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조(대리행위의 효력) ①대리인이 그 권한내에서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한 의사표시는 직접 본인에게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
②전항의 규정은 대리인에게 대한 제삼자의 의사표시에 준용한다.
오늘부터는 대리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지금까지도 자주 나왔던 개념이기 때문에 앞서 몇 차례 설명을 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기억하시나요? 주로 법인 파트에서 공부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조항 말이지요(제59조제2항). 추억을 더듬어 보면서 본격적으로 대리의 개념을 공부해 보겠습니다.
제59조(이사의 대표권) ①이사는 법인의 사무에 관하여 각자 법인을 대표한다. 그러나 정관에 규정한 취지에 위반할 수 없고 특히 사단법인은 총회의 의결에 의하여야 한다.
②법인의 대표에 관하여는 대리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제114조를 보면 처음 읽는 사람은 좀 헷갈리게 쓰여져 있습니다. 대리인이 권한 내에서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한 의사표시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제114조제1항에서 말하는 '본인'은 '대리인 자기 자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효과를 실제로 받는 '본인'을 말합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제게 대리인이 자기 스스로를 위하여 한 의사표시라는 뜻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려우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서울에 사는 철수는 인터넷을 뒤지다가 제주도에 있는 좋은 토지가 저렴한 가격에 매물로 나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좋은 매물이라 지금 사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팔릴 것 같습니다. 문제는 철수가 지난주에 사고를 당하여, 병원에서 꼼짝도 못 하는 상황입니다.
이 경우 철수는 자신의 친한 친구인 영희를 대리인으로 하여, 본인(철수)을 위한 것임을 표시한 의사표시("철수의 대리인으로서 나, 영희는 이 토지를 사겠다")를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영희는 병원에 있는 철수 대신 제주도로 건너가 토지를 구입할 수 있고, 철수는 적법하게 토지의 소유자가 됩니다.
만약 대리제도가 없다고 하면? 당사자가 항상 직접 의사표시를 하여야 하므로 절차가 복잡해집니다. 우선 영희가 제주도로 가서 자신의 명의로 토지를 직접 사고, 그 후 철수에게 다시 토지소유권을 이전하여야 합니다. 이 경우 세금과 같은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철수 입장에서는 영희가 토지를 산 후 마음이라도 바꿔 먹게 되면 상황이 꼬이게 될 수 있어 굉장히 번거롭습니다.
여기까지 공부하였다면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대리제도를 아무 때나 쓸 수 있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요. 사실 토지 소유자 입장에서는 난생처음 보는 영희가 와서 "나는 철수의 대리인입니다. 그러니까 철수 명의로 계약합시다."라고 해도 어떻게 믿겠습니까. 증거가 있어야 믿지요. 결국 대리제도가 현실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요건과 절차가 필요합니다.
대리가 유효한 행위(의사표시의 효력이 본인에게 귀속되는 것)가 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요건이 필요합니다.
대리권이란, 대리를 할 수 있는(그럼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그 효과를 귀속시킬 수 있는) 법률상의 지위나 자격(권한)을 말합니다. 대리권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는, 당사자인 본인이 직접 대리를 부탁하면 됩니다. 위의 사례에서는 철수가 영희를 찾아가, "제주도에 있는 저 땅을 사기 위하여 나의 대리인이 되어 다오."라고 하는 겁니다. 간단합니다. 이처럼 본인이 대리인에게 대리권을 스스로 부여하는 행위를 수권행위라고 합니다.
이러한 수권행위는 꼭 문서로 하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말로 해도 됩니다. 물론 나중에 소송으로 이어지게 되면 말은 증거로 남지 않기 때문에 입증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현실에서는 보통 위임장 같은 문서를 작성하여 법률관계를 명확히 밝혀둡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이 작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리권이라는 것은 본인의 수권행위가 없더라도 생겨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바로 법률에 의해서 생겨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민법에 따르면 친권을 행사하는 부모는 미성년자인 자녀의 대리인이 됩니다(제911조).
제911조(미성년자인 자의 법정대리인) 친권을 행사하는 부 또는 모는 미성년자인 자의 법정대리인이 된다.
누구나 미성년자이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런데 부모님께 직접, "어머니와 아버지가 제 대리인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신 분, 있습니까? 이런 수권행위가 없더라도 당연히 친권을 행사하는 부모는 제911조에 의하여 대리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수권행위가 없이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대리권을 갖게 되는 사람을 법정대리인이라고 합니다. 한편, 앞서 영희의 경우처럼 당사자로부터 직접 수권행위를 받아 대리권을 갖게 되는 사람은 임의대리인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대리인이 유효한 대리를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법정대리권이든 임의대리권이든 대리권을 갖고는 있어야 합니다.
제114조제1항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일단 위에서 철수는 "제주도에 있는 토지를 매입하는 일"을 영희에게 부탁했지, "자기 집에 있는 중고 냉장고를 처분하는 일"을 맡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영희가 사라는 토지는 안 사고 갑자기 철수의 중고 냉장고 처분을 대신해버린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구체적으로 공부할 테니 일단은 넘어가겠습니다.
대리인은 단순히 권한 내에서 대리하여야 할 뿐 아니라, 의사표시가 '본인'(사례의 경우 '철수')을 위한 것임을 표시하여야 합니다("저는 철수의 대리인으로서 그를 대신해 땅을 사러 온 영희입니다"). 이를 '이름을 드러낸다'고 하여 현명주의(顯名主義)라고 합니다. 어려운 한자어이지만 법률 상식을 넓힌다고 생각하시고 외워 두세요.
현명주의, 이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겁니다. 제주도에 있는 토지 소유자는 영희가 누군지, 철수가 누군지 모릅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찾아온 영희가, '자신이 철수의 대리인'임을 밝히지 않는다면 토지 소유자로서는 당연히 매매계약의 상대방이 영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우리 민법이 현명주의를 취하는 이유는 의사표시의 상대방을 보호하려는 데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1항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제2항은 '대리인에 대한 제3자의 의사표시'에 제1항을 준용한다고 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표현은 어렵지만 내용은 간단합니다. 제1항은 적극적으로 대리인이 누군가에 대하여 대신 의사표시를 '하는' 경우를 상정하고 있는데, 다른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소극적으로 다른 누군가의 의사표시를 대신 '받아' 주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그것도 일종의 대리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처럼 대리인이 제3자로부터 의사표시를 대신 받아 주는 경우를 수동대리(소극대리)라고 하며, 앞서 공부한 것처럼 적극적으로 대신 의사표시를 하는 경우를 능동대리(적극대리)라고 합니다. 단어가 좀 어렵습니다.
제2항의 뜻을 해석하면, 수동대리의 경우에는 '상대방'이 본인에 대한 의사표시임을 표시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동대리에서는 대리인은 '수동적'으로 의사표시를 받기만 하는 것이므로, 수동대리를 하는 사람의 의사표시가 적극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현명을 하여 의사표시를 수령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네, 수동대리에서는 (대리인의) 현명주의가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자신의 A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아, 자신의 A아파트를 사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영희가 대신 맞이하여 의사표시를 받아 줄 것을 부탁해 두었습니다. 철수의 집이 매물로 나온 것을 부동산 업체에서 확인한 나부자는 영희를 찾아가 "철수의 A아파트를 사고 싶다"라는 의사표시를 합니다. 영희는 나부자의 의사표시를 수동적으로 수령할 뿐입니다. 영희(수동대리인)는 현명을 하여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나부자(상대방)가 "A 아파트를 사고 싶다"라는 의사표시를 하면서 바로 '철수'의 아파트를 사고 싶다는 뜻을 밝히지 않으면, 이는 제114조제2항을 위반한 것이 되어 영희의 수동대리가 철수에게 귀속되는 효과가 발생하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114조제1항과 제2항을 공부했는데, 대리제도는 본질적으로 인정되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114조에도 명시적으로 '의사표시'라고 쓰고 있는 만큼, 대리는 원칙적으로 의사표시를 요소로 하는 법률행위에 인정됩니다. 예를 들어 빚을 갚지 않는 행위(채무불이행)는 의사표시를 요소로 하지 않고, 법률행위도 아니므로 대리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사실 누군가를 '대신하여' 돈을 갚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긴 합니다.
물론 법률행위라고 해서 모두 다 대리가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외적으로 대리를 할 수 없는 법률행위도 있긴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혼인입니다. 철수를 대신하여 민수가 영희와 결혼생활을 하되 남편으로서의 법률적인 책임은 철수가 지도록 하는 것,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저는 혼인신고 남편이 대리해서 했는데요? 이렇게 물어보시는 분이 있었는데 '혼인신고'를 대리한 것이지 '혼인'을 대리한 것은 아님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법률행위가 아닌 준법률행위에서도 그 특성상 일부 대리가 적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설명이 다소 어려울 수 있으니 관련된 조문에서 따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대리의 개념과 대리제도의 기본에 대하여 공부하였습니다.
내일은 현명주의의 위반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