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

아르쥬 한화 현장

by Massoud Jun



크리스마스이브 때, 임직원들 자리에 초대되었다.

직영 소장도 협력업체 사장도 없이 모두 삼성 직원들이었다. 나는 4 개월 간의 업무를 마치고 26일에 휴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아침 별 보고 저녁 별 보는 업무에 지쳐 있었고 휴가를 떠나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박 과장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들의 친절하고 자상한 요청은 계속되었다. 대부분의 삼성 맨들이 이렇게 협력적이고 친절한 것이 놀라웠다.


삼성도 삼성 나름이구나...... 그러나, 웬일인지 나는 모두 거절했다.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나는 그 현장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이스마를 만났다.


"떠날 때가 된 것 같아."


태양이 작렬하는 오전의 햇빛은 그늘 속에서 시원했고 북아프리카라 하더라도 그다지 더운 건 느껴지지 않았다. 햇빛을 받은 땅이 눈부시게 빛났다. 그늘 속에서도 밖의 햇빛을 바라보는 건 눈부셨음에도 그다지 덥지 않다는 게 이미 이 생활에 익숙하다는 증거였다.

감색 원피스를 입고 꽃 잎이 수놓아진 히잡을 쓴 그녀가 눈 앞에서 아름답게 빛났다.


"휴가 가는 거 아냐?"

"아냐. 이스마"


나는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할까 하다가 목구멍까지 넘어온 말을 집어삼켰다.


"그럼, 아주 가는 거야?"

"그럴 생각이야. 할 말이 있어"


이스마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옷 때문인지 살이 빠진 모습이었다. 푸짐한 글래머 스타일을 좋아했지만 사랑에 꽂히면 사람만 좋아 보이기 마련이었다. 딱히 선호하는 스타일이 없음에도 그녀의 큰 키와 푸짐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게 그녀에게 이미 빠져 있음을 의미하는 듯,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해야만 했다. 목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뭔데?"

"...... 내 아이의 엄마가 되어 주길 바래!"

"......"


그녀가 잠시 생각하더니 얼굴이 붉어지고 안절부절못한 듯,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곤 드디어 그녀가 말을 꺼냈다.


"아빠께 마쑤드가 가서 물어봐야 해. 그리고 나도 생각해 볼게. 시간을 줘."



아이들에게선 알제리 인의 특성이 구별되지 않았다. 동서고원고속도로 지질조사 프로젝트 때, 바트나로 향하는 길목에서 머물렀던 호텔 겸 주요소이자 레스토랑. 직원들은 프로였다.


4개월 만이었지만 몇 년이 흐른 것 같았다. 떠나는 날, 관리부는 공항으로 가는 차를 내어주지 않았다. 비행 편을 놓치면 어쩔 수 없이 다시 남게 하려는 전략이었던 거 같다. 아주 늦게 도착한 공항엔 아직 비행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아르쥬(Arzew)


몇 개월이 흘러 알제리의 조그만 한화 현장이 있는 아르쥬로 이동했다.

이번엔 전기회사 통역이었다. 한국 회사 월급쟁이 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 급여에 관심이 없었다. 작은 빚에 몰려 있었음에도 재정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얼마 받는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본 적이 없어 정보가 없을 때여서 통장에 찍히는 급여에 무심했다. 기본 500만 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수당이 붙었지만 월급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새로 옮긴 전기회사는 딱 기본급만 나왔기에 나도 기본적인 업무만 진행했다. 동료들은 좋았고 일상은 무료했으며 성취감은 없었다.


아르쥬의 한화 현장은 죽어 있는 것 같았다. 성취감도 없이 무료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좋았다. 4개월 근무를 하고 휴가를 다녀온 며칠 후, 존경하던 소장과 사소한 말다툼 끝에 나는 아르쥬 현장을 떠났다. 단순한 문제였지만 소장의 문제가 아닌 '삼영 기업'이라는 회사의 문제였다. 처음으로 양아치 한국 회사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아르쥬 현장



어느 날 삼성의 공무 팀의 소 은경 과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살라가 다시 현장에 나타나 한국인들을 못살게 군다고 했다. 손님을 왕으로 모시는 한국 기업의 특성상, 그들의 이름으로 발주처의 안전 매니저를 상대하기란 벅찬 일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고졸 출신에 나를 정식 채용한다는 소문은 삼성의 힘을 모르고 하는 소리일 뿐, 아쉬울 게 없는 그들이 쟁쟁한 박사급들을 두고 나를 채용할 리 만무했다. 그러나, 어디에서든 기죽을 내가 아니었다. 박사는 박사의 일을 할 뿐이었다.


스킥다 현장 개선점을 요약해 삼성 피엠과 소장에게 보냈다. 그들의 친절함에 대한 나의 답변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 그 개선점은 현장에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관리부장에게 아르쥬 프로젝트는 성취감이 없으니 아직 내 자리가 있다면 돌아갈 의향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채용 얘기는 사라졌고 관리부장은 삼엔의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 알제리를 이번엔 현대 엔지니어링 소속으로 1년 만에 돌아온 것이었다.

이스마는 알제리로 돌아오면 답변을 주겠다고 했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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