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싱크대 하수구를 뚫었었는데 이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는 아파트 상가 남자화장실 소변기를 뚫고 있다.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메리 크리스마스! 몹시도 추운 날 핫팩을 주머니에 넣고서 쭈그리고 앉아 장장 일곱 시간을 작업해서 겨우 뚫는 데 성공했다. 이 정도면 중증의 요로결석이다.
찌들고 찌든 지린내에 질려서 입맛이 싹 가셨나 싶었는데, 동지(冬至)란다. 어둠이 가장 길고 깊은 겨울에 이른 것이다. 그래도 팥죽은 먹어야지 싶어서 깊은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포장주문을 해둔다. 혹여라도 가게에 들렀는데 옷이나 머리카락에 지린내가 배어서 민폐를 끼칠까 조심스러워 발걸음이 날래진다. 나는 이미 무뎌져서 냄새를 못 맡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아닐 테니까. 얼른 집에 들어가 뜨거운 물에 씻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다.
그래도 오늘은 작업하러 오기 전에 동네 근처 예쁜 카페에서 책벗들을 만나 이야기꽃도 피우고 꽃 들고 책 들고 마실을 다녀왔는데 그 시간이라도 없었으면 조금 우울할 뻔했다. 산소를 미리 충전하고 와서 암모니아 유독가스를 견딜 수 있었다. 참말로 오늘치 한 모금의 숨이었다.
화장실 변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손으로는 쉼 없이 드릴척을 돌리며 조수는 잠시 생각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사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이제 변기는 그만하면 안 될까요?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보이지도 않는 저 깊고 좁고 컴컴한 배관 속을 관통기 와이어 끝에 부딪혀 오는 감각 하나에 의지해 노커(Knocker - 관통기 와이어 끝에 달린 관통 헤드)를 몇 시간째 끊임없이 흔들고 돌리고 밀고 당기며 포기하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고 있는 사수에게 지금은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지금은 그저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해낼 수밖에. 우리는 서로 각자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할 뿐이다. 그래도 앞에 나서서 직접적으로 모든 걸 대면하고 감당해 주는 사수가 있어 조수는 안전하게 그저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을 수 있다. 뛰는 사수 위에 날아다니는 조수가 아니라 물불 아니, 똥오줌 가리지 않고 뛰는 사수 덕분에 뒤에 서 있을 수 있는 조수다. 오늘도 이 일을 해내야만 그 안락함을 누릴 수 있다. 너무 잘난 사수로부터 종종 눈치 없다고 타박을 당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염치는 있는 조수다.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저 아저씨 같은 일 하게 된다!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잘해야 돼!"
사수가 송년 모임에 다녀오더니 누수탐사를 전문으로 다니는 동료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작업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 엄마가 아이에게 대놓고 다 들으라는 듯이 한 말이라고 한다. 그 사장님이 오죽 억울했으면 동료들에게 하소연을 했을까. 자신은 학창 시절 공부도 잘했고 현재 돈도 잘 벌고 있는데 말이다. (누수 전문은 작업 시간에 상관없이 무조건 장비가 한 번 출동하는 것만으로도 기본 단가가 꽤 높다고 한다. 사수님, 우리도 갈아탈까요?) 사수는 실제로 그 모임에 왕년에 제법 잘 나가던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공무원이나 대기업 다니던 사람, 건설회사나 광고회사에서 한 가닥 하던 사람들도 있다고. 다들 그 라떼 시절을 지나와서 지금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고 속 편하게 일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들은 모두 이미 사장님이다. 자신들이 스스로 대표이고 브랜드이자 걸어 다니는 CI(Corporate Identity)인 셈이다. 무엇이 부럽겠는가?
책에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겉으로 보이기에 반듯하게 차려입고 책상에 앉아 서류 만지고 입으로 떠드는 일은 고매하고, 허름한 옷차림에 밖에서 몸으로 하는 일은 비천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말이다. 설령 자신이 그렇게 믿고 있다 하더라도 그런 의식과 태도를 굳이 겉으로 드러내고 물려주기까지 하는 것이 더 천박하고 품위 없는 언행은 아닐까? 잠시 똥오줌이 더럽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특히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별 못하고 부끄러움도 없이 설치고 버티고 있는 저 높은 자리에 계시는 고매하신 양반들을 보니 '잘 차려입는 개돼지(의관구체 衣冠狗彘)'가 따로 없다. 그깟 자리 하나 꽉 움켜쥐고 지키려고 아등바등하고 잘 보이려 감추고 속이고 애쓰느라 자신들의 양심을 시궁창에 처박아 버린 사람이 되느니 차라리 움직여 일한 만큼 일궈내는 정직하고 속 편한 이 일이 정말이지 더 낫다 싶다.
이제는 수시로 전화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부탁하는 단골 의뢰인들을 보며 사수가 마치 집사라도 된 것 같다고 말하니 사수가 답한다.
"이런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이게요."
농사를 지어주는 사람이 있어 우리가 쌀밥을 먹고, 병을 고치고 부러진 뼈를 수술해 주는 사람이 있어 우리가 목숨을 구하고, 막힌 변기를 뚫고 집을 고쳐주는 사람이 있어 우리가 속 편히 싸고 물 샐 걱정 없이 따뜻하게 씻을 수 있다. 모든 직업은 필요하기에 존재한다. 누군가 그 일을 아직 해주는 사람이 있어 더없이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
[정민 <석복 惜福>]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없는 게 없다. 모든 혜답을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