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법과의 만남 Oct 04. 2019

민법 제104조, "불공정한 법률행위"

제104조(불공정한 법률행위)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오늘은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표현이 좀 특이합니다. '궁박'(窮迫)에서 '궁'은 막히다, 다하다, 어렵다, 라는 뜻입니다. '박'은 궁하다, 다그치다, 라는 뜻입니다. 즉 궁박이란 막히어 급하고 어려운 사정을 뜻합니다.

'경솔'이란 의사를 결정할 때에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것만큼 심사숙고하지 않고 판단하는 것을 말하며, '무경험'이란 말 그대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니 판례에서 제104조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볼까요?


"불공정한 법률행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인 궁박, 경솔, 무경험은 모두 구비되어야 하는 요건이 아니라 그 중 일부만 갖추어져도 충분한데, 여기에서 '궁박'이라 함은 '급박한 곤궁'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경제적 원인에 기인할 수도 있고 정신적 또는 심리적 원인에 기인할 수도 있으며, '무경험'이라 함은 일반적인 생활체험의 부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어느 특정영역에 있어서의 경험부족이 아니라 거래일반에 대한 경험부족을 뜻하고, 당사자가 궁박 또는 무경험의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는 그의 나이와 직업, 교육 및 사회경험의 정도, 재산 상태 및 그가 처한 상황의 절박성의 정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구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며, 한편 피해 당사자가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의 상태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상대방 당사자에게 그와 같은 피해 당사자측의 사정을 알면서 이를 이용하려는 의사, 즉 폭리행위의 악의가 없었다거나 또는 객관적으로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존재하지 아니한다면 불공정 법률행위는 성립하지 않는다."(대법원 2002. 10. 22., 선고, 2002다38927, 판결)


판례의 요지는 첫째, 제104조에서 제시되는 궁박-경솔-무경험의 요건은 그중 1개만 충족되어도 상관없으며, 둘째, 궁박하거나 무경험인 사정은 일률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따라서 맥락을 꼼꼼히 살펴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104조에 따라 '공정함'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가 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영희는 철수와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어느 날 철수가 운전하던 차량을 민수의 트럭이 덮치는 바람에 교통사고로 철수가 갑자기 사망해 버렸습니다. 영희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습니다.


사실 철수에게는 영희가 모르는 빚이 있었습니다. 철수가 갑자기 사망하자, 철수의 채권자들은 돈을 받아내려 영희를 찾아오고, 영희는 더욱 충격에 빠집니다. 바로 그때, 가해자인 민수의 보험회사 직원이 영희를 찾아옵니다. 직원의 말은 이렇습니다. "많이 힘드시지요? 남편분께서도 빚도 남기시고. 저희 고객님(=민수)께서도 많이 죄송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해배상금을 드리려고 하는데, 요만큼만 드려도 괜찮으시겠지요?"


직원이 내민 손해배상금은 굉장히 적은 금액이었지만,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고 남편의 죽음으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던 영희는 결국 그 돈이라도 받기로 하고 보험회사 직원과 합의해 버립니다. 적은 돈을 받고, 향후 어떠한 민사 또는 형사 소송도 제기하지 않겠다고 해버린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서야 영희는 자신이 잘못 판단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계약이 제104조에 해당하는 불공정한 법률행위입니다. 영희는 상식적으로 아주 궁박한 상황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험회사는 그 상황을 '이용'하여 불공정한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러한 계약은 무효입니다.


우리의 판례 역시 유사한 사안에서 "피해자가 사망한 후 망인의 채권자들이 그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하여 법적 조치를 취할 움직임을 보이자 전업주부로 가사를 전담하던 망인의 처가 망인의 사망 후 5일만에 친지와 보험회사 담당자의 권유에 따라 보험회사와 사이에 보험약관상 인정되는 최소금액의 손해배상금만을 받기로 하고 부제소 합의를 한 경우, 그 합의는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한다"(대법원 1999. 5. 28., 선고, 98다58825, 판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제104조에 해당하기 위한 요건을 정리해 봅시다.


1. 당사자가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의 상황에 놓여 있어야 한다.

이 중 1개만 해당하여도 상관없다고 위에서 설명했었습니다(판례).


2. 행해진 법률행위가 현저하게 공정성을 잃은 것이어야 한다.

당사자가 궁박한 상황에 있었을 때 이루어진 법률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공정한 것(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것)이라면 그건 무효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경우에는 무효로 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더 안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현저하게 공정성을 잃은’ 것일까요? 대체로 학설은 급여와 반대급여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있는 것을 뜻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매매계약이 있으면 그 계약의 목적물(급여)과 돈(반대급부)를 비교하면 될 것입니다. 급여와 반대급여의 객관적 가치를 비교하면 될 것입니다(김용덕, 2019). 


우리의 판례는, “민법 제104조가 규정하는 현저히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라 함은 자기의급부에 비하여 현저하게 균형을 잃은 반대급부를 하게 하여 부당한 재산적 이익을 얻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기부행위와 같이 아무런 대가관계 없이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일방적인 급부를 하는 법률행위는 그 공정성 여부를 운위할 수 있는 성질의 법률행위가 아니다”라고 합니다(대법원 1993. 3. 23. 선고 92다52238 판결).


그렇다면 ‘공정성을 잃은 것을 판단하는 시점’은 언제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판례는 어떤 법률행위가 ‘불공정한 것인지’ 판단하는 시점은 “어떠한 법률행위가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하는지는 법률행위 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라고 합니다(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1다53683,53690 전원합의체 판결). 이 판례는 굉장히 유명한 판례이니 한 번쯤 읽어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3. 상대방이 당사자의 궁박, 경솔, 무경험의 상황을 이용하려는 악의가 있었어야 한다.

이 내용은 사실 제104조에 등장하지 않는 문장입니다. 그런데 왜 요건으로 하느냐? 판례가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물론 이러한 판례의 태도에 대해서는 학설의 비판도 있습니다). 사실 당사자의 궁박한 상황을 이용하려는 악의가 없었는데도 그 법률행위를 무효로까지 하는 것은 조금 과한 측면도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판례는 "민법 제104조에 규정된 불공정한 법률행위는 객관적으로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존재하고, 주관적으로 그와 같이 균형을 잃은 거래가 피해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을 이용하여 이루어진 경우에 성립하는 것으로서, 약자적 지위에 있는 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을 이용한 폭리행위를 규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바, 피해 당사자가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의 상태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상대방 당사자에게 위와 같은 피해 당사자측의 사정을 알면서 이를 이용하려는 의사, 즉 폭리행위의 악의가 없었다면 불공정 법률행위는 성립하지 않는다."(대법원 2002. 9. 4., 선고, 2000다54406, 판결)라고 합니다.


구체적인 학설의 논의와 논거를 일일이 열거하자면 지나치게 어려우므로, 상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민법 교과서를 참조하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대해서 공부했는데,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불공정한 법률행위도 사실 제103조에서 말하는 반사회적인 법률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반사회적인 행위와 불공정한 행위는 서로 딱 칼같이 나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타당한 의문입니다. 그래서 제103조와 제104조 간의 관계를 둘러싼 학설의 논란이 있었습니다. 여러 의견이 있지만, 우리의 다수설과 판례는 제103조에서 정한 '반사회적 법률행위'의 예시로서 제104조가 '불공정한 법률행위'를 언급하고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제103조가 좀 더 넓은 개념이기 때문에, 제104조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제103조에 해당하여 무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 굉장히 많은 내용을 공부했는데요, 모두 중요한 내용이어서 더 간단히 설명드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내일은 좀 쉬운 내용을 공부하겠습니다.




19.10.4. 작성

22.11.25. 업데이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