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법과의 만남 Nov 20. 2019

민법 제134조, "상대방의 철회권"

제134조(상대방의 철회권) 대리권없는 자가 한 계약은 본인의 추인이 있을 때까지 상대방은 본인이나 그 대리인에 대하여 이를 철회할 수 있다. 그러나 계약당시에 상대방이 대리권 없음을 안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그동안 지겹게 들었던 사례를 다시 들어 봅시다. 철수(본인)의 옆집에 사는 영희(무권대리인)는 철수에게 못된 마음을 품고 철수 소유의 A 부동산을 나부자(계약 상대방)에게 매도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희는 자신이 철수의 정당한 대리인인 것처럼 행세하였고, 나부자는 이를 믿었습니다.


나부자는 사실 선의의 피해자입니다. 이런 나부자를 법률에서는 보호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제131조에서 공부했던 '상대방의 최고권' 역시 나부자와 같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입니다. 오늘 공부할 제134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부자는 계약서를 쓰고 난 뒤에야 영희가 정당한 대리인이 아니었음을 알았습니다. 이제 나부자가 취할 수 있는 옵션은 2가지입니다. 첫째, 만약 A 부동산이 정말로 좋은 땅이고, 나부자 입장에서는 꼭 이 계약을 지켜내고 싶다면 제131조에 따라 철수(본인)에게 추인할 것인지 확답을 촉구할 수 있습니다. 철수가 추인하면 나부자 입장에서는 좋은 일입니다. 거절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요.


둘째, 영희(무권대리인)가 자신을 속인 것도 기분 나쁘고, 이 계약 자체도 생각해보니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부자는 제134조에 따라 계약을 철회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본인의 추인이 있기 전까지 가능한 것입니다. 이를 계약 상대방의 철회권이라고 합니다.


다만 나부자가 처음부터 영희에게 대리권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이 철회권은 인정되지 않습니다(제134조 단서). 당연한 것입니다. 악의의 계약 상대방은 민법에서 딱히 보호해 줄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부자(계약 상대방)이 철회권을 사용하게 되면 '계약'은 확정적으로 무효가 되며, 나부자는 계약에 따른 채무를 이행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또, 철수(본인)은 이미 계약이 무효가 되었기 때문에 이를 추인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


지금까지 민법을 공부해 오시면서 느낄 수 있는 부분이지만, 우리의 민법은 최대한 당사자 간의 공평을 기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완벽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개선해야 할 부분은 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한능력자 파트를 다시 생각해 보시면, 제한능력자를 보호하면서도 한편으로 제한능력자의 거래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확답을 촉구할 권리, 철회권과 거절권, 제한능력자의 속임수로부터의 보호)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권대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을 보호하면서도 한편으로 또 계약의 상대방을 지킬 수 있는 장치를 민법은 두고 있는 것입니다. 제한능력자 파트와 비교하면서 공부하시면, 더 재미있을 겁니다.


내일은 상대방에 대한 무권대리인의 책임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