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한 거처는 있어야 자식을 낳을 마음이 드는 게 현대 인간의 본능이었다
원래 여우는 한반도 전역에 고루 서식하는 동물이었다. 어린 시절 읽던 전래동화에 유독 여우가 많이 등장했던 건 그런 이유다. 토종 여우는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이 땅에서 사라졌다. 대충 한반도의 멸종 위기 동물에 대해 논할 때 일본을 가리키며 ‘이 새끼 때문인가’하면 대충 80%는 맞아떨어지지만, 토종 여우는 일제 강점기까지도 딱히 포획의 대상이 아니었다.
<시사위크>에 따르면 토종 여우가 멸종 위기에 놓이게 된 건 1960년대부터였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전국적인 ‘쥐잡기 운동’의 여파에 더불어, 점차 나라가 잘 살게 되면서 늘어난 여우털 수요가 토종 여우의 멸종에 제법 기여했다.
50년이 지난 2010년대부터 토종 여우 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연구진은 토종 여우와 가장 유전적으로 가까운 여우를 들여와 인공 증식하는 방식으로 개체 수를 늘리려 했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여우들이 연구진이 마련한 공간에서는 짝짓기를 거부한 것이다. 여우는 원래 번식력이 어마무시한 동물이지만, 굴 같은 장소가 아니고서는 본능을 절제해버릴 정도로 성격이 초-센시티브했다.
난관에 부딪힌 복원 사업은 의외의 인물 덕분에 해결되었다. 러시아에서 밀수입한 여우들을 가득 키워오던 한 개 농장 주인이 모종의 이유로 밀수 사실을 자진신고했는데, 알고보니 이 여우들이 토종 여우였다. 게다가 여우들은 무려 대를 이어 이 밀수업자와 함께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유수의 대학에서 석박사를 마친 전문 연구진들도 해내지 못한 토종 여우의 번식을 어떻게 개 농장의 밀수업자가 해낸 걸까? 비결은 과수원에서 흔히 쓰는 플라스틱 박스였다. 여우들은 이 박스를 안정적인 거처로 여겨 맘 편히 짝짓기를 했던 것이다. 밀수업자는 토종 여우의 번식을 해낸 공로를 인정받아 처벌을 피했고 지금까지 토종 여우 복원 사업은 순항 중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이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1. 밀수를 한다면 학대하지 말고 비싼 거 먹이면서 잘 키우자.
2. 잘못한 일이 있으면 항시 자진신고하자.
3. 가끔은 석박사보다 개 농장 주인이 전문 분야에 있어 뛰어날 수도 있다.
4. 인간과 마찬가지로 여우도 안정적인 거처가 있어야 새끼를 깐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말을 정규교육과정에서 들어온 게 우리 세대의 저출생 원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게 우리 세대가 속물이라거나 이기적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교육을 통해 이전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입장이다. 입에 풀칠조차 못할 정도로 가난하면서 주구줄창 애만 낳은 흥부는 <고딩엄빠> 출연자들만큼이나 답이 없는 인물이지 않나? 어느 날 갑자기 쫓겨나진 않을 정도의 안락한 거처는 있어야 자식을 낳을 마음이 드는 게 현대 인간의 솔찍헌 본능이다. 한국인만 그런 게 아니라 한반도의 토종 여우마저 인증해준 사실이다. 반도의 포유류가 새끼를 까게 하고 싶으면 안정적인 거처를 제공하라! 토종 여우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