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정말 집을 ‘보기만' 하고 가 버릴 줄은
아기는 쑥쑥 자랐다. 22평짜리 집은 부부와 아기가 함께 살기에 흡족할 만큼 넓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는 않았다. 이래저래 공간을 어거지로 활용하면 충분했다. 안방에는 아기 매트리스가 넓게 깔렸고, 한 쪽 벽은 아기 인형으로 가득 찼다. 안방에 있던 다른 가구들은 모두 자리를 옮겨야 했다. 여행을 갈 때마다 구해온 유니폼을 보관해 두던 취미방은 남편 옷과 아기 물건을 두는 창고가 됐고, 서재에는 안방에 있던 조그만 좌식 화장대와 속옷장이 놓였다. 안방 한쪽에 소중하게 정리해 뒀던 명품 가방과 주얼리는 서재 한편에 구겨지듯 방치됐고, 가족이나 친구들이 놀러오면 양 날개를 편 채 거실로 옮겨뒀던 접이식 식탁은 부엌 한쪽에 반쯤 접힌 채 놓여야 했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샤워 직후에 서재에서 로션을 찍어 바르는 건 당연해졌고, 외출할 때는 취미방에서 옷을 가져다가 안방에서 갈아입는 게 일상이 됐다.
각각의 기능을 하던 방 사이 경계가 흐려져버렸다는 걸 제외하면 딱히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사실 이렇게 평생을 살 수도 있었다. 아기가 좀 더 자라면 서재를 아기 방으로 주고, 다시 안방에 옷과 화장대 그리고 가방 등을 둘 수 있을 거였다. 신랑 역시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24평짜리 아파트에서 세 식구가 살았다고 했다. 하려면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평생을 그렇게 사는 건 다른 문제였다. 배정 초등학교에 대한 우려와 좀 더 넓은 집으로 가고 싶다는 욕망은 아기의 100일이 지나고, 돌이 지날수록 점차 커졌다. 게다가 혹시 둘째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지금 셋만으로도 모든 방이 전혀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아기의 돌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우리는 집을 샀던 부동산을 찾아 다시 집을 내놨다. 6.3억. 새 집을 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지금 집이 팔린 후에 생각하기로 했다.
부동산을 찾은 다음 날 바로 연락이 왔다.
“토요일 오후 2시 정도에 괜찮으세요?”
이렇게 바로? 우리에겐 잘 된 일이었다. 그렇게 하겠다 약속을 잡고, 약속시간을 두시간쯤 남기고부터 남편과 분주하게 집을 청소했다. 각 방들이 여전히 각자의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끔.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정리해 둔 놀이감을 다시 꺼내거나 모아둔 머리카락을 밟아버리는 등의 불상사가 있긴 했으나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청소와 환기를 마치고, 약속 시간이 되자 노크 소리가 났다. 나는 아이가 분유를 쏟은 흔적이 남은 소파 위에 교묘하게 걸터앉아 그들을 맞이했다.
집 구경은 5분도 안 돼서 끝났다. 집을 보러 온 건 결혼을 앞둔 딸과 그녀의 어머니였는데, 그닥 우리 집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집에 대한 질문을 하기는커녕 청산유수로 말하는 부동산 소장에게 떨떠름한 대꾸 정도만 남긴 그들은 그다지 밝지는 않은 표정으로 현관을 나섰다. 그래도 나와 남편은 만족스러웠다. 부동산에 올리자마자 보러 왔으니, 집이 팔리는 것도 시간문제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때는 몰랐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을 보러 올 줄은. 정말 ‘보기만’ 하고 가버릴 줄은.
정말 약간의 과장도 보태지 않고 그 후 50팀은 우리 집을 보러 왔다. 전세로 시작한 신혼부부,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 독립을 준비 중인 자매, 다 큰 자식들을 품에서 떠나보내고 노후를 보낼 터전을 찾는 중년부부, 홀로 온 중년의 여성, 함께 살 계획은 아닌 듯한 엄마와 아들 등 그 숫자만큼 그들의 관계는 다양했다.
당연하게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항상 우리가 집에 있을 때, 그리고 집의 상태가 최상일 때 방문할 수 있진 않았기에 나와 남편은 부동산에서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외출 시간을 조정하거나 밖에 나왔다가도 황급히 귀가해야만 했다. 아이를 데리고 놀러 나왔다가 한 시간 내로 집을 보러 온다는 연락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는데, 정작 매수 희망자는 건성건성 둘러보고 5분도 안 돼 나가버릴 때의 그 허무함이란.
그래도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나와 남편은 이제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도 완벽한 분업 하에 집 청소를 10분 만에 해낼 수 있게 됐다. 부동산에서 걸려온 전화가 끊기자마자, 나는 거실의 아이 장난감을 치웠고 남편은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 솔을 집어들곤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었는지를 방증하는 신기한 사건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다가 전학을 가 연락이 끊겼던 친구가 자신의 남편과 함께 우리 집을 방문한 것이다. 무려 20년 만에 우리 집에서 재회한 셈이다. 부동산 소장 역시 25년을 일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했고, 일반적인 매수희망인과 매도희망인 관계와 달리 우리는 그 자리에서 번호를 교환했다. 물론 그녀와 남편은 우리 집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 즈음 해서 반복적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집을 보여주는 것 자체에 현타를 느끼게 됐는데, 여기엔 그녀의 말 한 마디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둘이서만 함께 식사를 했는데, 당연히 대화 주제로 우리 집이 거론됐다. 그녀는 아직 마음에 드는 집을 찾지 못했고, 우리 집이 마음에 드는데 여러 가지 사정상 당장 이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당장 이사하기 어려운데 왜 집을 본 거지?
내 기준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는데, 그 다음 그녀의 말은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우리가 6억이 없거든. 완전 영끌해도 안 돼.”
그럼 어째서 그녀는 황금 같은 주말에 우리 집을 보러 왔던 것일까?
“그냥 동네가 마음에 들어서 한 번 집 보기로 한 거야.”
스물한 살, 자취를 시작하며 월세방을 찾기 위해 부동산을 뺑뺑이 돌던 때부터 집을 팔기 위해 부동산에 집을 내 놓은 지금까지도, 나는 단 한 번도 예산 밖에 있는 집을 본 적이 없었다. 철저하게 예산 안쪽에 있는 집을 찾았다. 실제로 거래를 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러므로 그 말이 납득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예산도 마련되지 않았는데 그저 동네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바로 부동산을 찾아 집을 본다고? 집을 살 수가 없는 상황인데 그냥 집을 보기만 한다고? 그제서야 우리 집을 방문한 그 수많은 팀들 모두가 실거래가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을 수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 중 일부는 그녀와 비슷하게, 별 생각 없이 구경을 왔을 수도 있었다. 예산도, 계획도 없이. 나와 남편이 주말 스케줄을 조정하고, 아이를 달래 가며 외출했다 귀가해 최상급 상태의 집을 보여주려 했던 노력이 무색하게 말이다.
그녀와는 그 날 이후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언젠가 팔릴 날을 고대하며 열심히 집을 보여주던 정성도 그때부터 다소 사그라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