집니다. 그리고 광석이형은 이런 말도 했겠지요. “가시 돋친 폐허 속에 남겨진 너의 평범함을 외면하진 마.”
깊은 슬픔에 허우적대 길을 찾지 못할 때, 아니 길을 찾고 싶지 않을 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이런 말 같습니다. 한동안 제게 세상은 가시가 돋친 것처럼 위험한 폐허였어요. 아무 길도 보이지 않았죠. 영원히 이 구덩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광석이형은 툭, 아무렇지도 말하는군요. 너는 생각보다 평범한 사람이야. 넌 분명 지금의 고통을 벗어나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거야. 넌 그게 어울리는 사람이니까. 광석이형의 그 말이 저를 다시 위로 끌어올려 주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그동안 제 평범함을 잊고 살았군요. 과장된 아픔과 슬픔은 때때로 그걸 잊게 해주거든요. 좁고 깊은 구덩이에만 빠져 있으면 아무 길도 보이지 않기 마련이지요. 위로 올라오면 버젓이 다른 길이 보이는데 말이에요. 광석이형의 노래를 들으며 문득 그런 생각에 빠진 퇴근길이 있었습니다. 한강을 지나는 퇴근길,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여름이라 낮이 좀 길긴 하더군요. 완전한 어둠이 찾아오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그건 제게도 아직은 기회가 있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