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아주 오래 전부터 보금자리이자 동시에 투자 자산이었다
유년시절에는 ‘집’을 그릴 일이 많았다.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집은 미술 시간에 자주 언급되는 단골 주제였다. 아이들이 그린 집은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이었다. 세모 지붕 아래 네모 벽면, 네모난 문과 창문 그리고 모서리에 위치한 햇님. 집 앞에는 가족들이 나와 있었다. 그 당시 유아들에게 집의 개념은 ‘우리 가족이 자리잡고 살아가는 소중한 보금자리’였을 것이다.
지난 몇 년 사이 친구든, 지인이든, 직장 동료든, 하여간 누구를 만나도 ‘집’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2020년대 초반 부동산 광풍이 벌어지는 가운데 30대를 맞이하게 되어 더욱 그랬을 것이다. 주제는 다양하다. 자가인지 임대인지, 아파트인지 아닌지, 신축인지 구축인지, 얼마를 주고 샀는지, 주변에 어떤 인프라가 구축돼 있는지, 최근에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졌다. 대출은 얼마나 나왔는지? 어린 시절과 달리, 30대가 되어 언급하는 ‘집’이란 소중한 보금자리라기보다는 투자 가치가 있는 자산에 가까운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집에 대한 유아들의 개념과 어른들의 생각을 분리해 생각할 수 있을까? ‘집’은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가정의 보금자리이자 동시에 투자 자산이었다. 선택에 있어 어느 한 쪽에 더 높은 가치를 둘 수는 있어도, 이 두 가지가 분리될 수는 없다. 특히 전체 인구의 절반이 몰려 산다는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말이다.
건국 이래 부동산 시장은 언제나 경제 상황에 따른 파고를 탔다. 여기에는 일종의 경향성이 있었다. 2020년대 이전, 아니 2022년 이전까지 부동산 시장은 일반적으로 한 지역이 호재를 맞아 아파트 가격이 대폭 오르면 주변 아파트 가격은 야금야금 오르는 식으로 성장해 왔다. 마포가 폭발적으로 뛰면 길 건너 서대문의 가격이 꽤 상승했고, 서대문을 따라 건너편 은평도 조금 올랐다. 한 지역의 성장세는 전반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을 동반했으나, 그 오름세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른바 ‘떡상’한 아파트를 매매한 사람과 다소 덜 오른 아파트를 구입한 사람 간, 그리고 일찍 집을 마련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 자산 차이는 급속도로 벌어졌다. 더 이상 ‘영끌’로도 안 된다는 푸념이 쏟아졌고, 여기저기서 ‘사다리를 끊어 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매매는 끊기지 않았다. 아파트 값은 정체되었다가 또 오르기를 반복하고 있다. 여전히 내집마련은 많은 이들의 꿈이자 목표다. 내 집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를까? 결혼으로, 출산과 육아로, 자녀를 위한 학군지로 ‘짬푸’ 하는 것은 자가 보유자의 꿈이고 목표다.
내집마련 자체도, 그 이후의 짬푸도 녹록지 않은 시대다. 특히 2020년대 들어서는 더더욱 그렇게 됐다. 급격한 집값 상승을 넘어 이제는 대출 자체에 제동이 걸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냈다. ‘서울에 아파트 사면 바보’라는 말이 돌던 2010년대 중반부터 실거주자들의 목을 옥죄는 대출 제한이 발동된 2020년대 중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파고의 10년 간 대학가 앞 조그만 월세 원룸에서 시작해 서울 시내 뉴타운의 40평대 브랜드 자가 아파트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거기까지 가는 데 대단히 스마트한 선택과 영리한 인사이트가 필요하진 않았다. 그런 만큼, 투자 측면에서 대단히 성공한 것도 아니긴 하다. 많은 부동산 도서들은 A+급의 투자 사례들을 다루지만, 우리도 알다시피 우리 모두가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지난 10년 간의 내 이야기에 점수를 매기자면 A+는 커녕 B+도 안 되고, B 정도가 될 것 같다.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쳤고, 실수를 수없이 겪었다. 그러나 그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조금씩 불어오는 상승기의 바람을 타고 ‘짬푸’할 수 있었다. 이 글은 2020년대 격동의 대한민국 부동산사를 온 몸으로 겪으며 A급은 못되고, B급 수준의 성공을 거둔 기록이다.
투 비 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