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폭설로 시작해 우리 모두를 잠 못 들고 불안과 분노에 떨게 한 폭군의 폭거를 거쳐 2024년 12월, 그 보름이 지났다. 광군(狂君)의 거대한 포악질을 가장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질서 있고 품위 있게 로켓의 속도로 뽀사(!)버린 K-민주주의의 저력을 우리 스스로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집회와 시위를 빛과 흥으로 가득한 축제와 문화로 승격시킨 우리야말로 참말로 밝은 빛의 민족, 배달(倍達·박달)의 겨레가 맞는 것 같다. 연출하려야 할 수도 없고, 따라 하려야 할 수도 없는 더없이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와 연대의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이 또한 우리 역사에 아카이빙 되겠지.
시간은 흐른다. 역사도 흐르고 우리의 일상도 흐른다. 흐른다는 것은 살아있음이고 파동이고 삶이다. 매일 뜨고 지는 해처럼 늘 똑같은 하루하루 같아 보이지만, 어제보다는 조금 낮은 음으로 또는 오늘보다는 조금 높은음으로 반복 속에 잔잔한 변주가 있어 그래서 더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도레미파솔라시도 중에서 어디에 음표를 찍을지 어떤 연주를 할지 순전히 나의 선택이고 내 몫이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연주하기 나름이다. 도도하기만 하면 얼마나 재미없겠나? 가끔은 라라라 노래를 흥얼거리는 날도 있고 또 가끔은 시시하기도 하고 미미하기도 하고 솔솔 바람도 불어야 재미있는 삶이지.
좋을 때는 다 좋아 보인다. 괜찮아 보인다. 그러다 그 사람의 진정한 본모습은 위기 앞에서 탐욕 앞에서 드러난다. 그 한 마음, 그 한 끗을 스스로도 어쩌지 못해서 이기지 못해서 결국 자신을 못 견디고 못 이겨서 마침내 드러내고 들키고 만다. 우리는 그 광경을 생생한 라이브로 다 지켜보고야 말았다. 그렇게나 한 자리 지키고 싶고 앞자리 차지하고 싶고 위에 서고 싶어서 안달이라니.
새삼스레 실망할 것은 없다. 모든 인간은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감춘다. 허구를 지어낼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사피엔스가 아직 멸망하지 않고 있다고 하지 않은가! 우리 인간의 위대한 창발성이다. 날마다 술 먹고 숙취를 못 이겨 출근 시간 하나 못 지켜서 자신의 자리가 가진 권위를 남용해 가짜 출근을 시키는 인간도 있고, 그럴싸한 말로 정말 그런 것처럼 꾸며대고 퍼뜨리고 게다가 또 그걸 믿고 따르는 게 우리들의 평범하고 흔한 풍경의 일부이기도 하다.
하물며 매뉴얼을 지키지 않고 용량을 줄이거나 늘리거나 저울의 눈금을 속이는 것쯤이야!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멈추다시피 하고 거리로 나가 있는 동안 한 자영업자는 일이 없어 그동안 모아놓은 고철을 팔러 고물상에 다녀오기도 했다. 나라도 지켜야 하고 생계도 지켜야 하니까! 물론 이 또한 환기가 되기도 한다. 평소에 분리수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쓰레기도 제법 돈이 된다는 사실도 이참에 실감한다. 하찮은 것이 단 하나도 없다.
자루를 펼치고 저울질을 하며 고물이 보물이 되는 순간이다. 그 와중에도 서로들 먹고살아야 하니 밀고 당기며 흥정을 한다. 장사에서 흥정과 에누리는 재미와 묘미이기도 하다. 물론 웃어넘기며 봐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말이다. 어느 정도 저울을 속이는 것이 사람의 본성일지는 몰라도 고물을 사고파는 한낱 장사치들도 양심은 팔지 않는다. 구리값이든 자리값이든 저울 위에 올려놓고 얼마든지 흥정할 수 있지만 마지막까지 저울 위에 올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 법이다.끝내 내어주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아는 것이 상도(商道 ·常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