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가 만난 도시. 그 날의 기록 #10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카비테주의 따가이따이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화산인 따알화산이 있다. 영상 촬영을 위해 일행들과 함께 이 곳을 방문했다. 수억 년 전 화산이 폭발한 뒤 길이 25km, 폭 18km에 이르는 따알 호수(Taal Lake)가 형성되었고, 1977년 다시 화산 폭발이 일어나 화산 분화구 안에 다시 작은 분화구가 생겼다고 한다. 육로로 이어지지 않아 작은 배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선착장에 내려 조금만 걸어가니 엄청난 수의 말들이 눈앞에 보였다. 성인 말이라고 하기엔 말랐고, 조랑말이라고 하기엔 조금 길쭉한 그런 말들이었다. 따알 분화구가 있는 정산에 가기 위해선 2가지 방법이 있는데, 당연히 수많은 말들이 있으니 말을 타고 가는가 아닌가 하는 정상적인(?) 방법, 그리고 두발로 오르는 방법이 있다. 자연스럽게 일행들과 말을 타고 오르기로 했는데, 오르다 보니 서양인 여러 명이 걸어서 올라가고 있었다. 거의 90프로는 말을 타고 간다고 보면 된다. 처음 말을 타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마부의 에스코트를 받아 산을 오르기 때문이다. 주황색 상의를 입은 마부의 등 뒤에는 번호가 있는데 숫자가 100이 넘어가는 걸 보면 말의 수가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난.. 타기 싫었다. 뭐랄까. 그냥 말들이 불쌍했다. 마부가 말하길, 짐을 말 등에 업고 다니는 애들이라 체력이 좋다니, 늦게 가는 건 게으름 부린다느니 하는데, 무거운 사람을 업고 높은 경사를 힘겹게 올라가는 말이 불쌍했고 재미는커녕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말들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는 자세를 똑바로 해야 한다. 오르막길엔 최대한 상체를 숙여 말에게 부담을 줄여주고, 내리막길엔 상체를 최대한 뒤로 젖혀 균형을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산을 오르기 전에 말을 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스크를 착용한다. 바로 악취 때문이다. 수많은 말이 오르내리면서 만들어낸 냄새일지도 모른다. 배설물도 있을 테고 말이다. 그래서 대다수가 말을 타고 올라가고, 걸어가는 사람은 드문 편이다. 하지만 만약에 다시 가게 된다면 걸어서 오르고 싶다. 냄새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말 때문에 신경 쓰여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드디어 정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을 만큼 올라왔다. 말은 마구간에서 쉬게 하고, 걸어 오르다 보면 작은 전망대와 함께 전망이 확 트인 멋진 자연경관이 펼쳐진다. 여기까지 올라온 걸 자연이 반겨주듯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화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던 장소지만, 재방문할 의사는 없고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 정상의 분화구는 좋았지만 오르는 과정이 참 힘들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곳의 말들이 사라지고 모두가 걸어 올라간다면 모를까. 말을 탄다면 주관적으로 이 관광은 난 반댈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