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2.7억이던 전셋집은 6개월 사이 3.3억이 되었다.
대학교 1학년 때, 그러니까 2011년 어느 가을날의 일이다. 나는 몇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강의실의 한 구석에 앉아 있었다. 경제학 원론 시간이었다. 미적분도 할 줄 모르는 이해찬 세대, 7차교육과정의 수혜자(?)인 내가 무슨 목적으로 무려 경제학 수업을 수강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경제학 원론 시간에 배운 내용 역시 단 한 줄도 떠오르지 않지만 희한하게도 그 날 인자한 외모의 중년 남자 교수님이 들어 준 예시 한 가지는 분명히 기억난다.
“여러분 핸드폰 요금 얼마 내요?”
스마트폰 대중화 원년이었다. 지금이야 알뜰폰의 등장으로 저렴한 요금제가 많이 나왔지만, 당시에는 무려 3g(!)라는 기술 자체가 새로운 것이라 핸드폰 요금은 마냥 비쌌다. 몇몇 앞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작은 목소리로 한 달 십만 원대의 요금제를 이용한다고 답했고, 교수님은 되물었다. “비싸요?” 그러자 아까와는 달리 좀 더 크고 과격한 목소리의 답변이 커다란 강의실을 울렸다. “너무 비싸요~” 동요가 잦아들자 교수님이 말했다.
“그거 비싼 거 아니에요.”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애들이 그런 것 같았다. 무슨 재수 없는 이야기인가 싶어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고 단상 앞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원래 교수라는 양반들은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은근하게 재수 없는 이야기를 항상 하지만 이렇게 강의 중에 대놓고 재수없는 멘트를 던진 교수는 또 처음이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이 중에 핸드폰 요금이 너무 비싸서 핸드폰을 2g로 바꿨다거나, 아니면 매달 요금을 연체하고 있다거나 하는 사람 있어요?” 여전히 강의실은 적막했다. “그래서 비싼 게 아니라는 거예요. 시장 가격은, 쓰는 사람이 지불할 만 하니까 유지되는 거예요. 과도하게 비쌌으면 아무도 핸드폰을 안 쓸 거거든요.”
그렇다. 시장 가격은 소비자가 ‘지불 가능한’ 금액 선에서 정리된다. 그 영역 내에서 다소 비쌀 수는 있으나, 과도하게 비싸면 소비자가 해당 재화를 포기해 버리기에 팔릴 수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몇 주 후 나는 도저히 경제학과 맞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강의를 드랍했고 그 교수님과는 다시는 만나는 일 없이 세월이 흘렀는데, 문득 11년 만에 그가 떠오른 건 또 집값 때문이었다.
2월에 2.7억이었던 우리의 첫 전셋집은 8월에 3.3억이 되어 다시 시장에 나왔다. 아파트 값이 미친 듯이 뛰고 있다고는 하지만 반 년도 안 되는 사이 전세 가격을 6000만원이나 올리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부동산에서 집주인을 만나고 돌아오자마자, 즉 새로운 세입자를 받기로 하자마자 신랑 핸드폰에는 쉴새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화요일 4시 괜찮으세요?”
“수요일 3시는 어떠세요?”
“토요일 1시는요?”
전부 전셋집을 보겠다는 연락이었다. 둘 다 9to6를 충실히 지키는 직장인이라 평일은 웬만해서는 어려웠다. 부동산에서는 그럼 최대한 주말로 몰아 보겠다고 했고, 우리는 이번 토요일에 집에 있을 테니 알아서 조정해 달라고 했다. 부동산에는 토요일 아침 11시부터 여러 팀이 올 예정이라고 연락이 왔다. 임대차 3법 통과 이후 전세 매물이 씨가 말랐다는 뉴스가 쏟아져 나왔는데 실제로도 그런 모양이었다.
원인은 복잡했지만, 간단히 말하면 기존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거나 주인이 실거주를 하는 경우가 늘어 공급은 줄었는데 앞으로 전세난이 가속될 거라는 불안감에 수요는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포기가 가능한 핸드폰 요금과 달리 집은 절대 없어선 안 될 존재다. 그러니 ‘지불 가능한’ 선이라는 게 애매해 가격을 마구 올려도 수요는 변하지 않았다. 이를 방증하는 사례가 있다. <JTBC> 뉴스에 따르면 당시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한 아파트는 전세가 집값보다 높게 거래됐다. 하루하루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갱신되던 때였다.
토요일 아침 11시, 초인종이 울렸다. 부동산 소장과 함께 신혼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들어왔는데, 여자는 신발을 제대로 벗기도 전에 우리를 향해 결연하게 말했다. 마스크 너머 간절한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저희 이천 더 얹어서 3억 5천에 해 드릴게요. 저희한테 주세요.”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소장도 당황한 듯했다. “이 분들은 주인이 아니예요. 일단 집을 보시고…” 신혼부부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바뀌었다. 그들은 조용히 신발을 벗고 집으로 들어와 소장의 안내에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열심히 보고 있진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은 5분 만에 고개 숙여 인사하고 떠났다.
30분 후 또 부동산 소장과 또 다른 부부가 들어왔다. 이번 부부는 웃돈을 얹어 주겠다고 하진 않았고, 연신 “괜찮다” “좋다”는 말을 반복하고 떠났다. 그 날 우리 집을 본 건 총 5팀이었다. 집주인이 웃돈을 얹어 준다던 그 결연한 얼굴의 신혼부부와 거래를 했을지 궁금했지만 우리가 알 수는 없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전세 매물을 보기 위해 10여명의 사람들이 복도식 아파트에 줄을 서 기다리다가 제비뽑기를 해 계약자를 정했다는 뉴스 기사가 나왔다. 운이 좋아서 피해갈 수 있었지만, 내가 그들 중 하나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영 불편했다.
우리의 입주일도 다가오고 있었다. 계단식이고 서대문구에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장점이 단 하나도 없는 22평짜리 아파트였음에도, 난세인 시장 상황에서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4.9억으로 도장을 찍고 한 달여가 지난 뒤, 같은 매물의 호가는 5.8억으로 치솟았다.
우리와 매매 계약을 체결한 매도인은 여든이 넘은 고령의 부부로 같은 단지의 보다 넓은 평수에 살고 있었다.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서둘러 매매에 나섰다는 게 부동산 소장의 설명이었다.
이사를 두어 달 앞둔 어느 날 저녁, 신랑과 같이 근처 고깃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부동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워낙 시끌벅적한 탓에 통화 내용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지만, 전화를 받은 신랑의 표정이 굳어지는 건 보였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미 계약서는 썼지만, 예상치 못하고 비상식적이라 생각한 일들이 매일 벌어지던 때라 안심할 수는 없었다.
“원래 집주인이 무르고 싶다고 했나 봐.” 상황은 이랬다. 매도인 부부는 계약 체결 후 호가가 1억 가까이 오른 것을 보고 잔뜩 화가 난 채 부동산을 찾아와 따졌다. 몇 달만 기다렸다가 팔았으면 앉아서 돈 버는 건데 소장이 자꾸 팔라고 종용한 탓에 1억을 손해 봤다는 거였다. 부동산 소장은 그들을 잘 어르고 달래 돌려보냈고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에 큰 문제는 없겠지만 혹시 잔금을 치르는 날 다소 분위기가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게 무슨 주식 샀는데 떨어졌으니 환불해 달라는 소린가 싶었지만, 역대급으로 급하게 집값이 상승한 시기다 보니 어르신들 입장에선 또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백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처음 샀을 때보다 몇 배 이상 오른 가격으로 팔았으면서! 1999년 아파트가 세워진 이래 가장 단기간에 폭등한 실거래가 기록을 세웠으면서! 애초에 4.9억에 싱글벙글하며 마음 바뀌기 전에 서둘러 계약하자고 했던 건 매도인 측이었다.
1억을 손해봤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노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동시에 우리가 살던 전셋집을 보러 왔던 신혼부부들의 절박한 눈빛과 우리에게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전하던 전셋집 주인의 미소도 생각났다. 바잉도, 셀링도 모두 패닉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모두 각자의 이유와 욕망이 있었지만 조급한 분위기 속에 이상하게 마음이 급한 것은 똑같았다.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가 어떤 모습이었을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