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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VIN Jan 16. 2024

짧은 호흡의 그림 그리기

mavin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생존하는 방법

일단 시작을 하긴 했는데 기존에 그림으로 돈을 벌어본 적이 없고 팀이 아닌 홀로서기로는 어떤 경로로 돈을 버는지 몰랐다. SNS는 기존에 하던 게 있어서 크게 영향력 없는 수준으로 시작했고 업계에서 어떤 흐름으로 외주를 주고받는지 몰랐다. 차츰 일이 들어오기 시작한 그 시냇물 같은 물줄기를 느낄 때가 있었는데 그때의 그림들을 생각해 보면 지금 소개하는 방법이 통하지 않았을까 싶다.


일과를 정리하기 전에 1시간 드로잉

앞에서 시간의 중요성을 이야기했고 중요한 모든 시간 중에 제일 중요한 시간은 내 일과의 마지막인 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림으로 하루 일과를 꽉꽉 채웠는데 또 그림을 그리냐 싶겠지만 이때 그려지는 그림은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호흡이 짧은 그림이다. 디자인회사를 다닐 때 사수는 내가 만들어야 할 아이콘의 메타포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면밀히 설명해주고 왜인지 물어보는 친절한 사수였다. 말투는 퉁명스러운데 알려줄 건 다 알려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때 배웠던 디자인의 시작이 나만의 그림을 그리는데 큰 영향을 줬다. 그때 배웠던 생각과 당장 눈앞의 시장 흐름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들을 더해서 테스트해 보는 그림을 나는 '인스턴트드로잉'이라고 칭하고 그 그림을 자기 전에 그리고 sns에 업로드를 했다. 단 1시간의 드로잉 습관인데 이게 나중에 스노볼처럼 크게 굴러서 일의 크기를 불려줬다.


내가 말하는 인스턴트드로잉

다들 내가 인스턴트드로잉이라고 하면 '1일 1 드로잉이네' 싶을 거다. 근데 내가 정한 건 단순 1일 1 드로잉이랑은 결이 좀 다르다. 하루에 무조건 한 개를 그린다는 시간제약을 두고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에 제약을 두는 그림이다. 그림에 진심이면 보고 그리는 수준은 누구나 할 것이다. 그런 걸 중요하게 보는 게 아니라는 거다. 보고 그리는 수준이면 도상지능 늘리는 수준인데 그건 갖고 태어나거나 나처럼 없는 사람은 훈련으로 키워지는 것이다. 근데 인스턴트드로잉은 생각에 제약을 두는 드로잉이며 가장 낮은 기초적인 생각부터 시작한다. 선을 써서 피사체를 드러낼 것인가 면을 써서 피사체를 드러낼 것인가 빛이 적용된다면 어디까지 내가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그려내는 사람은 어떤 성격이니 그 사람의 색은 무엇으로 담아볼 것인가 (디지털 한해서) 다른 기법은 없을까? 등등 어떤 정의를 내리고 그걸 표현하는데 더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림의 기법이 추후에 긴 호흡의 그림을 그릴 때 확장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걸 다 그려놓고 자세하게 표현한 그림이면 뭣하러 손수 그릴까? 나라도 외주할땐 그냥 스톡이미지나 AI 돌리는 게 더 효율적이다. 재해석을 할 줄 알아야 진짜 그림쟁이다.


그림쟁이만 아는 그림근육

그림근육이라는게 존재하는진 본격적으로 그림 그리면서 알았다. 업계에 10년 넘은 프로와 코로나시국에 어떻게 일을 받아 유지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나눈적이 있다. 그때 그림근육이라는 걸 알려주셨는데 집에 와서 한참 생각했다. 앉아서 그리는 그림에 쓰이는 뇌근육 같은 건가? 근데 시간이 좀 지나 여러 차례 번아웃과 슬럼프를 벗어나 지금 글 쓰면서 정리가 되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릴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상당히 미묘한 것들로 복잡하다. 회사 다닐 땐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 당시 그 감정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는데 어느 순간부턴 행복하다거나 가슴 벅찬 순간 혹은 감사한 마음으로 바뀔 때가 많아지자 그림에 그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에 그리던 대로 그린 그림 같은데 클라이언트분들 중엔 '그림이 따듯해서 작가님으로 선정했어요'라는 메일을 몇 번 받았다. ‘아 이게 감정을 같이 동반한 그림근육일지 모르겠다. ’라는걸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이건 그림의 호흡이 길 때보다 호흡이 짧을 때 더 잘 연습해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한번 떠올려보자 왜 그림을 시작했고 왜 그림이 좋은지 그리고 짧은 호흡으로 좋은 기운을 그림에 담아보자. 그것들이 잘 담기는 순간 일의 크기는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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