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의 니체 읽기 칼럼
얼마 전 수능시험이 치러졌다. 문득 나의 대입(大入) 학력고사 시험에 얽힌 옛 기억이 떠오른다. 학력고사 전날 나는 교회에 갔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던 그 아이. 나보다 어린 소녀. 산업역군. 교회에는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그 아이가 있었다. 그는 말발이 셌고 교회에 열성적으로 다녔고, 믿음이 좋았고, 웃는 얼굴이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오늘 그 아이가 떠오른다. 발그레하던 얼굴과 강렬한 목소리, 그가 습관처럼 하던 말이 생각난다. “죽어서 보자.” 이 말을 할 때마다 그녀는 웃었다. 선하고 촌스러운 미소가 붉고 까만 얼굴에 일렁이던 아이, 나는 그와 수다를 떨면 마음이 아팠고, 그에게 끌렸다. 왜 끌렸는지는 모른다. 세상을 향해 “죽어서 보자”라는 듣기 거북한 말을 자랑처럼, 내뱉던 아이. 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해 주려고 애쓰던 아이. 아직 세례도 받기 전 초심자인 나는 그의 말을 잠자코 들었고, 끄덕여주었다.
현실의 어려움을 참고 열심히 사는 그는 저 천국을 생각하며 오늘을 견디고 있었다. 지금 나 힘들지만 죽어서 보자. 당신들이 지옥에 있을 때 나는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거야,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항상 자신의 믿음에 대해 자랑했다. 신앙심만이 그의 재산이었다.
나는 자주 죄의식에 사로잡혔다. 믿음 없는 자라는 자책. 그녀가 믿음에 대해 말할 때면 주눅이 들었다. 왜 나에게는 믿음이 안 생기지? 믿음이 안 생기는 것은 교만 때문이라고 목사님은 말했다. 그때 자부심으로 환해지던 그 아이 얼굴. 그녀의 안부가 궁금하다. 니체를 읽을 때면 그 아이가 떠오른다. “죽어서 보자”
니체는 후기작 <선악의 저편>에서 ‘그리스도교를 대중을 위한 플라톤주의’로 규정한다. 플라톤의 형이상학적 관념론은 니체 이전 2500년을 서양사회의 주류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니체는 플라톤주의의 지반을 흔들어 놓았다.
앞서 말했듯이 니체는 그리스도교를 플라톤 철학의 종교적 버전으로 이해한다. 생성하는 이 세계를 부정하고 영원한 저편 세계를 상정하고 실재라고 믿는. 실제로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 <파이돈>에는 사형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가 혼 불멸론을 주장하는 내용이 나온다. <변론>에서는 죽음을 원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소크라테스는 몸에서 빠져나간 혼은 불멸하며, 혼들과 신들이 사는 저편 세계를 믿는다는 것이다. 이 대화편들에서 소크라테스는 저승에서 미노스, 아이아코스 같은 저승 재판관들과 호메로스 같은 영웅들을 만나는 기쁨을 말하기도 한다. 죽음을 찬양하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죽어서 보자’고 말하는 그 아이가 떠오른다.
때문에 니체는 플라톤 철학을 그리스도교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이 세계의 삶을 나그네의 삶으로 비유하고 잠시 왔다가는 이 세계에 의미를 두지 말라고 가르친다. 영원한 저 세계의 영원한 삶을 위해 오늘 이 세계, 이 삶을 부질없고 덧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니체는 신(神)은 사람이 만든 작품, 즉 ‘사람의 광기가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말한다. 삶이 고달픈 이들이 삶을 위안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 신이라는 설명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배후 세계를 신봉하는 사람들에 대하여’에서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도 한때는 이 세계를 한낱 허구로 보았다고 고백한다. 해서 자신 또한 ‘인간 저편에 대한 망상을 품고 있었다’고. 그러나 그것은 허구라고. 그러니까 니체는 배후 세계라는 것은 현실의 고통에 때문에 무기력한 자들이 꾸며낸 망상이라는 것이다. ‘신체에 절망한 자들이’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신을 만들었으나 이 신의 세계는 인간을 배반하고 인간을 소외시켰다고.
니체는 나약하고 병든 자들이 구원을 희망하며 이 삶에서 벗어나 보려 했으나 사실 구원도 천국도 없으니, 부디 병으로부터 쾌유하여 건강한 정신을 찾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부디 ‘구원’에서 구원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스무 살 시절 그 소녀는 죽어서 보자고 외쳤다. 단 한번뿐인 이 삶을 기뻐하며 경쾌하게 살아야 할 소녀는 벌써 죽음 이후의 세계를 꿈꾼다. 그것을 니체는 병든 자의 전형이라고 본다. 이 세계의 삶에 봉사하는 해석과 인식만이 필요하다고 니체는 생각한다. 니체는 말한다. 그들이 천상의 초월의 세계를 꿈꾸고 그런 망상을 만들어낸 것도 사실은 이 대지에서의 삶을 잘 살기 위해 고안한 것이라고.
“진정 저들이 가장 신앙하고 있는 것은 배후 세계도 구원의 핏방울도 아니다. 그것은 신체렷다. 저들 자신의 신체가 바로 저들의 사물 그 자체인 것이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고통과 무의미와 무기력으로 가득한 이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 발명해낸 관념이 거꾸로 그 신체를 깔보고 삶을 비방하고 세계를 왜소하게 했다는 설명이다.
그 소녀는 지금은 중년이 되었을 것이다. 나보다 두어 살 어린 그 아이,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붉은 뺨과 나풀거리던 단발머리의 소녀는 지금도 죽어서 보자고 말하고 있을까? 시골에서 상경하여 열심히 돈 벌어 집에 보내고 일이 끝나면 교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소녀. 십일조 헌금과 감사헌금을 꼬박꼬박 챙겼으며 울부짖는 목소리로 기도하던 그녀의 해사한 얼굴을 기억한다. 노래라면 찬송가만을 거룩하게 불렀고, 그 시대 소녀들이 좋아할 만한 가요는 불온한 전염병이라도 되는 듯 멀리했던 그녀. 이제는 이름도 가물거리고 웃던 얼굴만 어슴푸레하게 떠오른다. 그 웃음을 생각하면 그 시절의 곤궁이 떠오르고 그 시절의 슬픔이, 그 시절의 허기가 몰려온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찬송가를 부르던 그녀, 꽃처럼 웃던 소녀.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이 삶이 명랑한 복음이 되기를 주문해본다.
니체에게 신체는 커다란 이성이다. 정신이 작은 이성이라면 신체는 큰 이성이며 우리는 이 신체 하나로 살아간다. 인간은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니체는 말한다. ‘영혼이란 것도 신체에 깃들어 있는 어떤 것’이라고.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적 사고를 니체는 거부한다.
그러니까 기껏 우리들 정신이 발명해낸 낸 저 허구의 세계를 위해 이 구체적인 삶과 몸을 경멸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신(神)을 만들어 낸 우리의 정신이란 결국 커다란 이성인 자기, 곧 나의 신체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그런데 작은 이성, 즉 정신이 만들어낸 존재하지 않는 배후 세계를 위해 이 세계를 부정하고, 살아있는 존재인 자기를 부정하는 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하다. 이 어리석은 자들 때문에 이 자들의 자기가 스스로 몰락하려고 한다고.
“내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들의 자기 스스로가 이제 죽기를 원하여 생에 등을 돌리고 있다. 그가 무엇보다 소망해온 것,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창조하는 것을 더 이상 할 수 없으니 그것이 그가 가장 바라는 것이며, 그의 전 열망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 때가 늦었다.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이여, 그 때문에 너희의 자기는 몰락하려는 것이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변화를 경멸하고 삶을 부질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정신에서 벗어나 창조하는 자가 되라고 니체는 말한다. 배후 세계나 이데아 세계는 플라톤의 작품이며, 플라톤의 정신은 플라톤이라는 신체가 존재함으로써 창작이 가능했던 것이다. 플라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의 정신도, 그의 정신의 작품인 플라톤의 철학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절친이 되었을 즈음 그녀는 종적을 감추었다. 술집으로 직장을 옮겼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 후 그 아이를 두 번 더 만났다. 그 해 4월과 7월. 내가 다니는 대학 교정에, 목련이 지던 어느 날 그녀가 왔다. 태양이 뜨거운 정오. 눈을 쌍꺼풀 수술했고, 볼에 긴 흉터가 있었다. 어떤 손님이 맥주잔을 던져서 파편이 얼굴에 튀면서 생긴 흉터라고 했다. 수입이 많아졌냐고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는 소녀가 아니라 처녀가 되어 있었다. 7월에 그녀는 한 번 더 학교로 나를 찾아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많은 시간이 지난 어느 여름, 그녀를 생각하며 쓴 시가 있다. 시의 전문(全文)이다.
그 얼굴을 기억한다
그 유리창을 기억한다
태양이 낮은 도시를 성큼성큼 걸어 내려온
그 여름을 기억한다
태양을 향해 돌을 던지던 그 아이들을 기억한다
그 여름에 내가 먹던 돼지두부찌개를 기억한다
그 여름에 그가 도마 위에 썰어내던 두부의 반듯한
정사각형을 기억한다
그의 칼의 도마의 손의 정교한 숙련을
찌개에서 끓던 더위를, 술잔에 묻어있던
마약의 얼굴을
태양의 발작을 기억한다
풍성한 젖무덤의 나보다 어린 술집 소녀를 기억한다
으깨어진 두부를 게워내며 노래하던, 그 여름밤
너를 기억한다
그 여름을 먹고 핀 꽃, 불치병 내 사랑을 기억한다
지금 노화되는 세포의 괴사를 기억한다
그 날 그 포장마차, 더러운 의자들, 달리던
자동차의 경적을 기억한다
오늘 밤 나를 사 가세요 나를 가지세요 짧은
스커트의 해쓱한 소녀를 기억한다
그때 울었는가? 우리
지금 네 그림자를 기억한다
-천경, 시 <그 여름을 기억한다> 전문 , 시집<고독 혹은 빨강색에 대하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