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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Oct 11. 2019

너의 계획과, 나의 약속과, 코카서스

집에 들어왔다. 내가 먼저 하는 일은 신발을 벗고 옷을 옷걸이에 거는 일. 꽤 오랫동안 공 들여보던 습관이다. 이것은 아직도 잘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하고 나면 기분은 좋다. 그러지 않으면 집이 어질러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양말을 뒤집어 벗는 것은 여전하다. 아무리 해도 그것은 못하겠다. 우스운 일이다. 운동장 한 바퀴를 도는 것보다 쉬운 일인데, 우선 간신히 옷을 걸고 나면 그냥 양말은 뒤집어 벗어 버린 뒤에 그대로 세탁기 안에 넣어 버리는 것이다. 후회는 아마도 빨래를 널 때쯤에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때의 내가 해결하면 될 일이다.


한 잔 더 하고 가자는 친구의 말을 만류하고, 나는 일찍 집에 들어왔다.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내가 일찍 들어온 이유는 내일 출장을 가기 때문이다. 첫 출장이다. 항상 부장과 함께 나가던 선임의 부재로 내가 대신 가게 되었다. 러시아다. 그러나 나는 일찍 들어온 이유가 무색하게 나는 그냥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켠다. 귀에 들어오지 않는 뉴스. 그러나 나의 시선은 그를 그저 좇고 있다. 한 여름에 땀에 젖은 러닝셔츠가 에어컨 바람을 맞고 서늘해진다. 씻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하고 싶지 않다. 땀이 마저 말라 버린 뒤에는, 이 씻어야 한다는 욕구조차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나는 내가 살아있는지를 느끼고 싶어서, 검지와 중지를 하나씩 움직여 본다. 패브릭 원단의 소파의 재질을 손 끝으로 느낄 수 있었다. 손바닥을 들어서 천장을 향해 펼친다. 쥐었다 펴본다. 그러나 그러한 내가 통제해내는 그 손가락의 미세한 운동으로부터 내 몸 전체를 내가 움직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도통 연결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내 몸 전체는 굳어 있고, 그로부터 삐져나온 손가락 하나만이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전부인 것처럼.


산다는 것은 끔찍한 것이다. 이 손가락 하나만을 겨우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저녁에는 더욱 그렇다. 내가 도통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하릴없이 틀어 놓은 티브이의 뉴스를 보기 위해 눈알을 굴리는 것부터, 그리고 그 안에서 복잡하게 떠드는 지속되는 국가 간 무역 분쟁을 이해하는 것까지. 그 내용이 듣기 싫어 채널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나는 생각 없이 던져버려 이미 손이 닿지 않는 저 리모컨을 집어 들기 위해 일어나야만 한다. 세상이 전체로 나를 누르고 있는 것이다. 설령 내가 생각만으로 이 모든 것들을 내 맘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해도, 나는 아마 생각조차 하기 싫어 그 무엇도 하지 않을 것만 같다.


이 지독한 무기력증은, 이 세상으로부터 나를 유리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나를 이 주변의 사물과 하나인 것처럼 동화시킨다. 나는 통나무처럼 누워있고, 지금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쳐다볼 수 있는 천장에 붙어 있는 형광등의 미세한 깜박임을 관찰해내는 것뿐인듯하다.


그 누구도 나를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가장 밀접한, 나에게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 있는, 모든 통수권자인 자 자신이 스스로를 그렇게 하도록 하지 않으니까. - 나는 피곤에 지쳐서 그렇게 선언하려다, 갑작스러운 핸드폰 벨소리에 벌떡 일어난다.


"김대리. 내일 아침 아홉 시 비행기니까, 늦어도 일곱 시 반에는 공항에서 만나는 걸로 하자고." 


부장의 전화였다.


"네 알겠습니다. 네. 늦지 않게 가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네 편안한 밤 되십시오" 


나는 보는 사람 없이 낯 부끄러워 호들갑으로 그리 대답한다. 그 무엇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순식간에 무색해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으면서 여태껏 누워있던 그런 나는 또 얼마나 수동적인 인간이란 말인가. 이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져서는, 나는 나를 되찾기 위해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간다. 


부장은 계획이 있는 인간이다. 그래서 그는 하루 전 날에도 내게 약속을 받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계획을 짜는 인간과 계획을 짜지 않는 인간이다. 계획을 짜는 인간은 약속을 받아내고, 계획을 짜지 않는 인간은 약속을 한다. 약속은 늘 변칙적인 인간들을 고정시켜 놓는 하나의 틀이다. 그는 러시아에서 따내야 할 사업이 있었고, 그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그것이 틀어지지 않게 나를 확인한다. 나는 그 계획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기꺼이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답만으로도 부장은 내가 그러리라는 것을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물론이다. 그는 모른다. 나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움직이지만, 부장은 만약 내가 움직이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 나를 비난하고 내쫓아내기 위해서 약속을 받아낸 것이기도 하다. 약속은 수행하기 위해서 채결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내쫓을 빌미를 위해서 마련되기도 한다. 회사의 매뉴얼은 계획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계획에 차질이 생겼을 때에 벌어지는 책임 소재와 그 책임의 내용에 대한 것들도 충분히 마련하고 있다.


나는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린다. 먼지 쌓인 캐리어를 꺼내는 이유는, 부장의 계획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직접적으로는 내가 해버린 약속 때문이다. 사람은 종종 자기 자신 때문이 아니라, 타인에게 해 버린 약속 때문에 움직인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내가 그 짓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그렇게 살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해버린 연봉 '협상' 때문이다. 그 협상 내용에는 위약에 대한 위협이 어떻게든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나쁜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약속을 위해서, 내가 참여해야 할 계획에 편승하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도전해 왔는가. 사실 나는 이에 대해서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을 해 왔던 적이 있었다. 타인의 계획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편안하고 좋은 일이다. 적어도 나를 씻게 해 준다. 그리고 내게 그 약속을 이행할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한 약속 내에서 나만의 계획을 짠다. 


캐리어에 옷들을 개어 넣는다. 한국은 한 여름. 러시아는 여기보다는 훨씬 추울 것이다. 두꺼운 겨울 옷들을 챙겨 넣는다. 두꺼운 옷은 넓게 접어서 얇게 까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작은 것들을 크기 순으로 차례로 넣는다. 그리고 양말과 세면도구 같은 것들은 남은 자리에 사이사이에 끼워 넣으면 된다. 신기한 일이다. 예전에는 하지 못했다. 구겨 넣으면 들어가지 않는 것들이, 차곡차곡 개어 넣고 또 그 넣는 순서를 달리하게 되면 이것들은 놀랍게도 제 자리를 잡는다. 균형과 절제, 그리고 계획과 절차. 마침내 캐리어를 닫았을 때 힘들이지 않게 닫을 수 있을 정도, 그리고 옮겨지고 던져져도 내용물이 흔들리는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다.


여권을 챙기고, 여권 사본도 혹시 몰라 챙겨둔다. 공항까지 가는 시간은 두 시간. 나는 비행기가 출발하기 네 시간 전에 출발한다. 타고 갈 리무진 버스의 시간은 미리 봐 두었고, 혹시 몰라 지하철 시간도 봐 둔다. 그리고 천천히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를 돌아본다. 여유를 가지고 생각한다. 그래 이 정도면 되었다.








나는 준비하고 계획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들은 닥치면 하는 것이고,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계획은 조밀하게 짜는 것보다 여유롭게 짜는 것이 낫다. 여유롭게 짜면, 놓치는 것이 있어도 커버할 수 있다. 일정이 느슨하면, 그 사이에 다른 것들을 할 수 있으니까. 


그때의 내 자취방은 그랬다. 술병은 쌓여 있었고, 재떨이에 담배는 아주 조밀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꽉 들어 차 있었다. 그것은 쓰레기라기 보다도 하나의 조형물에 가까웠다.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설거지를 했다. 편안한 방식을 고안하기 위해서 최대한의 불편을 기꺼이 감수했다. 나의 방은 하나의 여관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불시에 들어와 술을 마시고 또 훌쩍 떠나갔다. 내가 방을 정리하는 방식은, 그 숙객들에게 쓰레기 하나씩을 쥐어주고 어깨를 두 번 정도 투닥거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그렇게 술병을 들고 체크인을 했고, 쓰레기를 가지고 체크아웃을 했다. 


그랬던 여인숙에 종량제 봉투가 들어서고, 거대한 분리수거 봉투가 그 옆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은, 아마도 너를 만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그게 내게 있어 극적인 변화였다 거나, 너의 존재가 마치 나를 야수에서 인간으로 만들었던 그런 마법적이고 낭만적인 변화였던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조련에 가까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벗는 게 늘 더 나았다고 생각했던 커다랗고 동그란 안경. 그러나 너는 렌즈를 끼면 눈이 뻑뻑하고 비효율적이라며 안경을 고집했다. 그것은 너의 얼굴을 가렸지만, 너는 그를 통해서 분명하고 똑똑하게, 그리고 섬세하고 자세하게 세상을 보았다. 분명하고도 자세하게. 그리고 본 것을 그대로. 그것이 너의 철학이었을 것이다. 내가 처음 네게 우발적이고도 저돌적으로 고백했을 때, 아마 그때가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네가 당황한 것을 목격하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때 눈을 떨구고, 안경을 매만지더니 천천히 생각했다. 그리고 의외로 순순하게 승낙했다. 나는 무턱대고였지만, 너는 무턱대고였던 나를 고려해서 미래를 내다보았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너의 계획을 따라가고 싶어 졌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는지를 아는 방법은, 친구들에게 아무리 보여줘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던 것들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21세기 히피라고 말하면서 자랑스럽게 보여주던 풍경들을, 절대로 네게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끝끝내 감추려다가 들켜버리고 말았을 때, 머쓱한 표정으로 웃어넘기려 했지만, 왜 그리 당황스러웠는지. 그러나 너는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는 관심조차 없었고, 서둘러 개조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는, 버리는 것이었다. 쌓여 있던 술병이며 담배꽁초는 물론이고, 재떨이도 버리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입지 않는 옷, 그리고 또 네가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옷을 모두 다 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옷가지를 개는 법을 알려주고 또 널브러진 셔츠들을 옷걸이에 걸었다. 내가 설거지를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보더니, 수세미질부터 하고 한 번에 행구라고 땍땍거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얼마나 환경 파괴가 일어나는지를 설교하고, 당장 방향제라도 사다 놓으라고 닦달했다.


그게 싫지 않았다.


"못하는 건 하라고 안 해. 술 마시지 말라고 해도 너는 마실 거잖아." 


그렇게 말하던 너는, 내 주머니에 밀크시슬은 꼭 챙겨 먹으라며 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너는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나까지도 포함한 계산 안에서 말이다. 그 안에서 내가 느낀 사랑이라는 것은, 너의 계획 안에 늘 나는 하나의 변수로 남아 있었음에도 너는 늘 나를 상수로 취급해줬다는 것 때문이었다. 늘 나를 먼저 고려한 후에 계획을 짰다. 양말은 뒤집어 벗어 놓으면 안 되지만, 술은 괜찮다. 술은 괜찮지만 밀크시슬은 먹어야 한다. 담배는 어쩔 수 없지만, 재떨이는 버려라. 재떨이는 버리지만 나가서 피워라. 어떤 것은 갑갑했고 또 어떤 것은 버거웠지만, 그 사이에 네가 마련해놓은 공간들은 어쩐지 합리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며, 그를 네가 스스로 마련해 주었다는 사실에 더더욱. 


누군가는 계획을 하고, 또 누군가는 약속한다. 나는 너의 계획을 따라가기 위해 많은 것들을 약속해야 했다. 앞으로 술은 마시되 꼬박꼬박 밀크시슬을 챙겨 먹겠다고. 그리고 또 마시면서도 네게 족족 연락하겠다고. 쓰레기는 분리수거해서 버리겠다고. 옷은 돌아온 후에 꼭 제 자리에 걸겠다고. 담배는 나가서만 피우겠다고. 내가 나의 약속을 지켜낼수록 여관은 호텔이 되었고, 그것도 금연 호텔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발길을 끊었던 것은 흡연이 금지되어서가 아니라, 매일 방문하다 또 장기로 투숙하는 사람이 생겨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호텔은 더 이상 호텔이 아니게 되었고, 그냥 '집'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하기로 했던 기차여행. 그 하루 전 날. 너는 내 방에 들이닥쳐 내 가방검사를 했다. 그때 너는 내게 짐 싸는 법을 강의했다.


"두꺼운 옷들은 제일 아래서부터, 그리고 작은 것들은 그 위에 놓는 것이 좋아. 그러나 잠깐. 이것은 캐리어를 쌀 때야. 배낭을 쌀 때에는 무거운 것을 위에 올려놓는 것이 좋아. 그래야 무게 중심 때문에 매고 다니는 사람의 피로를 덜 해주거든."


하루에 대강 십만 원 꼴로 쓰면 되지 않아? -라고 무책임하게 말했던 나를 면박했던 네게 나는 뾰로통해 있었고, 그래도 너는 별 상관하지 않고 네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내가 먼저 화를 풀고 네게 애교를 부렸던 이유는, 내가 네 긴 인생행로에 불쑥 솟아난 처치 곤란의 나무 한그루처럼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밤. 너는 내게 말했다. 언젠가 코카서스에 가보고 싶다고. 프로메테우스가 갇혀 있었던 코카서스. 너는 네 앞에 모든 미래가 그대로 펼쳐져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알고 그것에 하나씩 대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불안해서 그래. 모든 것을 알았으면 좋겠거든. 그래야 대비를 할 수 있으니까." 


나는 물었다.


"그러면 뭐 해? 결국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 위한답시고 불을 내려서는 바로 그 코카서스에 갇혀서 평생 고통스러워했잖아." 


"알고 선택한 걸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알고, 계획한 뒤에 그 결과조차도 알고 한 것이라면, 괜찮아. 내가 싫은 것은 고통이 아니라, 내가 예측하지 못한 결과야. 아무리 계획해도 내일의 날씨는 알 수 없어." 


"왜, 너 매일 일기예보 보잖아. 일기예보 생각보다 꽤 정확하대. 사람들이 재수 없는 날만 기억하니까 그렇지." 


"그래. 일기예보는 정확해. 그런데 너 일기예보가 정확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강수 확률이 70퍼센트라는 말을 일기예보는 실제로 맞춰. 강수확률이 70퍼센트라고 예측한 날 1000일을 추려보면 실제로 700일 정도는 비가 왔고 300일 정도는 비가 오지 않았거든. 그리고 그 말은, 언제라도 그 300일 안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야." 


나는 소나기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에 도박을 하는 사람이었고, 너는 우산을 챙겨 나가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도 알 수 없어. 사람들은 늘 약속을 어겨. 그럴 바에는 혼자서 다 하는 게 늘 편했어. 조별과제 같은 것들도. 부탁하는 것보다 몸소 하는 게 낫고, 불확실한 분담보다는 확실한 고생이 나아."


나는 그렇게 말하는 네가, 차라리 귀찮은 것을 도맡아 하는 네가, 오히려 더 프로메테우스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도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가 그렇게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진다며 스스로 코카서스에 갇혀 버렸을 때, 그리고 자신의 간을 독수리에게 쪼아 먹혔을 때, 그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기분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에피메테우스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불을 내렸고, 그 때문에 벌을 받았다. 그때 남겨진 에피메테우스는 행복했을까. 그럴 리 없을 것이다. 


"언젠가 같이 가자. 코카서스. 어디에 있는데?" 


나는 또 순진하게 그렇게 말했던가.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약속과 계획으로도 어쩌지 못했던 날씨와 마음의 기상이변 같은 것들. 함께 손 잡고 오르던 기차여행. 가고자 했던 전주의 유명했던 비빔밥 집은 갑작스레 문을 닫았고, 그로 인해 어디서라도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골목 깊숙한 곳의 김치찌개 집은 계란말이가 맛있었다. 우리는 계란말이가 맛있는 집이라고 인터넷에 평을 적어 올렸고, 함께 웃었다. 일기예보도 예측하지 못했던 태풍의 경로는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강타했고, 태화강 역에서 멈춰 선 우리는 계란말이를 떠올리며 고래고기에 도전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는 먹지 말자는 약속을 했고, 또 우리는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것을 계획 없이도 확신했다.


약속과 계획으로도 통제할 수 없었던 행운과 불행 같은 것들. 나는 약속 없이도 너를 만났고, 너는 계획 없이도 나를 받아들였다. 우리는 약속과 계획을 넘어서서 만난 뒤에, 나는 약속을 했고 너는 계획을 했다. 울고 웃다가, 짜증내고 지쳐가고, 또 지쳐서 짜증 내는 일들이 반복됐다.


너는 처음 그 날처럼 내게 말했다. 


"하지 마. 못하는 건 하라고 안 해." 


나는 우물쭈물거리고 있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너는 뒤돌아서더니 유유히 사라졌다. 


그때 그 우물쭈물을 탓해도 보았고 후회도 해 보았지만, 돌이켜 생각해봐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그때 내가 너를 붙잡을 수 있는 기력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냥 천천히 너의 계획에서 물러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수동적인 종말. 그것이 내가 버리지 못한 나의 게으름이자 비겁성이다. 그러한 비겁성은 아마도 네가 걱정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너는 괜찮을 거야. 내가 너의 인생에 우발적으로 끼어들었듯, 오늘의 일들은 네게 있어 기상이변과 같은 그런 것이겠지만, 너는 다시 오늘을 기점으로 계획을 세울 것을 알아. 그래서 너는 괜찮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이유는, 지쳐버린 나를 네가 메몰 차게 떠난 것이 차라리 미워서였을 것이다. 너는 여기 남겨진 내가 가엽지도 않으냐 -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가.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다. 그랬다. 사실은 퍼마셔대다가도 먹기를 잊어버린 밀크시슬. 숙제하듯 하루에 두 알을 먹기도 했다. 되는대로 하던 설거지. 나는 네게 했던 약속을 백 퍼센트 충족시킬 수 없는 인간이었다. 이미 저 세탁기에 넣어버린 뒤집어진 양말처럼.


에피메테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약속했다. 모든 사람과 동물들에게 특별한 재능을 공평하게 분배하겠다고. 그러나 그는 형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프로메테우스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인간들을 위해서 불을 내렸다. 그리고 그는 코카서스에 갇혔고, 에피메테우스는 남겨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야 이 모든 것들이 형의 계획 하에 있었음을 알았다. 그때 그가 느껴야 할 것은 죄책감이었을까, 모욕감이었을까. 


그리고, 사실은 말하고 싶었다. 나는 사실 나를 너무 몰아세우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 나는 언젠가 너의 계획 안에 포함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문제는 과잉 실천 인지도 몰랐다. 형과 약속을 하기로 했던 에피메테우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게 아니라, 그 약속을 과하게 지켜버렸다. 그래서 신나게 나누어주다 인간들에게 줄 것을 깜박 잊었던 것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에피메테우스가 알게 된 것은, 일들을 공평하게 배분하는 능력이었고, 나는 캐리어에 짐들을 체계적으로 쓸어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너는 계획대로 저 먼 어느 곳에서 네 삶을 위해서 나아가고 있을 것이었다. 나도 이제는 나의 삶을 쥐고, 나 삶을 위해서 계획해야만 하겠다고. 그때 그 순간에 그리 다짐했었다. 그리고 어느덧 나는 더 이상 너에게 핀잔을 듣지 않을 정도로 삶을 살아내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을 거쳐야만 할 것이라고. 그러려면 여기서 우리의 관계는 멀어져야만 할 것이라고. 그리고 어느새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게 될 것이고 달라질 것이다. 어제의 나는 분명히 오늘의 나와는 다르니까.


그래서 어쩌면 이제 나는 정말로 혼자서, 천천히... 









"김대리 지금 남극 가? 뭔데 패딩까지 챙겼어? 러시아도 여름에는 그렇게 안 추워. 이 사람아 코카서스? 러시아가 무슨 지하철로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인 줄 알아? 제발 정신 좀 똑바로 차려." 




아직은 아닐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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