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내년에 마포 갈 수 있어요?”
기자들은 의심이 많다. 어떤 사건이나 사회적 현상을 두고 다수의 대중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직업이 기자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한 가지 사건이나 주제를 깊게 파고들어 취재해 다면의 진실을 담아내야 하는 직업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의심이 많기 때문에 적성을 살려 이런 직업을 택한 사람도 많을지 모르겠다.
나는 어느 정도 원래도 의심이 많았는데, 매달 몇 가지 주제에 얽힌 수많은 사람들을 취재해 복잡한 사실관계를 정리해 기사를 내는 일을 몇 년간 지속하다보니 이제는 직업병처럼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혹시 그 이면의 진실이 있진 않은지 먼저 생각해보게 됐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모 연예인이 10월에 마약 투약 혐의로 입건되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한 무당 유튜버의 영상이 화제가 됐다. 영상은 3년 전에 게시됐는데, 해당 무당은 그 연예인의 사주를 받더니 “왜 주사 맞는 모습과 수갑이 보이냐”며 “10월을 조심하라”고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 용하다. 하지만 그 무당의 다른 영상들은 3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맞힌 게 전혀 없었다. 게다가 문제의 연예인은 주사를 이용한 투약을 하지 않았고, 체포가 아닌 입건이었기에 수갑을 차지도 않았다. 또 10월이라는 게 몇 년도의 10월인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그저 얻어걸린 셈이다.
점이라는 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이고 의심 많은 나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점을 보러 갔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마이클 셔머는 자신의 책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 가?>를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현실이 견딜 수 없게 압박해오면 우리는 쉽게 미혹되어 점술가와 손금쟁이에게서 확신을 보장받으려 한다.” 1년이 넘도록 집이 팔리지 않고, 팔릴 뻔했다가 엎어지는 일이 두 차례나 반복되자 지금 집을 팔아도 되는지에 대한, 원론적인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셔먼은 사람들이 점괘를 믿으려 하는 이유로 ‘가장 값싸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을 가장 빠르게 전해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 집을 팔아도 되는 시기인지 아닌지 나에게 누가 말해줄 수 있나? 2015년에 마포구 구축 아파트 대신 서대문구 오피스텔을 택하고 2020년 부동산 폭등 상황에서 매매 대신 전세를 택해 스스로의 판단력을 믿을 수 없는 내게, 과연 누가 답을 줄 수 있을까? 그 어떤 부동산 전문가의 솔루션에도 명쾌한 답은 들어있지 않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도 없다. 하지만 점쟁이는 그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있었다.
“올해 연말은 돼야 해. 그런데 내년이 더 좋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어!”
점술에 대한 의심이 많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하면 최소 일 년에 한 번씩은 찾는 단골 점집이 있는 게 많은 현대여성의 아이러니다. 낯선 여자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어색함을 타파하기 가장 좋은 스몰톡 아이템이 바로 ‘잘 맞추는 점집’인 것은 이런 아이러니를 반영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라 대학 때부터 최소 매년 한 번, 연애와 취업 그리고 결혼과 출산 등의 고민거리가 있을 땐 더 자주 방문했던 단골 점집이 있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 서둘러 방문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전에 그랬듯 이번에도 점쟁이는 나의 혼란을 잠재워 주었다.
“그럼 내년에 마포 갈 수 있어요?”
“욕심 내지 말어! 멀리는 못 가니까.”
“마포도 우리 집이랑 가까운데.”
“너 결혼 조금만 늦게 했어도 목동 60평대에 사는 거였어. 그러니께 결혼을 왜 그렇게 빨리 해 가지구! 내가 천천히 하라구 했지!”
역사에 가정이 없기에 결혼을 늦게 한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임에도 잔소리를 잔뜩 들었지만, 점집 문을 나설 때 마음은 한층 홀가분했다.
신랑에게는 결혼 늦게 했어야 한다는 점괘만 빼고 모든 얘기를 그대로 전했다. 우리는 장기전이 될 거라는 각오를 하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여유를 갖기로 했다. 지금부터 준비하면 첫째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충분히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을 거였다. 게다가 이 집에 문제가 있어서 빨리 떠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기운으로 따지면 좋은 집이었다. 앞서 우리 집을 보러 온 각양각색의 50팀에게 까이긴 했지만. 그럼 100팀에게 보여주면 될 일이었다.
집을 보러 온다는 이들에게 묻고 따지지도 않고 현관문을 오픈하기로 마음 편히 결심하자, 부지불식간에 집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 계속 생겼다. 육아휴직 중이었던 나는 언제든 두팔 벌려 부동산을 환영했다. 산부인과 정기 검진을 마치자마자,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친구와 커피 한 잔을 마시자마자, 홍제천을 산책하다말고, 나는 부동산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달려갔다. 우리의 노력을 알아줘서일까? 우리 집을 보러 오겠다는 이들은 점차 늘어났다.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부동산이 요즘 좀 상승기를 타서 그런가봐요. 코로나 시기에 식 못 올렸다가 이번에 혼인신고 한 커플도 많고요.” 부동산 소장의 분석이었다.
슬슬 여름이 짙어가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아기를 어린이집에서 하원시키고 있는데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어차피 집도 청소돼 있던 터라 10분 후 방문해 달라고 했다. 부동산 소장과 함께 들어온 건 우리 아빠 뻘의 인상 좋은 중년 남성이었다. 지금껏 우리 집을 찾았던 각양각색의 수십 팀들이 5분에서 10분 내외로 집을 둘러본 것과는 달리, 그는 무려 20분을 할애해 꼼꼼하게 집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너무 오래 봐서 미안하다는 젠틀한 말과 함께 그가 떠난 후, 몇 분 지나지 않아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마음에 드는데, 내일 아침에 아내가 와서 한 번 더 봐도 되냐는 거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다음 날 아침 우리 집을 찾은 그의 아내는 역시 인상이 좋고 무척 예의가 바른 여성이었다. 느낌이 좋았다. 집이 팔릴 것 같다는 점에서 좋다는 아니라, 바른 분들인 것 같다는 직감이었다. 아니나다를까 그 날 오후가 되자마자 연락이 왔다. 천만원만 깎아 주면 바로 계약하겠다는 거였다. 잔금은 11월 중에 치른다는 조건이었다.
“점쟁이가 용하네. 결국 연말이잖아.”
신랑의 말에 내가 받아왔던 점괘가 떠올랐다. 사실 점집을 방문한 후 심신의 안정만 찾고, 점괘 내용은 완전히 잊고 있었다. 사실 이것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점괘였다. 그럼에도 계약이 체결되기까지 몇 달간 이전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던 건 사실이었기에, 점쟁이가 용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