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해도 괜찮아.

때로는 결과보다 과정에서 얻는 것들이 더 귀하단다.

by 선물같은 오늘

우리 딸은 또래에 비해 신중하고 너그러운 편이다.

위험한 일은 시작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다소 불편한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위해 참고 배려하곤 한다. 그렇기에, 아이의 속마음을

추적하여 조용히 대응하는 것은, 엄마인 내게 일종의 습관이 되어 있었다.



#1. 마음과 달리 늘지 않는, 영어실력


사립유치원 3년에 마지막 한해는 영어유치원 오후반 수업,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이는 입학과 동시에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에 소질있는 아이라, 언어계열의

수업이 어려울 것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런데 현재 딸아이에게 영어는 큰 벽이다.


엄마, 나 영어를 포기하고 싶어. 책을 펼치면 눈앞이 캄캄하고 입이 안 떨어져..
어머나, 지율아. 아홉살에 벌써 영어를 포기하려는거야(아찔)?
지율이는 아직 어리고, 세상은 넓어. 지율이 책읽는 거 좋아하지?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쓴 책을 읽고 싶지 않아?
물론 우리나라에도 좋은 말과 글이 있지만, 훨씬 많은 작가들은
영어로 글을 쓰고 책을 내. 그 안에는 세계 여러나라의 깊은 생각과
많은 지식이 담겨있지. 우리 딸에게는 아직 주어진 시간이 많으니까,
한 단어 한 문장씩 천천히 반복하면 돼. 조금 느려도 괜찮아. 분명히 나아질거야.



#2. 친구에게 전하기 힘든, 불편한 감정


우리 딸은 봉긋하고 예쁜 이마로,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많은 칭찬을 들었다. 그런데 최근 같은 반 친구가

그런 이마를 넓다고 놀리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해프닝이라

생각했는데, 매일밤 잠자리에서 속상해하는 아이를 보며 어쩐지

내게 도움을 청하는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엄마, 지호가 자꾸 대머리라고 놀려. 내 이마는 백만불짜리 이마라고 했잖아..
그럼! 우리 딸 이마는 백만불짜리지~, 크면 클수록 더 비싸질걸(웃음)?
친구들의 언행에 모두 대응할 필요는 없지만,
지율이가 불편하게 느낀 상황이 있다면 그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해.
때로는 가만히 있는 게 상대방의 잘못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 될 수 있거든.
이번 일은 벌써 열흘 넘게 잠들기 전 우리 딸을 괴롭히고 있으니,
지호에게 가서 "너의 그런 행동이 싫다. 내가 많이 속상하니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정확히 전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서 지호가 놀림을 멈추고 지율이에게 좀더
친절하게 대해준다면, 그건 다투는 게 아니라 친해지는 과정이 될 거야.
불편한 감정도 지율이의 마음이니까, 숨기지 말고 필요할 때는 표현해야 해. 그래도 괜찮아.



#3. 동생에게 양보해야하는, 누나의 자리


딸아이는 다섯 살 여름에, 동생을 위해 첫 번째 물러남을 시작했다.

자라며 한번도 떨어져본 적 없는 엄마를, 곧 태어날 동생을 위해 양보하고

홀로 외할머니 댁에서 한달 가까이 지내야 했다. 당시를 회상하는 친정엄마는,

할머니가 속상할까 봐 씩씩하게 놀다가도 잠자리에 들 때면 혼자 웅크리고 누워

벽을 보며 숨죽여 엄마를 찾았다고 한다. 다시 들어도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더불어 대견하고 감사한 기억이다. 그랬던 아이가, 누나의 세월이 5년에 접어들고 있다.



에휴,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 효준이 없이 나 혼자 있었을 때로.
그때는 엄마가 나만 보고 내 얘기만 들어줬는데..
에구구, 우리 딸 애기 때로 돌아가고 싶어?
그러면 맛있는 초코과자, 아이스크림 아무 것도 못 먹고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뛰어놀 수도 없을텐데.. 괜찮을까(웃음)?
그런데 지율아, 효준이 입장에서 생각해봤어?
지율이는 엄마아빠의 사랑 듬뿍 받으며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4년은 보냈는데
효준이는 태어나자마자 누나가 있어서 그 사랑을 나눠 가졌잖아.
갑자기 나타난 동생이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효준이는 지율이와 같은 부모님을 가진, 세상에 하나 뿐인 형제야.
지금은 지율이가 좀더 양보하는 것 같아 속상할지 몰라도, 효준이도
나름의 방식대로 누나에게 빼앗기고 나누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물론, 가끔씩 속상한 마음을 엄마에게 하소연하고 싶으면 그건 해도 돼.
엄마는 지율이보다 어른이고, 지율이를 낳아준 엄마니까 투정부려도 괜찮아.



아이에게 본격적인 사춘기가 찾아오기까지..

남은 2~3년의 시간동안, 나는 최선을 다해 괜찮다고 얘기해주려 한다.

진짜 실패를 알기 전에 자잘한 성공의 기쁨을,

진짜 이별을 알기 전에 사소한 만남의 행복을,

진짜 과오를 알기 전에 잔잔한 개선의 기회를 주고 싶다.

어른이라는 미명 아래, 치부를 감추기에 급급하고

자기과시에 거리낌이 없는 우리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충분히 실수하고 변화할, 내 아이에게 필요한 말은.. 다름 아닌 '괜찮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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