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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Oct 29. 2022

연기가 필요해

학기 초에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면담할 때마다 묻지 않아도 주말부부라고 말한다. 가끔 아이가 일기장에 일요일에만 오는 아빠를 언급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연스러운 맥락 속에 사소한 정보로 써 둔 문장을 뒤늦게 펼쳐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철렁한다. 선생님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혹시 발표라도 하면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이 된다. 그래서 미리 연막을 쳐두는 것이다. 아이 아빠가 주말에만 오지만 우리 집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그러니 우리 아이가 남들과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오해는 하지 말기를. 그런 바람을 담아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이다.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이 별거의 좋은 점에 대해서 갈수록 더욱 견고하게 피력하고는 하는 나인데, 둘러대야 하는 상황은 나를 비굴하게 만든다.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인가 나는 생각한다. 그 모든 과정과 설명을 20분의 상담 시간에 털어놓을 수는 없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도 없다.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글은 설명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 돌아섰던 모든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설명하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떳떳하다고 해서 아이도 그럴 수 있을까. 떳떳함은 오랜 시달림을 지나 만들어졌다. 생각하고 행동하고 대화하고 부딪히고 아프고 일어나고 쉽지 않은 날들이었다. 그렇게 얻어낸 근거와 안정이 그대로 아이에게 스며드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나름의 이해와 적응의 시기를 거쳤고, 그 애가 받아들인 만큼이 우리 부부의 사정과 꼭 맞지 않더라도 그걸 굳이 정정해주어야 할까. ‘아빠가 바빠 따로 사는 가족’을 ‘별거하는 가족’으로 알려줘야 할까. 아이는 더는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 상황에 그 애는 책임이 없다.      


한 번은 아이가 대뜸 결혼기념일을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잊어버린 것이다. 9월인가 10월인가, 7일인가 6일인가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가을이긴 가을이었던 것 같다. 똑같은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공항으로 가던 일은 생각난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엄마 까먹은 거야? 아이가 놀리듯 물었다. 이런 건 미리 대비했어야 했는데, 이 관계의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면 단단히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아이는 부모의 별거가 별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컸다. 아마도 아빠가 부재할 당시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일 것이다. 딱 한 번 집을 떠난 아빠가 돌아오지 않고 있을 때, 네 살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가리키며 울부짖었다. “저거 버려! 저거 버려!” 나는 문득 아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두려웠고,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은 아빠의 부재 때문에 그 애가 슬프고 억울하다는 것을 이해했고, 그것을 홀로 참아온 날들이 가엾었다. 나는 아이가 다 울 때까지 말없이 안아주었다.     


그 일이 있었던 다음 해 아이 생일에 그는 분홍색의 미니 피아노를 보내왔다. 집을 떠난 후 첫 기척이었다. 나는 그걸 조립해 주며 아빠가 여전히 너를 기억하고 사랑한다고, 곧 너를 보러 올 거라고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아빠와 딸이 재회했을 때 둘은 눈이 빨개져서 같이 웃었다. 나는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그 자리만큼은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로부터 그는 정기적으로 아이를 보러 왔고, 우리는 아이에게 아빠가 멀리서 일하느라 같이 살지는 못하지만 주말마다 그리고 원할 때마다 볼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부재가 다시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아이는 아빠가 같이 살지 않는 것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아이와 나는 주중을 바쁘게 보내다 주말이 가까워지면 아빠와 함께 할 것들을 의논했다. 고깃집에 가기, 쿠키 만들기, 보드게임 등등 아빠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은 일정을 남겨두었다. 일요일은 새로운 즐거움이 있는 날이라고 아이가 느끼길 바랐다. 

아이의 아빠는 지금까지 빠뜨리지 않고 아이를 만나러 온다. 그 규칙적인 만남은 일상이 되었고 일상으로 자리 잡은 것은 적어도 불안을 주지는 않는다. 아이는 기다리지 않아도 돌아오는 일요일처럼 아빠가 온다는 것을 안다.     


얼마 전에는 아이와 같이 텔레비전을 보는데 아이에게 정서적인 문제가 있어 전문가가 그것을 돕는 프로그램이었다. 마침 이혼가정이 출연했다.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다. 혹시나 부모의 이혼이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과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자책하며 연신 눈물을 쏟는 그들에게 나는 몹시 이입해 같이 울었다. 아이가 그런 나를 보더니 대뜸 말했다. 엄마 아빠는 절대 이혼하지 마! 지금처럼 사이좋게 살아야 돼!

뜨끔했다. 이혼 서류만 안 썼을 뿐이지 이미 내 마음은 싱글인지 한참인데, 아이에게 이혼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니 뭘 다 먹어 치우고 나서 그거 절대 먹지 말라고 경고받은 것처럼 뻘쭘하고 당혹스러웠다. 실토하기엔 늦었고 확답을 주기엔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별거 생활이 아이에게 우리 가족만의 모양으로 잘 받아들여진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그 말은 분명 혹시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할까 불안하고 걱정되어한 말이 아니라 가능성 없는 일이긴 하지만 혹시나 하는 노파심이 담긴 으름장이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하루만큼은 열심히 사이좋은 엄마 아빠로서 연기해왔다. 몇 해가 지나자 이제 연기와 진심의 경계가 섞이면서 점점 더 서로를 존중하고 염려하는 좋은 사이가 되어가고 있다. 더 철저하게 연기하자는 마음과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아빠에 대한 칭찬 하나씩을 잊지 않고 한다. 아빠는 상냥하고, 너그럽고, 부지런하고, 자기 일에 열심이고, 너를 너무 많이 사랑한다고. 일요일에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를 반갑게 맞이하고 문을 나서는 그를 명랑하게 배웅한다. 그의 방문이 우리에게도 소중하다는 것을 그가 느끼길 바라며 그렇게 한다. 그가 또 올 수 있게. 언제까지라도 기쁜 마음으로 올 수 있게. 나는 그를 환대한다. 나의 환대가 그의 만족이 되고 그것은 아이에게 따뜻함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하다 보면 할 수 있다. 하다 보면 언젠가부터는 연기가 오 년이면 그건 그냥 나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아이는 어쩌면 훗날 엄마 아빠와 큰 문제없는 유년을 보냈다고 기억해줄지 모른다. 그 한 줄의 감상이면 나는 만족한다. 아이가 이혼만은 하지 말아 달라 하면, 그 이혼은 얼마든지 안 할 수 있다. 일상에서 연기를 계속하는 일도 문제없다. 나와 그가 같은 마음이기에 그렇게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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