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조(출연재산의 귀속시기) ①생전처분으로 재단법인을 설립하는 때에는 출연재산은 법인이 성립된 때로부터 법인의 재산이 된다.
②유언으로 재단법인을 설립하는 때에는 출연재산은 유언의 효력이 발생한 때로부터 법인에 귀속한 것으로 본다.
오늘은 좀 어려운 내용을 공부할 것입니다. 모든 민법 교과서에서는 제48조를 공부할 때, 출연재산의 귀속시기에 관한 학설과 판례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내용들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물권의 개념과 물권변동, 동산과 부동산의 공시방법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이 내용을 공부하지 않았지요. 그렇다고 당장 공부하자니 물권법의 기초부터 시작해야 할 판이라, 초심자가 접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권에 대해서 처음부터 공부하는 것은 아쉽지만 일단 미뤄 두고, 다른 쉬운 표현으로 제48조를 접근해 볼까 합니다. 시작해봅시다. 여기 철수 할아버지와 영희 할머니가 있습니다. 철수 할아버지는 자신이 가진 논밭 10만 평을, 영희 할머니는 자신의 강남 건물 10채를 쾌척하여 재단을 설립하고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어 합니다. 두 분은 각각 이러한 타임라인을 거쳤습니다.
*철수 할아버지의 사례 : 재단법인 A
2019. 1. 1. 철수 할아버지가 논밭 10만평을 출연함.
2019. 3. 1. 철수 할아버지가 세운 재단법인이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 설립등기를 함.
2019. 5. 1. 철수 할아버지가 자기 논밭의 소유권을 재단법인에 이전등기해줌.
*영희 할머니의 사례 : 재단법인 B
2019. 1. 1. 영희 할머니가 병세가 악화되어, 할머니는 유언장을 작성함. 유언장에는 자신의 건물들을 쾌척하여 재단을 설립하고 싶다고 적혀 있음. 유언장은 유효하게 작성되었다고 가정함.
2019. 2. 1. 영희 할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어 돌아가심.
2019. 3. 1. 영희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세워진 재단법인이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 설립등기를 함.
2019. 5. 1. 재단법인이 영희 할머니의 건물을 법인 명의로 등기함.
자, 이제 제48조를 다시 봅시다. 제48조제1항에서 말하는 '법인이 성립된 때'란 당연히 법인이 그 설립등기를 한 시점입니다(제33조 참조). 그러니까 제48조제1항에 따르면 철수 할아버지의 논밭 10만 평은 2019. 3. 1. 부터 재단법인 A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제33조(법인설립의 등기) 법인은 그 주된 사무소의 소재지에서 설립등기를 함으로써 성립한다.
제48조제2항에서 말하는 '유언의 효력이 발생한 때'란 (아직 배우지는 않았지만) 유언하신 분이 사망한 시점입니다. 민법의 저~ 뒤쪽에 가보면 이런 규정이 있거든요.
제1073조(유언의 효력발생시기) ①유언은 유언자가 사망한 때로부터 그 효력이 생긴다.
자, 그러면 영희 할머니의 강남 건물 10채는 제48조제2항에 따르면 영희 할머니가 돌아가신 2019. 2. 1. 부터 재단법인 B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법, 물권편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습니다.
제186조(부동산물권변동의 효력) 부동산에 관한 법률행위로 인한 물권의 득실변경은 등기하여야 그 효력이 생긴다.
표현이 어렵지만 물권의 득실변경이니 뭐니 복잡한 표현은 잊어버리시고, 이렇게만 생각하세요. "부동산 소유권은 이전등기를 해야 유효하게 넘어간다." 흔히들 부동산 사고팔고, 계약할 때 "등기해야 한다"라고 말하지요? 등기를 안 하면 제아무리 내가 저 부동산을 사기로 하고 돈까지 줬어도 그 부동산은 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상식 선에서 알아두면 좋습니다.
그런데 제186조에 따르면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위의 철수 할아버지의 부동산은 재단법인 명의로 등기가 넘어간 시점에 소유권이 유효하게 이전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논밭 10만 평은 2019. 5. 1. 부터 재단법인 A의 소유물이 된다는 거지요. 제48조에 따른 해석과 결론이 다르지 않습니까? 아까는 분명히 3월 1일부터 소유권이 넘어간다더니?
마찬가지로, 영희 할머니의 경우에도 부동산등기가 완료된 2019. 5. 1. 부터 강남 빌딩 7채가 재단법인 B의 소유물이 되어야 합니다. 제186조에 따른다면요. 그러면 제48조에 따를 때와 제186조에 따를 때 결론이 달라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즉, 조문 간에 충돌이 발생하는 거지요.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게 무슨 미팅도 아니고, 선호도 투표를 할 수도 없는 마당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학자들 간의 치열한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 논리를 모두 소개하면 어렵고, 판례의 입장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아래부터는 가상의 대화로 꾸민 것이니 참조하세요.
판례는 이렇게 고민합니다. "어렵군... 제48조도, 제186조도 모두 중요한 조문이야. 어느 한쪽을 대놓고 무시하기도 어렵고. 제186조도 부동산 물권변동에 관한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중요한 조문이 아닌가.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군."
민법 제48조는 재단법인 성립에 있어서 재산출연자와 법인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출연재산의 귀속에 관한 규정이고, 이 규정은 그 기능에 있어서 출연재산의 귀속에 관하여 출연자와 법인과의 관계를 상대적으로 결정함에 있어서의 기준이 되는 것에 불과하여, 출연재산은 출연자와 법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출연행위에 터잡아 법인이 성립되면 그로써 출연재산은 민법의 위 조항에 의하여 법인성립시에 법인에게 귀속되어 법인의 재산이 되는 것이고, 출연재산이 부동산인 경우에 있어서도 위 양당사자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위 요건(법인의 성립) 외에 등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나, 제3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는 출연행위가 법률행위이므로 출연재산의 법인에의 귀속에는 부동산의 권리에 관해서는 법인성립 외에 등기를 필요로 한다(대법원 1993. 9. 14., 선고, 93다8054, 판결).
독자 : 이게 무슨 이상한 소리인가요?
판례 : 생각해 봐.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제48조는 철수 할아버지와 재단법인 A 간의 관계를 특별히 규정하고 있는 것일세. 하지만 재단법인 A와 제3자 간의 문제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따라서 재단법인 A와 제3자 간의 관계에는 제186조가 적용되는 것일세.
독자 :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데요.
판례 : 좋아, 이렇게 생각해 보지. 위의 사례에서, 2019. 4. 1. 에 철수 할아버지가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걸세. 10만 평의 논밭 중 1만 평은 그냥 자기가 계속 갖고 싶어진 거지. 그래서 철수 할아버지는 재단법인 A에 전화를 걸어, 논밭 9만 평만 자기가 주겠다고 했네. 가능할까?
독자 : 음...
판례 : 바로 이렇게 '출연자'와 '재단법인' 사이의 문제는 제48조로 규율하겠다는 것이네.
독자 : 그러면 제48조제1항에 따르면 3월 1일에 이미 소유권은 재단법인 A가 갖게 되었으니까, 철수 할아버지는 1만 평을 돌려달라고 할 수 없겠군요.
판례 : 그렇지. 그럼 이번엔 다른 경우를 생각해 볼까? 2019. 4. 1. 에 철수 할아버지가 나성실이라는 사람에게 1만 평의 논밭을 떼어서 팔아 버렸네. 나성실 씨는 그 땅이 재단에 출연된 땅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지.
독자 : 아니, 그러면 제48조제1항에 따르면 철수 할아버지는 자기 것도 아닌 땅을 나성실에게 팔아 버린 셈이군요? 재단법인 A 입장에서는 화가 나겠는데요.
판례 : 그렇지. 재단법인 A가 그러면 나성실에게 그 땅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을까?
독자 : 음... 만약 제48조에 따른다면 가능하겠네요. 하지만 판례 님 말씀대로 제3자(나성실)와의 관계에서는 제186조를 적용한다고 하면... 아직 그 땅이 재단법인 A 명의로 등기된 것은 아니니까, '부동산등기' 상으로는 철수 할아버지가 여전히 논밭의 주인인 거고, 그러면 나성실에게 땅을 판 것도 유효하겠네요!
판례 : 바로 그거야! 제3자와의 관계에서는 부동산물권 변동의 원칙적인 조문인 제186조를 적용함으로써, 제48조를 출연자-재단법인 간의 대내적인 관계에만 국한하여 적용하도록 해석하는 거지! 그 결과 나성실은 유효하게 철수 할아버지로부터 논밭 1만 평을 취득하게 되는 걸세. 재단법인 A 입장에서는 빨리 부동산등기를 해뒀어야 했다며 통탄할 일이지만 말이야.
독자 : 거 참 어렵게도 해석하셨네요...
네, 판례의 태도가 이렇습니다. 굉장히 복잡하지요? 즉, 판례는 제48조를 적용하기는 하되 제186조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는 방향으로, 대내적인 관계(출연자-재단법인)와 대외적인 관계(재단법인-제3자)를 분리하여 적용하는 이론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이런 복잡한 이론에 대해서 비판하는 학자들도 꽤 있습니다. 민법 제48조 자체를 개정해서 의미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시도도 있고요. 하지만 일단 그런 논의들을 뒤로하고, 현재 판례의 태도는 이런 상황이니 알고는 지나가야 합니다.
여기서, "그러면 재단법인 A가 너무 억울하지 않느냐? 이대로 재단법인은 눈물만 삼키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요?" 이렇게 질문하실 수 있습니다. 재단법인 A로서는 나성실에게 땅을 돌려받을 수는 없고, (나성실이 재단법인 A에게 다시 땅을 팔게 된다면 그건 얘기가 다르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매매일 뿐입니다) 대신 '땅을 주겠다고 해놓고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린'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수밖에 없습니다. 네, 철수 할아버지를 대상으로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것입니다(고시계, 2016). 어쨌거나 철수 할아버지와 재단법인 A와의 '대내적인' 관계에서는 그 부동산은 재단법인의 소유가 맞는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 버렸으니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자기가 출연한 재산인걸 뻔히 알고 한 행동이니, 고의가 아니었다고 주장하기도 어렵고요.
오늘은 민법 제48조에 따른 출연재산의 귀속시기와 이를 둘러싼 학설과 판례의 다툼에 대하여 간략히 알아보았습니다. 공부한 내용 자체가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이라 모두 이해하실 필요는 없고, 판례가 이런 독특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아 두시면 될 듯합니다. 보다 심도 있는 공부를 원하시는 분들은 민법 교과서의 물권편을 함께 참조하여 공부하세요.
내일은 법인의 등기사항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고시계, <재단법인의 출연재산의 귀속시기>, 고시계사, 2016. 2., 251-257면.
19.7.10. 작성
22.11.16.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