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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Oct 02. 2019

민법 제103조,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축하합니다. 우리는 [물건]에 관한 파트를 마치고, 드디어 [법률행위]에 관한 파트로 접어들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특히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나오니 더 열심히 공부하여야겠습니다.


우리는 예전에 법률요건, 법률행위의 개념에 대해 이미 공부한 적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복습해 봅시다. 철수는 영희에게 자신의 볼펜을 팔고 싶습니다. 철수가 영희에게 "나의 볼펜을 1,000원에 너에게 팔고 싶다"라고 의사표시한다면, 이는 법률사실(법률요건을 구성하는 개개의 사실)입니다. 영희가 철수에게 "그래, 나는 1,000원에 너의 볼펜을 사는 것에 동의한다."라고 의사표시하면 이 역시 법률사실입니다.


이 법률사실이 모여서 철수와 영희 간의 매매계약 성립이라는 법률요건(법률효과를 가져오는 원인)을 만들어냅니다. 매매계약 성립이라는 법률요건은 마침내 철수로부터 영희에게로 볼펜의 소유권이 이전되는 법률효과를 가져옵니다.


간단히 도식화하면 법률사실이 모여서 → 법률요건이 되고, → 법률요건이 법률효과(권리의 변동)를 일으킨다, 이렇게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 법률요건 중에서 의사표시를 요소로 하는 법률요건을 법률행위라고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말한 철수-영희 간의 매매계약은, 철수와 영희의 의사표시를 구성요소로 하고 있는("너에게 볼펜을 팔겠다", "볼펜을 사는 것에 동의한다") 아주 전형적인 법률행위입니다.


이러한 법률행위는 계약과 단독행위, 합동행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계약은 위에서 본 매매계약과 같은 것입니다. 상호 간의 복수의 의사표시로 성립하는 법률행위가 바로 계약입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는, 철수의 의사표시와 영희의 의사표시 2개가 합쳐져야 '매매계약'이라는 법률행위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또 이런 예를 생각해 봅시다. 철수는 자신의 아들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했습니다. 이 유언에는 아들의 의사표시는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로지 철수의 의사표시("재산을 물려주겠다")만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언이라는 이 행위만으로도 철수의 사망과 동시에 아들은 철수의 재산에 관한 소유권을 취득하게 됩니다. 즉, 유언 자체가 바로 법률행위인 겁니다.


이런 예시도 있습니다. 영희는 자신이 가진 볼펜이 너무 디자인이 별로라서 싫습니다. 그래서 그냥 버렸습니다. 영희는 볼펜에 관한 자신의 소유권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위에는 오로지 영희 혼자만의 의사표시("이 볼펜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겠다")만 들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사표시는 전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이처럼 유언이나 권리 포기와 같이 1개의 의사표시만으로도 성립하는 법률행위단독행위라고 합니다.


법률행위의 마지막 유형으로 합동행위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건 상당히 특수한 유형인데요, 위에서 말한 계약은 철수와 영희 간의 의사표시가 서로 '대립'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철수는 '영희를 향하여' 볼펜을 팔려는 의사표시를 건넨 것이고, 영희는 '철수를 향하여' 볼펜을 사겠다는 의사표시를 건넨 것입니다. 의사표시의 방향을 화살표로 그려 보면, 양자는 서로 대립하는 방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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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합동행위는 화살표의 방향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단법인의 설립행위입니다. 철수와 영희가 모여서 사단법인을 만들기로 하였다면, 철수의 의사표시("사단법인 A를 설립하겠다")와 영희의 의사표시("사단법인 A를 설립하겠다")는 대립적이지 않습니다. 공동의 목적을 향해 한 방향으로 뻗어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법률행위가 있으면 의사표시의 수를 세어 보세요. 1개면 단독행위, 2개 이상이면 계약 아니면 합동행위입니다. 의사표시가 여러 개면, 그 의사표시가 서로 대립적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세요. 대립적이면 계약입니다. 



지금까지 법률행위의 유형에 관한 기초지식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법률행위는 있다고 해서 항상 유효한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법률행위는 존재하여도 효력이 없을 수 있습니다. 법학에서는 법률행위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요건을 충족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1. 법률행위의 당사자가 권리능력, 의사능력, 행위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법률행위는 유효하다.

권리능력이 있어야 일단 소유권이든 무엇이든 가질 수 있겠지요? 당연한 요건입니다. 민법 제4조 부분을 다시 복습하고 오세요. 의사능력은 법률행위를 하기 위한 기초적인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의사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행위능력도 제한되면 안 될 것입니다.


2. 법률행위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정이 되어야 법률행위는 유효하다.

법률행위의 내용 자체가 구체적으로 확정이 안 되면, 그건 법률행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서로 의사표시가 있더라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가 모호해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로 해석될 수 있다면 법률행위는 유효하게 성립할 수 없습니다.


3. 법률행위의 내용이 실현 가능해야 법률행위는 유효하다.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으면 1억 원을 받기로 하는 계약"이 유효할 수 있을까요? 애초에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법률행위는 무효입니다. 물론, 미래에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리는 기술이 진짜 개발되면 말이 좀 달라지겠네요.


4. 법률행위의 내용이 적법하여야 법률행위는 유효하다.

사실 너무 당연한 말이기는 합니다. 적법하여야 법률행위는 유효한 것이지요. 여기서의 '적법'이란 강행규정에 위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임의규정(당사자의 의사로 배제할 수 있는 규정)과 강행규정(당사자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강제적으로 적용되는 규정)에 대해서 공부한 것, 기억하십니까? 강행규정은 법률에서 '이건 꼭 지켜라'라고 강제로 정한 것이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공부한 법인의 청산절차에 관한 규정은 강행규정이므로, 이를 위반하여 법인에서 정관에 다르게 정했다고 해도 이는 모두 무효입니다.


5. 법률행위의 내용이 사회적으로 타당하여야 법률행위는 유효하다.

자, 지금까지 말한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법률행위가 있다고 합시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아내가 있는 유부남입니다. 그런데 이 나쁜 놈이 영희라는 젊은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불륜입니다. 철수는 영희와, "아내와 2019년 12월 31일까지 이혼하고 영희와 결혼할 것이며, 그러지 아니할 경우 1억 원을 영희에게 지급하겠다"라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철수와 영희는 모두 권리능력, 의사능력 온전히 있고요, 법률행위의 내용도 명확하면서 실현 가능합니다. 또, 아내와 결혼한 상태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을 약속하는 것을 금지하는 강행규정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 계약(법률행위)를 유효하다고 하자니 무언가 굉장히 이상하지 않습니까?


네, 이 계약은 사회적으로 타당하지 않는, 소위 반사회적인 계약이기 때문에 무효입니다. 이게 바로 다섯 번째 요건인 '사회적 타당성'이며, 오늘 공부하는 제103조에서 규율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행위는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로서 무효라는 것입니다.


판례는 제103조의 의미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민법 제103조에서 정하는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는 법률행위의 목적인 권리의무의 내용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그 내용 자체는 반사회질서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여도 법적으로 이를 강제하거나 법률행위에 사회질서의 근간에 반하는 조건 또는 금전적인 대가가 결부됨으로써 그 법률행위가 반사회질서적 성질을 띠게 되는 경우 및 표시되거나 상대방에게 알려진 법률행위의 동기가 반사회질서적인 경우를 포함한다."(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9다37251, 판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철수와 영희 간의 계약은 무효이므로, 철수가 아내와 이혼하지 않더라도 계약 위반이 될 수가 없으며, 영희에게 1억 원을 줘야 할 의무도 없게 됩니다. 물론, 아내가 가정 파탄을 이유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지만요.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철수는 영희와 맺은 계약이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12월 31일까지 아내와 이혼하지 못하자 약속대로 1억 원을 영희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나중에야 자신이 맺었던 계약이 민법 제103조에 해당하여 무효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철수는 계약이 무효임을 이유로 영희에게 1억 원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일반적으로 계약이 무효인 때에는 그 계약에 따라 이득을 얻은 사람은 부당이득을 얻은 것이 되어, 상대방이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있어야 맞습니다.


그러나 철수의 경우까지 이를 허용한다면, 애초에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를 한 철수를 법률이 보호하는 꼴이 되어(물론 영희도 괘씸하지만), 이상한 모양새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 민법은 불법을 원인으로 하는 재산의 급여 등에 있어서는 그 이익을 돌려줄 것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746조(불법원인급여) 불법의 원인으로 인하여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불법원인이 수익자에게만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민법 제746조에 따른 불법원인급여의 법리를 자세히 공부하기엔 지금 시점에서 너무 복잡하므로, 여기서는 그냥 '철수는 무효인 계약을 이행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행해 버린 뒤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할 수도 없다' 정도로만 알고 지나가시면 되겠습니다.



공부하면서 느끼셨겠지만 사실 '사회질서'라는 표현 자체가 모호한 감이 있습니다. 추상적이고 불확정적인 표현입니다. 그래서 제103조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는 구체적인 사건에 따라 꼼꼼히 살펴보아야 하며, 유사한 사례에서 판례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확인하여야 할 것입니다.


내일은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공부한 내용,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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