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왜 그렇게 안 바꿔? 변화 싫지?
”런던 시내의 도로들은 마차가 다니던 길이었다.”
런던에 며칠이라도 관광을 다녀온 사람들은 금방 눈치채는 것이 있다. 바로 도로 사정이다. 최고의 번화가인 옥스퍼드 스트리트는 2차선이다. 편도로 치면 1차선인 셈이다. 놀라운 사실은 도로보다 인도가 넓다는 점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옥스퍼드 스트리트에는 승용차가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심야나 새벽에는 가능하다. 한국의 강남역이나 광화문과는 대조적이다. 심지어 런던 시내 1 존에는 승용차가 들어가려면 혼잡통행료를 내야 한다. 적용시간은 07시부터 18시까지고 요금은 8파운드다. 혼잡 통행료도 문제지만 런던 시내 주차 요금은 상상을 초월한다. 시간당 10파운드가 넘는 곳이 많다. 한마디로 차를 몰고 런던 시내로 들어오지 말라는 소리다.
도로가 아무리 넓어도 서울의 교통난은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왕복 8차선에서 16차선이어도 막히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에서는 횡단보도 한번 건너려면 뛰어야 한다. 그렇다고 영국이 한국보다 자동차 등록대수가 적은 것도 아니다. 집집마다 2대는 기본이다. 그런데도 런던은 2차선으로도 잘 소통이 된다. 그 이유를 서울시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때다.
“런던 시내에서는 창문 페인트 색깔까지 정부가 규제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영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의 하나가 보존이다. 영국에서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신도시를 건설하거나 기존의 건물들을 철거하고 다시 짓는 일을 본 적이 없다. 100년 전의 런던 시내 거리나 지금이나 다른 것이 거의 없었다. 간판들만 좀 바뀌었을 뿐이었다. 요즘은 런던 시내에 제법 높은 고층 빌딩도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건물들을 철거하면서 생기는 빌딩들이 아니다.
런던에서는 외관만으로는 그 건물이 무슨 건물인지 알기 쉽지 않다.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오래된 건물도 철저하지 않고 고쳐서 사용한다. 런던 시내의 경우 유리창 창틀의 색깔까지도 통제를 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하지 않는 일을 국가가 하고 있다. 그만큼 개발보다는 보존이 우선의 가치다. 그 보존의 가치 덕분에 런던은 몇 백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오래된 건물들의 내부까지 구닥다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화 킹스맨에서 나오듯이 그 내부는 초현대식인 경우가 많다.
사실 경제성이나 효율성만을 따진다면 철거하고 다시 고층으로 건설하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이나 중국의 대다수 도시에서 하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50년도 되지 않은 아파트들을 헐고 재건축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버렸다. 그 재개발을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서울에서 재개발은 로또와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런던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런던 시내의 경우, 몇 백 년 된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그들이 기술이 없어서나 돈이 없어서 재건축을 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도 오해다. 심지어 템스 강을 사이에 두고 첼씨와 마주하고 있는 베터시라는 지역에 수 백 년 전에 지어진 화력발전소가 있다. 그 화력 발전소는 수 십 년을 방치된 채로 흉물스럽게 자리하며 아름다운 템스 강의 외관을 위협할 뿐이었다.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폐허가 된 발전소였다.
그 발전소조차도 철거하지 않고 역사의 유물로 남겨둔 것이다. 다행히 주인이 나타나 그 발전소 굴뚝 까지 그대로 보존한 채 아파트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쯤 거의 공사가 마무리되어서 입주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기가 막힌 발상인가! 화력발전소 안에 있는 아파트에서 산다니! 그것도 최첨단 인공지능 아파트에서 말이다. 아파트 앞에는 템스 강이 흐른다. 그 유명한 첼시 구장의 스템포드 브리지도 보인다. 빅벤이나 의사당 건물도 보인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단 철거부터 하고 본다. 서울에 콘크리트 빌딩만 남아 가는 이유다.
”영국이나 프랑스 친구들이 서울에 오면 도대체 어디를 구경시켜야 할까? “
언제부터 전주의 한옥마을이 그렇게 유명해졌는지 알 수 없다. 그가 고등학교 3년을 보낸 곳이 전주 한옥마을 근처였다. 그 한옥마을이 그 당시에는 실제로 주민들이 거주하는 집이었다. 지금도 거주하는지는 잘 모른다. 한국 군사정권 출신의 대통령들이 경상도가 아닌 전라도 지역에서 나왔더라면 전주가 지금처럼 낙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전남은 전북에 비해 괄목할 만하게 변하였다. 그 지역 출신의 대통령이 나온 결과였다. 그는 남도 여행을 할 때마다 새삼 느끼는 것이 있었다. 아름다웠던 남도의 섬들도 편리성이라는 명분 하에 다리들이 놓여 있었다. 섬 주민 입장에서야 당연하고 환영받을 일이지만 다리가 놓인 그 섬을 차를 타고까지 굳이 방문할 일이 없어졌다. 물론 그만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전주의 한옥마을은 근처의 남부시장과 함께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관광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가 고등학생 시절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낙후된 지역이 관광명소가 되리라고는 선견지명이 좀 있다는 그조차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전주 한옥마을을 생각할 때마다 그놈의 세상 참 알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지금에야 한류의 영향으로 관광지가 다변화되었지만 사실 영국 친구들이 서울에 간다면 딱히 추천해줄 곳이 없다. 중국이나 일본을 거치는 여행자들에게 경복궁도 전통 시장도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도심의 빌딩들은 상하이나 도쿄에서 실컷 보았을 것이다. 그들이 결코 좋아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인사동이나 북한산 또는 전주 한옥마을과 안동 하회마을 정도가 그가 추천해줄 수 있는 것의 전부다.
”현재는 후손들의 미래를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반면 한국 사람들이 런던에 오면 보여줄 것이 따로 있지 않다. 도시 자체가 사극의 영화 세트장 같기 때문이다. 파리도 마찬가지다. 개발보다는 보존이 주는 힘은 위대하다 못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매력 덩어리들인 것이다. 특히 파리는 고도 제한이 런던보다 더 심하다. 파리에서 고층건물을 보려면 파리 외곽의 데탕트라는 신도시에 가야만 한다. 이제라도 한국도 정신 차리고 한국만의 특징을 살리는 건물들을 복원하고 지켜나가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무조건 새것이 좋고 높은 것이 좋은 시대에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후손들의 미래를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제대로 그리고 의미 있게 사용하다가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영국의 저력은 시골 마을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천 년 전에 이미 영국은 전체가 신도시 개념으로 개발되고 있었던 것이다. 백 년도 아니고 천년을 대 다보는 나라가 10년도 내다보지 못하는 나라들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일은 어쩌면 식은 죽 먹기였는지도 모른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의 이면에는 이처럼 단순한 진리가 숨어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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