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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Oct 22. 2024

드디어, APT. (자가) 아파트 아파트!

단점이 많았지만, 서울 자가 아파트라는 이름은 이를 상쇄하기 충분했다

패닉 바잉과 패닉 셀링의 홍수 속에서 우리 부부는 무사히 우리의 첫 아파트에 입주했다. 지하철역과의 거리도 애매하고 주변에 아파트 단지 하나 없이 빌라촌에 둘러싸여 있으며 아주 가파른 언덕에 위치해 있어 마땅한 상권도 없고 노인들만 모여 살던 소단지의 22평이었으나 서울 시내 친숙한 동네에 ‘자가’ 아파트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너무나 벅찼다. 아주 추운 날에도 아파트 언덕을 오르고 나면 살짝 땀이 날 정도로 험준한 곳에 자리한 아파트였지만 거실에서 보이는 탁 트인 뷰는 그 모든 고충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이 풍경은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산 것이었다.


월세와 전세를 살 때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인테리어’라는 것도 진행했다. 깊게 고민하진 않았다. 1, 2년 정도의 텀을 두고 우리보다 앞서 아파트를 매매한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이미 인테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기 때문에, 우리는 굳이 새로운 업자들을 찾아보며 예약금과 중도금 그리고 잔금을 둘러싼 머리싸움을 할 필요가 없었다. “두 번이나 우리가 했고 이번에 세 번째 하는 건데 잘 좀 해 줘요.” 게다가 나에게는 딜의 귀재인 시어머니까지 있었으니,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부부들을 여러모로 껄끄럽게 만드는 인테리어 업자들의 부실시공은 먼 나라 얘기였다.


4.9억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집 계약을 마치긴 했으나 무리하지 않은 건 아니라서, 인테리어에 큰돈을 들이진 못했다. 비록 ‘오늘의 같은 어플에 소개될 정도로 휘황찬란하게 독특한 취향을 살려 꾸미진 못했으나, 그래도 도배장판부터 하이샷시까지 꽤나 깔끔하게 고칠 는 있었다. 당시 들어간  비용은 2천만원 언더였는데, 자재값이 폭등하기 전이던 2020년이었으니 가능했다는 입장이다.


작은 평수였지만 둘에겐 아주 충분했다. 현관 옆 방은 드레스룸처럼 꾸며 취미로 수집하던 전 세계의 축구팀 유니폼을 주르륵 걸어 뒀고, 가장 안쪽의 방은 서재로 쓰기로 하고 커다란 책장을 들였다.

강릉 본가에는 책이 많았다. 거실 한 쪽 벽면은 전부 책이었고 방안 곳곳 그리고 심지어 부엌에도 크고 작은 책장들이 놓여 있었다. 수많은 책을 보관하고 시도때도 없이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건 대학생이 되어 상경한 이후였다. 책을 놓을 수 있는 공간 자체가 확연히 줄었지만, 무엇보다도 잦은 이사 때마다 모든 책을 챙길 수가 없었다. 2인 1실 기숙사, 1평 남짓한 고시원, 네다섯 평쯤 되는 원룸을 1-2년씩 전전하며 20대 초반을 보내는 동안 책은 늘 애물단지가 됐다. 정말 아끼는 한두 권을 제외하면, 사둔 책은 이사할 때마다 가장 먼저 쓰레기장으로 보내지곤 했다. 수많은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조건은 넓은 공간만이 아니었다. 이 공간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 했다.

우리의 새 보금자리는 그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공간이었다. 이전의 거처에 비해 비교적 넓고, 타의에 의해 강제로 떠날 일이 없는 공간. 좋아하는 책도, 좋아하지 않는 책도, 몇 번이나 읽은 책도, 한 번도 읽지 않은 책도 모두 거대한 책장에 꽂아 넣었다.

입주 이후 여러 가지가 달라졌지만, 그 중 하나가 더 이상 부동산 가격이 어떻게 됐는지 신경쓰지 않게 됐다는 점이었다. 종종 동네 부동산을 지나가며 의도치 않게 우리 평수의 시세를 확인하긴 했으나 그게 다였다. 매일 방문하던 ‘부동산 스터디’ 카페에도 발길을 끊었고 부동산 뉴스도 전혀 읽지 않게 됐다. 아예 부동산에 대한 지식이 1도 없던 시절로 돌아간 듯, 우리 부부가 부동산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건 정말 쇼킹한 소식이 있을 때뿐이었다. 예를 들자면 “속초 롯데캐슬이 13억 찍었대!” “미쳤네, 미쳤어” 같은 것.


정신건강을 어지럽히는 부동산 소식으로부터 시선을 돌리자 마음이 편해졌다. 줄을 서서 전셋집을 보러 오던 신혼부부들, 정말 집을 잘 샀다며 축하해주던 전 전셋집 주인, 한 달 사이 폭등한 가격을 보고 부동산을 찾아가 노욕을 쏟아내던 전 집주인 부부,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며 찾아와 전셋집에서 쫓겨나게 생긴 친구, 5억에 산 집이 10억이 돼 재산세가 늘었다며 자랑 겸 푸념하던 선배, 로또 1등에 당첨돼도 서울 시내 아파트는 못 산다며 씁쓸하게 웃던 후배, 영끌과 벼락거지라는 말의 유행, 현실감각을 잃어버릴 정도로 치솟은 실거래가 목록들. 이제 나와는 전부 상관 없는 일이었다.

안정적인 거처가 생기고, 많은 책과 유니폼으로 집을 채우고, 스트레스 받는 부동산 이슈로부터 멀어진 지 몇 달이 지나 어느새 여름이었다. 분명 바깥은 더운데 자꾸 으슬으슬 뼈가 시리듯 한기가 들었다. 계속 머리가 아프고 잠이 왔다. 와중에 식욕은 이상하게 왕성했다. 크림 도넛을 한 박스 사고 에그마요 샌드위치를 30cm 짜리로 주문했다. 모두 평소에 좋아하긴커녕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던 음식들이었음에도 받아들기만 하면 걸신 들린 듯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배가 부르면 또 머리가 아프고 잠이 왔다. 이상할 정도로 농도 짙게 몰려오는 잠을 버틸 재간은 없었다.

꿈도 꾸지 않을 정도로 깊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아픈 머리와 폭발적인 식욕을 감싸 안고 또 밥을 먹었다. 몇 공기씩 먹고 또 다시 잠이 들었다. 내가 토종 여우와 같은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임신 8주째가 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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