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테크
용 부장과 나는 지질조사 업체를 찾아 운전기사와 함께 시내를 나섰다. 시내 부유한 거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공항 근처의 지질 업체 지오 테크까지는 멀지 않았지만 엄청난 교통 정체를 겪었다. 공항에 다다르기 전에 오른쪽으로 보이는 소넬가즈 건물에서부터 본격적인 정체가 시작되었다. 멀리 보이는 공항까지 길게 늘어선 차량이 빠진다 해도, 공항에서부터 목적지까지는 포장되지 않은 도로가 양방으로 이어져 더더욱 교통정체를 겪었다. 혼자서도 여러 번 다녔던 길이라 눈에 훤했다.
알제리를 처음 왔을 때, 지질 조사업체 통역으로 ‘알제리 동서 고원 고속도로 프로젝트’에 지질조사 업체 통역으로 처음 통역이란 업무를 접했던 경험이 있었다. 3개월 동안, 서쪽의 티아레에서부터 동쪽의 바트나까지, 아틀라스 산맥을 따라 500km에 달하는 고속도로 지질조사는 내게 여행처럼 즐거웠다. 마치 잃어버린 우리 시대의 순박한 시골청년들과 같은 정감이 3개월 동안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쏘일테크라는 한국 지질조사 업체의 현장 통역으로, 지질조사가 티아레에서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부그줄이란 도시에 다다라서 현장에 참여했었다. 현장 주변엔 거대한 담수는 소금 호수였다. 드 넓은 사막지대에 소금물이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혼자 수영을 하기 위해 맨발로 들어가려다 너무 뜨거워 식겁하고 물러섰던 곳, 근처에 대우건설에서 신도시 건설이 한창이었다.
티아레부터 시작해서 엠실라, 바리카를 거쳐 바트나라는 대도시까지 500km, 나무랄 데 없이 좋았던 지질 업체 경험은 최 용전 소장을 만나고 파리 문화원에서 근무했던 김희수 형님을 만나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처음 경험했던 한국 직원들의 무거운 침묵과 ‘돈 주는데 왜 안 해?’ 같은 말은 내 기억 속에 오래 각인되어 있었다.
그런 지질조사의 겉핥기식 경험이, 시험과 연구까지 이어지는 지오테크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CEEG에서 초기 실시했던 지질 조사가 엉터리라 처음부터 다시 한다고 경비와 막대한 시간을 잃고 있는 중이었다. 발주처는 조사가 끝났으니 현대에 떠 넘겼다. 현대의 지질 담당자는 내게, 발주처 지질 조사 담당자를 지칭하며 ‘저 놈이 자신이 잘못한 조사를 우리에게 떠넘긴다’고 분통해했다.
그러한 문제점은 소넬가즈 전체 기술 회의에서 나오지 않고, 모하메드와 김 소장, 우리 프로젝트 매니저와 각 공구장들이 참여한 프로젝트 팀 간 회의에서 나왔다. 그러나, 발주처 섬기기를 왕처럼 여기는 한국의 기업 문화의 문제점은, 정작 당사자에게는 꼼짝하지 못하고 혼자 화풀이를 하는 데 있었다. 현대건설 전문 통역인 제법 경륜과 경력 있는 알제리인 무스타파는 그런 중요한 사실들을 전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전달했다.
그렇게 3개월 가까운 기간을 허비하자, 발주처는 원인을 알고 있으면서도 총괄 매니저 모크리가 회의에 참석해, 발전 플랜트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우리에게,
“현장 지질조사 확인 과정이 늦어진 관계로 3개월을 허비한 것은 현대 엔지니어링의 무능을 보여준 것입니다. 현대가 우리에게 약속했던 것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심각한 우려와 애도를 표합니다.”
라고 마치 학생 훈육하듯 모욕적인 언사를 일방적으로 던졌다. 양 피엠에게 그 사실을 전달했다. 모하메드는 그런 표현은 심하다면서 오히려 웃으며, 우리들 중에 통역이 있다는 사실을 전했지만 그는 일방적인 연설을 마치고 나가버렸다. 발주처 중에 고약한 놈들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덩치가 크고 권위적인 모크리는 언행에 오만함이 묻어났다. 심지어, 그만한 또래의 히잡을 하지 않은 40대 여성 임원도, 명확한 역할을 알 수 없는데도 나타나 한마디 거들고 같이 사라졌다. 나중에, 사무실 친구들과 친해지자, 소넬가즈 사장과 밀월 관계에 있다는 얘기를 전해주었다. 벌써부터 그들이 현대의 모가지를 잡고 흔들 앞날이 눈에 훤했다. 실력이 없으면 제일 잘하는 게 닦달이 아니던가!
우리는 긴 교통 정체를 뚫고 진이 빠져 지오테크 사무실에 도착했다. 용 부장은 기계 쪽이라 토목에 아는 것이 없었고 나도 지질에 참여했지만 어떻게 절차가 진행되는지, 사전 정보가 없었다. 전문 토목 위원으로부터 절차와 과정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은 게 없었다. 오로지 용 부장이 하는 말을 전달하고 지오테크의 공정을 확인하는 게 고작이었다.
지오테크와 제일 중요한 업무는 시추 기계를 얼마나 더 많이 현장에 지원하여 지질 조사 기간을 단축하는데 있었다. 사장 사무실은 시내의 목 좋은 곳에 있어, 사장은 현장 연구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에겐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모양인지, 아니면 그런 플랜을 제시할 능력이 되지 않는 모양인지, 여러 번 방문해서 추가 지원을 요청하고 약속을 받았음에도 장비 추가 투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기계는 낡았으며 자주 고장이 일어나 멈추기 일쑤였다. 한국인 업체 두 개가 활동 중에 있었지만 경비 차원에서 차이가 났다. 한국에서 투입된 기계는 작았지만 고장이 덜했고, 부품도 한국에서 가져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지 시추 기계의 성능에 비교할 바 없이 좋았다. 현대는 다른 한국 경쟁업체로부터 얻은 정보로 그나마 낫다고 평가되는 지오테크와 계약을 맺었었다.
그러나, 추출한 시료는 어차피 이런 업체에 위임해야 했으므로 우리만 마음이 바빴을 뿐,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들의 업무 시스템을 우리가 바쁘다고 다그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빠른 결과를 보려면 돈을 더 투자하라고 은근히 압박했다. 그러나, 그들이 현장에 추가로 투입한다고 약속 한 장비들은 현장에도 공장에도 보이지 않았다. 회의록을 작성했다. 그들의 말 바꾸기와 무책임한 약속을 방지하려면 회의록 작성이 최선일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