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유 Sep 27. 2024

그 때 마포 아파트를 샀어야...

한때 서대문구 오피스텔과 마포구 구축 아파트는 가격이 거의 같았다

우리 부부의 ‘공식적’인 신혼집은 연남동과 길 건너 마주한 오피스텔 건물 맨 꼭대기 층의 18평짜리 투룸이었다. 왜 ‘공식적인’이었느냐고 하면, 이미 결혼한 지 한참 된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즉 대학 시절부터 이미 신랑의 연희동 원룸 자취방에서 거의 같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살림을 차린 셈이었으나 여기서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다.


기나긴 복도의 맨 끝에 위치해 있던 공식적인 신혼집은 핫플레이스인 연남동을 지척에 둔 만큼 교통편이 참 좋았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무려 3개 호선이 지나다니는 홍대입구역이 있었고, 인근에 버스 정류장도 다양해 서울시내 어디로 나가기도 편했다. 정작 그 시절에는 서울시내 어딘가를 나돌아다닌 적이 거의 없지만 말이다. 지금 가장 핫하다는 레스토랑이, 팝업스토어가, 술집들이 집 바로 앞에 펼쳐져 있으니 굳이 동네를 떠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흥청망청 술 마시고 노는 거나 좋아하던 우리 부부에게 최고의 신혼집이었다. 주말 아침마다 우리 부부는 느지막히 일어나 전날의 술자리로 지친 속을 몇 대째 이어온 화상집 짬뽕으로 달래고 연트럴파크를 산책했다. 팅팅 부은 얼굴과 목이 다 늘어난 추리닝 꼬라지의 우리는 쏟아지는 햇살 아래 전국 각지에서 한껏 멋을 부리고 모인 이들의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


건물 밖으로 나와 어느 방향으로든 조금만 이동해도 마포구와 닿는 곳이었지만 정작 오피스텔의 주소지는 서대문구인 것도 괜히 마음에 들었다. 각각 강릉과 울산이 고향인 나와 남편은 스무 살에 상경한 이래로 계속 서대문구에 살았다. 처음에는 학교와 가까워서 선택한 거였지만 졸업한 후에도 굳이 서대문구를 떠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심정적으로 우리 둘에게 제 2의 고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다 우리는 신혼집으로 아파트나 빌라가 아닌 오피스텔을 선택했는가? 절세나 투자 등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는 전혀 아니었다. 사실 선택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었다. 우리가 연애를 시작한 것은 2014년 여름이고, 결혼한 건 2018년 가을이었다. 그리고 오피스텔 매입 시기는 2015년 겨울. 내가 제대로 사회생활을 하긴 커녕 대학 졸업도 하지 못했을 때다. 그러니까 신혼집은 원래 신랑이 혼자 산 거였고 결혼하면 나에게 몸만 들어오라고 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나였다면 미쳤냐고 역정내면서 당장 작은 평수라도 아파트부터 알아보라고 타박했겠으나 부동산 계약이라고는 자취방 월세계약밖에 해보지 못한 채 그저 연남동에서 술 마시는 거나 좋아하던 스물넷 대학생은 ‘우왕 최고의 신혼집이당 오빠랑 꼭 결혼해야징 히힣’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주변 어른들은 신랑이 신혼집으로 쓸 생각을 하면서 아파트가 아니라 오피스텔을 매입하는 꼴을 그냥 두고 봤는가?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사실, 2015년에는 서울에 아파트 사면 바보라는 말이 유행했다. 불과 5년 후 패닉바잉의 대폭동이 올 거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도 지금도 우리 시어머니는 ‘내 집 한 채’는 있어야 한다고 굳건하게 주장해 왔다. 그러니 신랑도 서른한 살의 나이에 첫 집을 사기 위해 나섰던 거였다. 다만 여기서 시어머니가 말한 ‘내 집’에는 빌라나 오피스텔은 해당되지 않았다. 당시 시어머니가 신랑의 첫 집으로 강력하게 내밀었던 매물은 서대문구 오피스텔이 아니라 가장 작은 평수의 마포구 구축 S아파트였다. 지금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2015년 비슷한 평수의 서대문구 오피스텔과 마포구 구축 아파트는 가격이 거의 같았다.


신랑이 시어머니의 제안을 거부한 건 교통과 인프라 그리고 약 20년의 세월이 쌓인 준공 시기 때문이었다. 사실 사랑에 눈이 먼 30대 초반 미혼 남성에게 저 세 가지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다. 놀고 먹을 곳이 주변에 많고, 또 내외부 모두 깨끗하고 편리한 게 우선이었다. 게다가 서울에 아파트 사면 바보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하던 시기였으니, 굳이 같은 값을 주고 아무것도 없는 동네의 낡은 단지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서대문구 오피스텔과 마포구 구축 아파트라니, 2024년 돌아봤을 땐 정말 말도 안 되는 선택지처럼 보이지만 “제발 빚 내서 아파트 좀 사 주세요”라고 정부가 애걸하던 초이노믹스 시기의 2015년은 그런 비교가 충분히 가능한 때였다.


어쨌든 우리는 그 집에서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잘 지냈다. 결혼 후 한 1년 정도까지도.


그 무렵 시어머니는 아파트가 아닌 오피스텔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음에도 불평은커녕 “우왕 너무 좋아용 오빠 짱짱”만 반복하는 어린 며느리에게 고마움과 동시에 약간의 불안감(?)을 느낀 것 같다. 1년쯤 지켜보다 보면 ‘쟤가 그저 착해서 그런 게 아니라 사실 정말 세상물정을 모르는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품을 만도 하니까… 그리고 시어머니의 그런 의구심은 팩트였다. 정말 나는 아무 것도 몰랐다.


국민 여러분 제발 빚 내서 아파트 좀 사 달라고 읍소하던 초이노믹스의 박근혜 정부가 불미스럽게 퇴진하고 정권이 바뀐 지도 3년 차였다. 부동산 시장이 심상치 않은 신호를 보내 오고 있다는 것을, 나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 상암에 축구경기를 보러 갔다가 인근 부동산에 붙은 S아파트 20평형의 가격을 볼 때까지는.


로열층 올수리 깨끗한집
7억 5천


????

이거 오빠가 안 산 그 아파트인데?

이거 2억 초반이었는데?


나만 모르는 사이 천지가 개벽해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오피스텔은 가격 변동이 거의 없었다. 아무리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라도 고작 4년 사이 가격 차이가 세 배 이상 벌어지면 뭔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눈치챌 수 있다.


“지금이라도 잘 생각했어. 애 낳아서 키우려면 아파트 가야 해. 빨리 알아보자. 엄마가 도와줄께.”


부동산에 대해 나름의 철학이 확고했던 시어머니는 그 날부터 서울 시내에 신혼부부들이 살기 적합한 아파트 단지가 모여 있는 동네란 동네는 전부 돌며 정보 수집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상승세는 시작된 후였다. 지난달 실거래가 3억 중반대이던 아파트가 돌연 호가가 4억이 넘어 있는 식이었다. 4억이라니! 당연한 얘기지만 2024년의 집값을 기준으로 봐서는 안 된다. 당시의 우리에겐 너무 큰 돈이었다.


오피스텔 가격은 오르지 않았고, 그간 모아둔 돈은 결혼할 때 다 털었으며, 지난 1년 간 신혼생활을 즐기면서 모으지는 않고 펑펑 써대기만 했으니 씨드가 있을 리 없었다. 몇 억이라는 큰 금액을 은행에서 빌리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남의 돈으로 집을 거래하는 순간 평생 벗겨지지 않는 ‘빚’이라는 족쇄를 목에 건 채 살아야 할 거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다행히 오피스텔은 부동산에 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최소한의 세금을 물어 아들에게 재산을 증여하고 싶어하던 남쪽 지방의 부자 아저씨에게 팔렸다. 역시, 오피스텔은 그런 용도로는 훌륭한 건축물이다.


맨날 술만 마시던 통에 판단력이 흐려진 우리 부부가 흐지부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의 첫 신혼집을 비워줘야 할 시간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결국 우리 부부는 나중에 돌아보니 다소 후회되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