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40)
내가 신수 바.루타에 올라타고 난 이후, 루타는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축 처져 있던 코를 들어 물줄기를 뿜기 시작했는데, 이전보다는 훨씬 그 줄기가 약해졌다.
전기의 화살을 쏴서 제압을 했다고 해도, 아예 멈출 수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또 폭주할지도 모르니 빨리 뭐라도 해야겠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이드 스톤이 있어서 시커 스톤을 가져다 댔다.
가이드 스톤에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워프 지점으로 이 장소를 맵에 등록합니다."
그러더니 가이드 스톤 뒤쪽 바닥에 있는 시커 문양에 푸른 빛이 돌았다. 여기에 워프 마크가 있다는 건,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수도 있다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는 뜻일까 생각했다.
그런데, 워프 마크 등록을 확인하고 났더니 고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곤조곤하고 상냥한 음성.. 이 목소리는 미파였다!
"무사했구나...."
미파는 세상을 떠났을텐데, 어떻게 말을 하는 거지? 어디에 있는 거지? 나는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지 찾으려고 사방을 둘러봤지만 소용없었다. 미파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미파는 내게 계속 말을 건넸다. 목소리라도 들으니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그녀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나, 쭉 생각하고 있었어... 언젠가 네가 이곳에 와 줄지도 모른다고...."
그러더니 잠깐 말이 없던 미파는 내게 다시 말을 걸었다.
"가논에게 빼앗겨 버린 루타를 되찾으러 온 거지....?"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모습을 보이진 못해도 나를 지켜보겠지.... 그러한 마음으로.
미파는 내게, 신수를 되찾기 위해서는 내부 구조가 담긴 지도를 먼저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먼저 내부 구조가 담긴 맵을 손에 넣어야 해...."
시커 스톤에 빛이 나기에, 시커 스톤을 열었더니 신수의 내부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딘가 기둥으로 막혀 있는 방 안에 가이드 스톤으로 보이는 장치가 또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려니 미파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게 맵 정보가 담긴 가이드 스톤... 저기까지 가도록 해...."
그리고 나서 미파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일단, 가이드 스톤은 신수 안쪽 어딘가에 있을 테니 들어가서 여기저기 뒤져 봐야겠다... 생각했다. 열린 아치형 문으로 발을 내딛는데, 멀리서도 섬뜩한 기운을 가진 눈알이 나를 노려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눈은 바닥에 질퍽질퍽 들러붙어 있는 원념 덩어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 눈알 주변에 깔린 원념 덩어리에서는 독기가 제법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매캐한 느낌은 바로 저것 때문인지도...! 나는 문으로 들어가면서 화살을 장전하여 눈알을 맞추었다.
다행히도, 눈알을 맞추니 그 주변 바닥을 전부 막고 있었던 원념과 독기가 사라졌다.
독기가 사라지고 난 홀의 안쪽에는 미니 가디언이 움직이고 있었다. 가디언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빠르게 탐색하며 내게 접근해오기에 그대로 칼을 들어 몇 번 내리쳤다. 가디언은 작아서 그런지 금방 파괴되었다.
가이드 스톤이 있는 곳까지 와서 위치를 확인하고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 대각선 맞은편에 가이드 스톤이랑 비슷하게 생긴 것이 또 있었다. 뭐지? 일단 가이드 스톤 앞에는 철문이 내려져 있으므로 다른 장치를 살펴보기로 했다.
그 장치는 물 아래 잠겨 있어서 이걸 어떻게 꺼내지 고민을 좀 했다. 나의 반대편 벽에는 뭔가 돌면서 움직일 것 같은 톱니바퀴들이 붙어 있어서 그쪽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더. 기어를 살피다, 재질이 철인것 같아 시커 스톤의 마그넷 캐치를 켰는데, 예상이 맞아들었다. 톱니바퀴와 연결된 손잡이를 마그넷 캐치로 잡아 돌려보니 물 아래에 잠겨 있던 장치가 위로 올라왔다.
그 장치에 시커 스톤을 켜서 작동을 시키자, 미파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남은 제어 단말은 앞으로 4개... 힘내...."
음? 제어 단말? 음... 4개라는 걸 보니 원래 지도를 손에 넣어야 하는 것은... 이 제어 단말을 찾기 위해서인가보다... 그렇게 여기고 나는 다시 가이드 스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철장 아래에 물이 찰랑찰랑 차오른 것을 떠올렸다. 이 철문 아래 얼음을 만들어 올리면, 문이 열리겠지? 그래서 시커 스톤의 아이스메이커 기능을 이용해 철문 아래에 큰 얼음 블럭을 만들었다. 예측한대로 얼음 블럭이 문을 들어 올려 들어갈 수 있었다! 생각한 대로 일이 맞아들어가니 조금씩 자신이 생겼다.
가이드 스톤에 시커 스톤을 집어넣으니, 시커 스톤에 지도 정보가 담겼다.
맵 입력을 시작한 가이드 스톤의 작업이 끝나자, 열린 화면에는 신수 바 루타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런데 루타의 속이 다 비쳐보여 내부 구조를 살필 수 있게 되어 있어 매우 특이하게 보였다. 거기다가 신수를 조작할 수 있었는데, 바.루타의 코를 움직일 수 있어서 뿜어내는 물줄기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편리한 점은 바로, 제어 단말기의 위치가 모두 표시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지도를 확인하고 나자, 미파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신수 맵을 구했구나...."
어디선가 나를 지켜 보고 있는 거겠지? 아니면 가이드 스톤 때문에 아는 걸까? 어쨌든, 다시는 만날 수 없다 생각했던 미파를 이렇게 목소리나마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파는 내게 신수를 다시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차분히 알려 주었다. 맵에서 아까 확인했던 단말기의 위치가 바로 신수 바.루타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라고 했다.
"맵을 잘 봐...빛나고 있는 표시가 신수 바.루타를 제어하는 단말.... 루타를 되찾기 위해선 제어 단말을 모두 기동시켜야 해...."
미파는 그러더니 아주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힘내...."
가이드 스톤이 있던 방에서 다시 나왔다. 아이스 메이커로 만든 얼음이 아직 깨지지 않고 있었기에 그냥 나올 수 있었다. 방에서 나와 큰 홀이 있는 다음 공간으로 넘어갔는데, 한쪽에는 아주 커다란 봉오리 같은 것이 있었다.
이것도 제어 단말인가? 싶어서 가까이 다가갔다. 봉오리 가운데 앞에 단말기로 보이는 장치가 있긴 한데... 이상하게도 그 봉오리에선 기분 나쁜 느낌이 있었다. 생긴 건 약간, 뭐랄까... 마용의 봉오리나 대요정의 샘이 열리기 전의 모습과도 흡사해 보였지만 ... 느낌만은 아주 달랐다.
혹시 몰라 시커 스톤을 가져다 댔지만 이런 메시지만 나왔다.
"기동되지 않은 제어 단말이 있으므로 이 메인 제어 장치는 아직 기동시킬 수 없습니다."
음... 이것이 어쨌든 메인 제어 장치다? 그렇다면 가장 마지막에 움직이게 할 수 있겠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지도를 보며 다른 제어 단말을 찾아 나섰다.
지도를 보고 제어 단말을 찾으려고는 해도, 지도가 평면으로 보이지 않아서 실제로 위치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위치를 파악한 후 제어 단말로 가려면 연결된 길이 바로 보이지 않는 곳도 있고, 어떻게 들어가야 제어 단말로 접근할 수 있을지 한참 생각을 해야 하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제어 단말을 하나씩 열고 장치를 작동시키자, 이렇게 신수 내부에도 물이 흐르게 되었다. 이 폭포 장치를 이용해서 신수의 가장 위쪽으로도, 또 다른 공간으로도 이동할 수 있어서 퍼즐을 푸는 데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제어 단말을 순차적으로 열었고, 그 때마다 미파는 나에게 앞으로 열 제어 단말의 갯수를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는 힘내라는 응원을 계속 보내주었다.
이런 저런 시도 끝에 제어 단말을 찾아 여는 퍼즐 풀기가 끝나고, 마지막 제어 단말을 밝혔을 때 미파의 목소리가 좀 밝아진 것 같았다.
"제어 단말은 이게 끝이야! 메인 제어 장치를 기동시킬 수 있게 됐어... "
그리고는 지도를 잘 보라면서 다시 확인을 부탁하는 말을 했다.
"맵을 잘 봐... 새롭게 빛나고 있는 커다란 표시가 있을 거야... 그리로 가!"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움직이려 하는데 미파가 한번 더 조심하라는 말을 했다.
"...절대 방심하진 말고...."
처음 열어보려고 했던 메인 장치가 있는 공간으로 다시 왔다. 메인 기동 장치는 아까와 다르게 빨갛게 변해 있었다. 이제 저것만 기동시키면 신수를 되찾는 거란 말이지?
메인 장치 앞에 오니 조금 떨렸다. 이제 첫 신수를 되찾는 거다! 시커 스톤을 들고 단말기에 가져다 대려는데,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매캐한 기운이 더 강해진 것 같기도 했다. 미파가 방심하지 말라고 했는데....
잠깐 망설여졌지만, 이걸 기동시키지 않으면 신수를 되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시커 스톤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예상 외의 일이 벌어졌다.
제어 단말 주변이 독기로 불타오르듯, 검고 붉은 아우라에 둘러싸였다. 마치 눌려져 있던 무언가가 봉우리에서 새어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떡해야 하지? 당황하는데....
봉오리 주변에서 바람이 불더니, 푸른 빛이 어디선가 나와서 소용돌이 모양으로 돌았다. 그 빛은 공중의 어딘가에 모이기 시작했다. 바로 내가 바라보고 있는 허공 앞에!
내 앞에 둥글게 모인 빛은 이렇게 저렇게 스스로 모이며 꿈틀거리더니 어떤 형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빛이 만들어낸 형상은 꿈에서도 본 적이 없는, 그리고 어떻게 표현할 지도 알 수 없는, 이상하게 생긴 괴물과 같았다. 가운데 눈처럼 달린 것은 가디언의 그것과도 같아 보였는데... 이러저러한 고대의 부품과 소재가 엉켜서 만들어진 또 다른 병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커 스톤의 알림이 울렸다.
'신수 바.루타에 기생하는 물의 커스 가논'
물의 커스 가논은 하체는 없고 상체만 있었으며 공중에 떠 있었다. 한쪽 팔과 연결된 손 부분에는 아주 긴 스피어인지, 아니면 장검인지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응축된 에너지가 높아 상대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가논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아 이것도... 가논의 한 종류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미파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심해! 저건 가논이 만든 몬스터...."
미파의 목소리가 한층 떨렸다.
"100년 전의 나는 녀석에게......"
!!! 그렇다면 이 녀석이 바로 미파의 원수.....
어떻게 싸워야 할지 아직은 알 수 없으므로 녀석의 약점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살피는데, 미파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너라면 이길 수 있어....반드시..이길 거야..!"
미파, 지켜봐줘! 그런 마음으로 나는 무기를 빼 들었다. 내가 물의 커스 가논 가까이 접근하자 미파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저 창을 조심해! 사정거리가 엄청 길어!"
나는 약간 거리를 두고, 커스 가논이 어떻게 공격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먼저 커스 가논은 그 긴 창을 내게 던졌고, 순식간에 회복하여 또 다시 던졌다. 긴 창이지만 날아오는 속도가 빠르지 않아 피하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공격은 그 긴 사정거리를 활용하여 창을 크게 휘두르는 것이었다.
'저기에 한 번 맞으면... 아주 끝장이겠군..!'
나는 커스 가논에게 접근하여 주목을 한 후, 커스 가논이 창을 깊숙히 찔러 올 때 옆으로 회피했다. 저스트 회피 기술이 발동되어 물의 커스 가논을 공격할 수 있었다. 그 타이밍에 미파의 응원이 들려왔다.
"그거야!"
창은 휘두르면 공격이 크지만, 그 공격을 회수할 때는 시간이 약간 걸려서 물의 커스 가논은 틈이 많았다. 그 때를 노려서 가논에게 칼을 휘두르자, 녀석은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다른 장소에 다시 뭉쳐서 나타났다. 치사한 가논....
가논이 나타난 자리를 쫓아갔더니, 그 다음 공격은 창 휘두르기 같았다. 팔을 번쩍 들기에 뒤로 뛰어서 회피를 노렸다. 다행히 회피 저스트가 먹혀 공격했더니 미파의 기운찬 외침이 또 들렸다.
"멋져, 링크!"
처음 단말기를 하나씩 열 때는 기운이 없어 보였던 목소리였는데, 미파의 기운찬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기분이 좀 좋아졌다. 하지만 앞에 나타났던 가논은 다시 다른 쪽으로 장소를 옮겨 버렸다.
이번에는 한 팔을 번쩍 들어 공중에서 힘을 모으더니 바닥의 물 높이를 높여 버렸다. 이렇게 해서는 ... 헤엄쳐 다녀야 녀석의 공격을 피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내게 너무 헛점이 많아진다....긴장이 되는데 미파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바닥이 좁아졌어! 조심해....."
그 말을 듣고 보니, 군데 군데 찰랑거리는 물 사이로 돌바닥이 올라와 있었다. 어떻게든 이 돌바닥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거나 돌바닥을 이용한 공격을 해야겠다.... 생각하는데, 물의 커스 가논은 바로 이어서 공격을 해 왔다. 신수 바.루타의 외부 공격처럼 물의 커스 가논도 아이스 블록을 만들어 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 시드 왕자와 내가 밖에서 루타에게 접근할 때 공격한 것도 이 녀석이란 소리다. 하지만 어림없지!
나는 시커 스톤의 아이스 메이커 기능을 켜서 날아오는 블럭을 모두 깼다. 그리고는 뒤이어 내 앞에 얼음 기둥을 만든 다음, 그 위로 올라가 뛰었다. 뛰면서 공중 자세로 화살을 장전, 커스 가논의 중심을 노려 쏘았다. 체공 시간이 약간 짧아 커스 가논의 눈 정중앙을 정확히 겨누진 못하고 두 발을 연거푸 쏘았는데, 다행히 한 방이 커스 가논의 눈에 명중했다! 물의 커스 가논이 쓰러지자, 다시 미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약해졌어... 어서!"
나는 쓰러진 커스 가논에게 뛰어가 칼로 커스 가논을 내리쳤다. 여러 번 내리치자 가논은 다시 일어나 다른 곳으로 형상을 옮겨갔지만, 다음 공격 패턴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이스 블록이 3개 뿐이었는데, 두번째는 5개나 등장했다. 하나씩 깨다가, 나의 가운데로 날아오는 얼음은 타임록으로 묶은 후, 위로 쳐 올려 다시 커스 가논에게 날아가도록 만들었다. 작전은 성공하여, 커스 가논은 맞고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달려가 커스 가논을 공격하니 녀석의 에너지도 제법 많이 떨어진 것 같았다.
커스 가논은 다시 정신차려 일어나더니 이번엔 가디언처럼 눈에 자신의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아이스메이커로 기둥을 만들어 올라간 다음, 가논이 빔을 쏘기 전에 기둥에서 뛰어내리며 화살을 쏘아 가논의 눈에 맞추어 넣었다. 그것이 마지막 한 방이 되었다!
에너지를 다 소진한 물의 커스 가논은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더니, 커다란 폭발음을 내며 사라졌고...
메인 기동 장치에서는 암울한 기운이 사라지고, 밖의 햇살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햇살이 바.루타의 중심 홀에 가득 찼다. 그런데 공중에서 뭔가 반짝거리면서 앞으로 내려오는 걸 보았다. 뭐지? 하고 가까이 다가가 보았는데, 그건....
하일리아 여신이 내려주는 생명의 그릇이 내 눈앞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럴수가... 신수 안의 적을 격파하면 생명의 그릇을 주는구나.. 기쁜 마음으로 그릇을 받아 챙겼다. 몸에 무언가 기운이 넘치고 따스한 열기가 느껴졌다.
이제 적을 물리쳤으니 드디어, 메인 제어 장치를 가동시킬 순서였다. 제어 장치에 시커 스톤을 가져다 대니 지금 신수를 작동시키면 다시 이 안으로는 돌아올 수 없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흠... 본래 이 신수를 조종하는 것은 미파였으니, 미파가 아니면 다시 들어올 수 없게 되는 게 아닐까...
하지만 다시 신수 안에 들어올 일은 없다. 이렇게 신수에 기생하는 가논의 몬스터를 처치하고, 신수를 되찾았으니 내가 할 일은 그것이 전부다. 나는 시커 스톤의 기동 확인 메시지에 '기동' 을 선택했다.
그러자 메인 기동 장치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가이드 스톤을 바라보며 메인 장치를 지켜보는데, 메인 장치는 붉었던 기운이 사라지고, 파란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때 기대하지 않았던 미파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고마워.... 덕분에 내 영혼은 해방되고..."
음? 그런데 목소리가 들리는 쪽에서 무언가 환한 빛이 비쳐들었다. 고개를 들어 보았더니 ... 믿을 수 없게도, 미파가 그 곳에 서 있었다....!
미파는 내게 계속 말을 걸었다.
"... 그리고... 이 루타도 되찾았어."
하이랄 왕의 영혼처럼, 미파도 푸른 불꽃에 휩싸여 있었다. 아... 그렇구나.. 그녀는 세상을 떠났지만 영혼만은은 이곳에 남아 있었던 거였구나... 그래서 내게 말을 전할 수 있었던 거였어....
그렇게 생각하며 미파를 바라보았다. 미파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지만, 목소리는 약간 쓸쓸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놀기엔 이미 늦은 것 같네....
미파가 잠시 눈을 지긋이 감았다.
미파의 모습을 보니 우리가 마지막으로 단 둘이 만났던 당시가 떠올랐다. 그 때 미파의 부탁... 가논을 처치하고 모든 것이 끝나면, 다시 조라의 마을로 놀러와 달라고 했었지.... 그러나, 지금 미파의 말대로 그 때는 늦었거나... 아니, 어쩌면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어 버렸다. 젤다 공주가 재앙 가논을 누르고 있다고는 해도, 아직 활동 중이며... 그 일을 완수한다 해도, 미파와는 다시 만날 수 없을 테니까....
미파는 내게 조금씩 다가왔다. 그녀는 아쉽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치유의 힘도... 영혼만이 남아 버린 지금의 나는....."
"이제 쓸 수 없어......"
그녀의 말은, 상처가 나거나 내가 다치면 언제든지... 나를 지키고 싶다 말했던 그 때의 의지를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다는 아쉬움의 말로 들렸다. 왠지 콧날이 시큰해졌다.
그런데, 미파가 의외의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이제 그 힘을 쓸 수 없으니, 나에게 맡기겠다고...
"그러니까, 너에게 맡길게...... 나의 힘......미파의 기도...."
미파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으며 기도를 올리는 자세를 취하더니 어떤 힘을 모았다. 그것은 둥글고 푸른 빛을 띤 것으로, 그녀는 두 손에 그 기운을 잔뜩 불러올리더니 한 순간에 내 쪽으로 보냈다.
파란 불꽃처럼 내게 날아온 그 힘은 내 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눈 깜짝할 사이에 온몸에 물의 기운이 넘쳐 흐르면서, 내 주변까지도 에워쌌다. 아... 이것이 미파의 힘? 미파만이 쓸 수 있었던 그 치유의 힘인가....
부드럽고 포근한 기분이 드는 이 기운을 받고 나니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나의 전신을 둘러싸고 있던 푸른 빛은 서서히 사라지더니, 내 가슴께로 모두 흡수되어 사라졌다.
미파의 기운을 받으며 공중에 잠시 떠있었던 나는 바닥에 다시 내려왔다. 그때 미파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어제까진 늘 울고만 있었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누군가가 다치면 치료해 주던 용기가 가득했던 미파.... 신수 조종을 젤다 공주가 부탁했을 때도 흔쾌히 받아들였던 미파였는데, 울고만 있었다고? 그 말이 믿기지 않아서, 나는 미파를 다시 바라보았다. 미파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이렇게 말했다.
"영혼만 남은 채로 이곳에 갇혀... 앞으로 영원히 혼자가 되는 건가 해서... "
그러나 미파 공주는 다시 고개를 들더니 나를 바로 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오늘... 네가 구해 줘서.... 이렇게 다시 한 번 만나게 됐어."
그녀는 나를 직접 만나서 기뻤던 걸까? 그랬겠지? 비록 살아서 만난 것은 아니었으나, 이렇게라도 미파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들어 마음이 놓였다. 그녀를 위해 내가 해 줄수 있는 것이란... 커스 가논을 해치우는 정도의 일 뿐. 하지만 미파는 이런 정도라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괜찮아... "
약간은 쓸쓸하게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 가녀린 모습...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눈빛만은 한없이 따스했다.
그리고는 이제 가 보겠다고 말했다.
"그럼 갈께..."
그녀는 자신이 가야 하는 이유를 내게 일깨워 주었다. 아직 우리들의 끝나지 않은 싸움이 남아 있으니까.
"나와 루타의 임무를 해내야지...."
"네가 그 성에서 가논과 싸울 때를 위한 지원......"
그렇다. 내가 재앙 가논과 싸울 때, 이 바.루타가 100년 전에 하지 못했던 일을 완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다짐하듯, 그리고 나에게 약속하듯 미파는 힘주어 말했다.
"이번엔, 실패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간다고 한 건 그녀였는데... 이상하게 내 몸 주변이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워프의 빛?? 아니... 그거랑은 조금 다른데.... 밝고 부드러운 빛이 나를 서서히 감쌌는데, 힘이 강해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미파 쪽으로 손을 뻗으려 했지만...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녀의 앞에서 점점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미파는 내 이름을 불렀다.
"링크....!"
나의 몸이 절반 이상 그녀의 앞에서 사라지고, 더 눈부신 빛이 다가오며 나를 덮을 때,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게 전한 말이 다가왔다.
"그 사람을...... 공주님을......"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신수 바.루타를 벗어났다. 본래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것처럼, 루타는 나를 밀어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빛 속으로 끌려 들어가면서 들었던 미파의 마지막 말은 내게 남아 있었다. 강한 여운으로...
".... 공주님을... 구해 줘....."
자신도 해야 할 바를 하겠으니, 나도 내가 해야 할 바를 하라는 그녀의 마지막 부탁.... 마음씨 고운 미파.... 왜인지 모르겠지만, 눈가가 젖어왔다. 미파를 생각하며 눈을 감았는데 신수 바.루타가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한층 낮아진 중앙 저수지의 물 높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를 신수 바.루타가 조금씩 움직였다. 어디론가를 향해 거침없이 움직이는 신수 바.루타... 그러더니 몸을 낮추어 물 안으로 점점 들어갔다.
언덕을 향해 헤엄쳐가던 루타는 그 커다란 몸을 물 밖으로 끌어낸 후, 언덕을 쿵쿵 올라갔다. 그렇게 큰 신수가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경이로운데 코끼리의 겉모습을 닮은 루타의 육중한 몸체가 생각보다 언덕을 척척 올라가는 것도 놀라움이었다.
신수 바.루타는 중앙 저수지 주변의 어느 곶에 오르더니 하늘을 향해 그 큰 코를 들어 올리며 커다란 소리를 냈다. 마치 기지개를 켜며 이제 자신도 잠에서 깨어났다는 듯이...
들어올린 코 아래에는 코끼리의 상아가 튀어나온 것처럼 돌출되어 있는 기둥이 있었다. 그 기둥이 서서히 푸른 빛을 내기 시작했는데, 그건 루타가 자신의 내부에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응축시키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신수 바.루타는 에너지를 가득 모으자마자, 하이랄 성의 중심부를 향해 자신의 에너지를 쏘았다. 이것은 가논 공격을 위한 준비 단계로써, 때가 되면 루타가 모은 에너지를 통해 일격을 가할 것이었다.
그렇게 루타가 준비를 마치자, 미파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미파는... 루타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었다.
"루타.... 네 덕분에 나는 링크를 도울 수 있어..."
"그 사람이 하이랄 성에서 재앙 가논과 싸울 때 도와줘... 너의 일격으로 최대한 가논의 힘을 빼앗아 줘...."
그녀의 말은 마치 기도처럼 들렸다.
"그것이 링크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도움이니까...."
미파는 멀리서 재앙 가논이 포효하고 있는 하이랄 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몸을 숙여 루타를 쓰다듬었다.
"가논을 봉인하면 하이랄에 평화가 오고... 너와 나도 사명을 마칠 수 있겠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오른편에 보이는 조라의 마을을 바라보았다. 다소 슬픈 눈을 한 그녀는 도레판 왕을 그리워했다.
"아바마마... 건강하실까?"
"나, 늘 멋대로 굴고....."
"걱정만 잔뜩 끼치고......"
그녀가 바라보는 곳은 조라의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왕의 방.... 햇살이 비쳐 들어오는 조라의 마을은 아름답게 빛났다. 도레판 왕도 저기서 미파를 한시도 잊지 않았으리라... 할 수만 있다면, 그 이야기를 미파에게 전해주고 싶었지만... 나 역시 빛에 갇혀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파의 영혼은 꽤 오랫동안, 신수 바.루타 위에 머물면서 조라의 마을을 바라보았다. 조라의 마을 사람들과 도레판 왕을 그리워하며... 거기엔 동생 시드 왕자도 포함되어 있겠지... 그녀는 중얼거리며 손을 모았다.
"할 수만 있다면... 한 번 더.... 만나고 싶었는데....."
조라의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가득 받던 미파 공주....
나를 아끼고 연모했다는 그녀....
신수 바.루타에 기생하는 물의 커스 가논을 무찌르는 것이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지만, 막상 전투를 마치고 그녀의 영혼을 대하니.. 그것이 과연 충분한 대답이었을까... 나는 미파를 생각하면 자꾸 미안한 마음이 더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