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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Apr 01. 2020

딱밤맞기 게임

수술실에 들어가는 너를 본다. 초록색 수술 복을 입은 의사들이 나를 긴장시킨다. 병원 냄새. 소독약품 냄새랄지 하는 것들. 무언가에 쓱 바르고 나면 휘발되어 버릴 그런 냄새가 거대한 건물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치료하도록 하는 그런 냄새였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일 뿐, 박테리아를 죽이는 알코올이나 과산화수소수 같은 것들은 말이 없다. 그래서 이 냄새는 우리의 안녕을 위해 애를 쓰는 모든 의사들의 노고에 대한 냄새이면서도, 여전히 냉담하다. 초록색 수술복도 냉담하고, 그리고 의사의 눈빛도 냉담하다. 그리고 또한 그 냉담함이 역설적으로 나를 안심시킨다. 지금 네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말이 아니라 냉정한 실력이었으니까.


너는 말한다. 


"괜찮아. 별거 아니야. 의사도 차질이 생기지만 않는다면, 무사히 끝날 거랬어."


그렇게 말한 뒤에도, 너는 차가운 수술대 위로 올라가 홀로 누울 것이다. 마취약은 정맥을 슬금슬금 타고 들어가, 심장으로 흘러들어가더니 다시 온몸으로 퍼질 것이다. 그것은 너를 재울 것이고, 그때에는 나도 수술을 모르지만, 너도 너의 수술을 모른다. 나도 모르고 또 너도 모르는 채, 초록색 수술복을 입은 의사들은 네 몸에 메스를 대고 개복할 것이다. 그때 그것을 끝으로 더 이상 네가 눈을 뜨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너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네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면 너는 네가 괜찮은지도, 괜찮지 않은지도 모를 것이고, 내가 그 앞에서 얼마나 괜찮지 않을지도 모를 거야. 그때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에 대해서 답을 주지 않은 채 너는 수술실 안으로 들어간다.


죽음을 생각했다. 네 죽음을 생각했다.


"죽을래?"


항상 너는 내가 짓궂게 놀릴 때마다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오늘도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나야. 그리고 너는 나를 죽이기는커녕 늘 나를 때렸지. 그리고 나는 말하는 거야. 


"너도 맞아볼래?"


그때 너는 내게 뭐라고 그랬더라. 그래, 그때 너는 말했어.


"죽을래-라고 하는 거보다, 맞을래-라고 하는 게 더 폭력적으로 들리지 않아?"  


"맞을래-라고 하는 거보다 실제로 이렇게 너처럼 나를 때리는 게 더 폭력적으로 보이진 않고?"


"진짜 죽을래? 자 들어봐. '맞을래?'라고 하는 건 실제로 그 사람이 폭력을 휘두를 가능성이 더 높다는 차원에서 더 현실적으로 들린다는 말이야. 반면에 '죽을래?'라고 하는 건 실제로 내가 너를 죽일 일도 없고 훨씬 비현실적이잖아."


"아닌 거 같은데? 일단 네가 나를 죽인다는 것도 사실 꽤 그럴듯한 일이거니와, 때리는 거와 죽이는 거는 독립적인 게 아냐. 막말로 네가 나 이렇게 패다가 나 정말로 죽을 수도 있을 거 같단 말야."


"니가 그렇게 깐죽거리는 게 네 죽음을 부른다고 생각하진 않고?"


그러며 너는 다시 또다시 네 팔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네 팔을 잡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나는 네가 충분히 죽을 수 있다는 걸 상상할 수 있는걸. 사람은 말야. 누구나 죽어. 니가 지금 저기서 달려오는 차에 치일 때, 내가 대신해서 너를 밀치고 차에 치어서 죽는다고 해도, 너는 언젠가는 죽어. 병에 걸려서 죽을 수도 있고, 병에 걸려서 수술한다고 해도 수술대 위에서 죽을 수도 있어. 사람의 죽음은 어떻게 해서든 유보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피할 수는 없어. 어떻게든 죽는 거야. 죽는 거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거지."


"...야. 너 왜 이렇게 심각해?"


"그런데 말야, 네가 나한테 맞는 건 어떻게 해도 상상이 안돼. 그런 일은 이 세상에 있을 수가 없어. 내 손으로 너를? 니가 나한테 하는 것처럼 무지막지하고 잔인하게?" 


내가 다시 웃으면서 말하자 너는 다시 나를 한대 쥐어박으려고 달려왔다. 우리는 나무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나무를 사이에 두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니가 어디서 다치거나 맞는 것도 상상이 안 돼.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 죽음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죽음은 유보할 수 있고, 누가 너를 때린다고 하면, 나는 최소한 대신해서 맞아줄 수 있을 거야."


"그래, 너 싸움 못하잖아. 아주 잘 알지."


"그래. 아무튼 말야. 그래서 나는 네가 죽는 거보다, 맞는 게 더 비현실 적이야."


나무를 잡고 왔다 갔다. 흔들리는 가지에 나뭇잎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우리는 둘 다 지쳐버렸고, 너는 헉헉거리면서 내게 물었다." 


"확실해? 내가 죽는 거보다 맞는 게 더 비현실적이야?"


"응."


나는 대답했다.


"정말로 상상조차 불가능해?"


"그럼. 그렇다니까."


그때 너는 정말로 너무나 밝게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그러면, 이리 와. 딱밤맞기 게임하자. 가위바위보 진 사람이 맞는 거야."


그리고 우리는 그날 스무 번 정도의 가위바위보를 했고, 우리는 비등했지만, 맞기만 한건 나였었다. 


하지만 그날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던 날에는, 사실 나도 네게 딱밤 한대 정도는 때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던 거야. 그리고 정말로 언제나 누구에게나 확실한 그 죽음이, 언제라도 어떻게든 죽을 수 있는 그 죽음이, 정말로 목전 앞으로 다가왔을 때, 그때에는 그날의 나의 확신은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우수수 무너져버리는 거야. 누구에게나 확실한 그 죽음은, 그러나 그만큼 가장 극단적인 가능성이었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닥칠 줄 모르는 그 죽음을 오늘은 아닐 거라며 호언장담하지만, 사실은 상상하기 싫었던 거야.


희망하고 기대하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희망조차 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으려고 했던 날들을 너는 기억하고 있니. 나는 알고 있어. 죽음을 각오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살아나지 못하는건 아닐까 지레 겁먹고 포기하려는 그런 마음. 그런데, 네 삶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돼. 


나는 마음을 다잡으려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피웠다. 앰뷸런스가 오고 가고, 장례식장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앰뷸런스의 사람들은 절박하고, 장례식의 사람들은 침착하다. 할 수 있는 순간에는 모든 것을 다 하기 위해서 바삐 움직이고, 모든 것이 끝난 뒤에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때에 내가 하는 일은, 죽음을 상상하는 것도 아니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죽음을 감내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하는 그런 것. 수술실에 들어가는 의사의 실력을 검색하고, 병의 증상과 예후를 찾아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겪었던 일들을 추적하고 물어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완치되었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는지. 나는 절박하게. 그리고 또 처절하게 죽음을 상상하지 않기 위해서, 아직 모든 것이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 믿으며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해야만 하는 거야.


그러나 또 한편으로 앰뷸런스 안에서도 침착한 사람이 있고, 장례식장 안에서도 통곡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닥쳐 올지 모르는 미래의 불안 앞에서 침묵하다, 마침내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제야 참아왔던 불안이 공포와 슬픔으로 뒤바뀌어 받아들여야 할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는 세상이라며 차라리 속 시원하게 울었다. 모두들 각자의 불안과 현실적 절박함 들을 서로의 방식으로 나누어가지고 있는 것이다. 


"맞는 것도 못 보는 사람이, 죽는 건 어떻게 보겠어. 바보야."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 너는 내게 그렇게 말했던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있어야만 하는 걸까. 내 마음은 어떻게 해서든 안정을 찾으려 애를 쓰고 있고 있지만, 그런 나는 모든 것이 끝난 뒤에 울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런 뒤에도 나는 울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무얼 해야 하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기도. 모든 것들을 하고 난 뒤에도 여남은 마음을 메어줄 수 있는 것은 하나의 기도. 기도를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하는 그런 것.


나는 수술실 앞에서. 너를 기다린다.






그리고,






"맹장 수술가지고 졸라 오버하네"



눈을 뜨고서 네가 내게 하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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