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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Sep 30. 2020

별똥별을 보고, 지구 멸망을 막자

“어?!”


“왜, 무슨 일이야. 뭐라도 튀어나왔어?”


“야. 겁먹지 좀 마. 여기서 뭐가 튀어나와봤자 기껏해야 고라니겠지.”


“너 고라니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구나. 고라니가 울면 얼마나 섬뜩한지 알아?”


“그건 내가 모르겠고, 나 별똥별 봤어.”


“유성? 잘 못 본거 아냐? 나는 못 봤는데.”


“네가 못 봤다고 내가 본 게 없는 게 되는 건 아니지.”


“흠... 아깝다.”


“야, 근데, 별똥별은 왜 위에서 아래로만 떨어지는 거야?”


“뭔 소리야. 별똥별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만 떨어지지. 그러니까 ‘유성우’라고 하는 거 아니겠어.”


“아니, 유성도 그냥 우주를 떠도는 거면, 아래에서 위로 솟을 수도 있는 거 아냐? 혜성처럼”


“다르지 바보야. 유성이 유성으로 보인다는 건, 돌덩어리가 이미 지구 대기권 안으로 들어왔다는 건데.”


“아 그래? 그러면 지구 안으로 들어오면 저건 어디로 가는 거야?”


“다 타서 없어지는 거지. 엄청 빠르게 떨어지니까, 대기랑 마찰하면서 다 타버리는 거야. 그 열 때문에 빛이 나는 거지.”


“헉. 그럼 엄청 슬픈 거네. 떨어지는 유성은 다 죽어가는 거잖아.”


“글쎄, 멀쩡히 살아서 땅까지 도착하면 별로 재미없을걸. 그러면 운석이 되는 거잖아. 재수 없으면 맞아서 죽는 거야. 아니면 모두 다 한꺼번에 멸종해 버리던가.”


“그래? 그러면 유성을 보고서 소원을 비는 건 죽어가는 걸 보고서 기리는 거였구나.”


“뭐 그렇다고 하든가. 그래서 소원은 빌었어?”


“아 맞다. 깜박했어. 잠깐만...”


“소용없어. 너는 이미 늦어버린 거야.”


“왜, 조금 늦었다고 너무 치사한 거 아냐? 나는 이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너 괜히 나 혼자 봤다고 샘내는구나?”


“아냐. 바보야. 유성이 다 타서 사라지기 전에 빌지 않으면 소용없어.”


“유성이고, 대기권이고, 마찰이고, 운석이고, 멸종이고 운운하던 사람이, 소원에 대해서도 뭘 좀 아시나 봐요?”


“당연하지. 생각해 봐. 유성을 보고 소원을 비는 것은 아무런 소용도 없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천체를 보고 기도하는 걸로 네 말도 안 되는 소원이 이뤄질 리가 있겠어? 그것도 이미 다 타서 사라지고 난 뒤에 말이야.”


“죽을래? 말도 안 되는 소원인지는 네가 어떻게 아는데?”


“자 들어봐. 너는 비록 이 근방에서는 마치 저 유성을 너 혼자 본 걸로 착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 어디서 누군가는 이미 저 유성을 보고 소원을 빈 거야. 그리고 유성이 사라지는 이유는, 그 최초에 소원을 빈 사람 때문인 거지. 그래서 유성이 사라진 뒤에 비는 건, 이미 누가 긁어버린 복권을 줍는 것이나 다름없는 거야.”


“긁어버린 복권이어도 당첨된 걸 수도 있잖아. 그럼 내가 주워서 쓰면 되는 거지.”


“그래, 복권은 적절하지 않은 비유 같다. 아무튼, 바보야 생각해봐. 유성이 소원을 어떻게 들어주겠어.”


“바보라고 그만해. 너야말로 유성이 소원을 들어주고 나서 사라진다고 해놓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건데.”


“자, 유성이 떨어질 때 우리가 소원을 비는 이유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야.”


“그게 무슨 말이야.”


“자, 과학적으로 생각해 봐. 아까 유성이 땅에 닿을 때까지 다 타지 않으면, 운석이 된다고 했잖아.”


“갑자기 또 무슨 과학 타령이야.”


“당연하지, 유성이 어떻게 소원을 이뤄주겠어. 다만, 그게 땅에 떨어져 지구가 멸망하면 안 되니까, 우리는 소원을 빌어서 유성을 태워버리는 거야. 우리는 꿈을 위해서 소원을 빌고, 멸망하지 않도록 지구를 지키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유성이 떨어지고 또 사라지는 건, 지구 어디에선가 누가 소원을 빌었기 때문이라는 거야?”


“그렇지.”


“그것 참 정말 과학적이구나. 멍청아.”


“야, 지금 내 말 안 믿는 거야? 너 공룡이 왜 멸망했는지 알잖아.”


“운석 때문에?”


“그렇지. 그런데 그냥 운석 때문은 아니고, 공룡은 소원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그랬던 거야.”


“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정성스럽게 하고 있네?”


“정말이야! 공룡은 자고 일어나서 하루 종일 먹고 마시고 싸는 것밖에 하지 못하잖아. 공룡이 멸망한 건 소원을 비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고, 유성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지 못해서 그런 거야.”


“그러면 정말 하늘에서 막 유성우가 엄청 떨어지는 날에는, 사람들이 그 유성우만큼 소원을 빌고 있다는 거야?”


“당연하지. 이 지구에는 정말로 소원이 너무너무 많거든. 지금 너만 해도 누가 낚아채간 소원 때문에 소원을 빌 찬스를 놓쳐 버린 거지.”


“좋아.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만약 가장 먼저 유성을 발견한 누군가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게 해 주세요>라고 빌면 어떻게 할 건데?”


“그건, 애당초에 성립하지 않지. 유성은 소원을 이뤄주는 게 아니라, 이룰 수 있도록 사라져 주는 거니까 말야.”


“음... 그건 그렇지.”


“사실 그래서 지구를 멸망하게 해 달라는 건 원래 말도 안 되는 소원이야. 적어도 유성 앞에서는 말이지. 역설적으로 그 사람은 지구 멸망의 찬스를 제 스스로 없애버린 거니까 말야.”


“하지만 그 사람이 그 소원을 빌지 않아도, 누군가 대신 소원을 빌어서 유성을 태워버렸을 거야.”


“그래 그런 점에서 내일 지구가 멸망하게 해주세요-는 소원도 무엇도 아닌 거지.”


“오. 조금 멋진 말 같은데?”


“당연하지. 그런데 아쉽게 됐네, <내일 지구가 멸망하게 해주세요>라고 소원을 빈 어떤 멍청이 때문에 기회를 놓쳐서 말야.”


“그래도 상관없어. 어차피 멸망을 모면한 내일, 내가 직접 그 소원을 이루면 되니까 말이야.”


“... 그럼, 만약 네가 빌었다면 너는 어떤 소원을 빌었을 건데?”


“음. 그건 비밀이야.”


“야. 까불지 말고 말해봐. 너 또 그 사람 생각했지?”


“....”


“맞구나? 그 교회에서 만난 오빠라는 인간.”


“그래! <내일 꼭 교회에서 그 오빠랑 마주치게 해 주세요>라고 빌려고 했다 왜!”


“참나. 그냥 허여멀건 해서 물에다 물 탄 그런 인간이 뭐가 좋다고, 안 믿는 교회까지 나가고 말야.”


"네가 뭘 안다고 그래!”


“... 그래, 내가 뭘 알겠냐."


“그럼, 넌 뭐라고 빌었을 건데?”


“나는 이런 미신 같은 거 안 믿거든?”


“야 지금까지 네 헛소리들 다 받아줬구만, 이제 와서 뭔 소리를 하는겨.”


“내 소원은, 멸망을 모면한 내일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너는 몰라도 돼.”


“그래라...! 나도 하나도 안 궁금하다!”








그렇게 저만치 먼저 앞서가던 너는, 어두운 밤 오솔길 앞으로 겁도 없이. 성큼성큼. 내 마음도 모르고 성큼성큼. 그 뒤를 따르는 나는 자박자박.


풀냄새와 밤꽃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 위 시커먼 배경을 뒤로하고 쏟아질 듯하던 별빛, 청량한 하늘. 너는 몰랐지만, 나도 저 하늘 위에서 뒤이어 떨어지던 별똥별 하나를 봤다.



'절대로 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게 해 주세요.'



그리 빌었고,


나는 지구의 멸망을 막았다.


정말로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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