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몰랐다. 가게가 하루 만에 빠져버렸다. 손수 페인트 칠한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되었다. 워낙 불경기라서 안 나가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부동산에 내어놓았는데 내놓자마자 바로 다음 날 계약이 되었다.
그곳은 예뻤다. 다시 봐도 쫌 예쁘긴 하다.물론 월세가 워낙 저렴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아무래도 너무 예뻤지. 눈에 안 띄는 나사 하나까지도 우리 손으로 직접 얼마나 정성 들여 작업했는지 모른다. 돈이 없으면 손으로 때운다. 조명이 예쁘다며 그냥 달아놓고 가면 안 되겠느냐고 해서 기분 좋게 넘겨주기로 했다. (부동산에 내어놓아도 집이나 가게가 잘 안 나간다 싶으면 나부터 살고 싶고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공간을 어여쁘게 정성을 들여 꾸밀 일이다. 최소한 삭막해 보이지는 않게, 깔끔하고 단정하게 온기가 느껴지도록. 아니면 압도적으로 저렴하거나!)
자영업자의 하루하루는 또 닥쳐오고 굴러간다. 상황이 다급하게 되어 최대한 가볍고 단순하게 이사하기로 한다. 이번엔 가장 첫 번째로 고려한 조건이 엘리베이터였다. 사수의 무릎은 한 집안의 기둥이니까! 온갖 장비와 자재들, 그리고 폐기물까지 들고 일 년을 오르락내리락 나르다 보니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이것도 좋은 경험이다. 물론 1층 상가로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그럴 형편은 안 되니까! 이번에는 창문도 있다. 지하 세계에서 지상으로 신분 상승을 한 기분이다. 우리가 왜 뷰(View)에 비싼 값을 지불하며 살고 있는지 알겠다.
그동안에 우리는 집수리를 어디까지 해봤을까? 워낙 소소하고 폭넓게 다양하기도 해서 사수도 처음 맡아보는 작업이 물론 있다. 새로운 작업을 맡으면 사수는 홀로 조용히 밤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만인의 스승 유튜브 선생님을 찾아가 이미지트레이닝을 오랜 시간 받고 온다. 막상 현장에서 작업하는 흐름과 손길을 보면 전혀 처음 하는 작업 같지 않다. 사수는 그냥 보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손이 그걸 따라주고 받쳐준다는 것은 타고난 재능이다. 보는 눈이 있는 덕분에 조수를 만난 건 축복이고잉. 사수는 블로그도 직접 꾸준히 쓰며 셀프 홍보도 이어가고 있다. 이럴 때 보면 글쓰기가 된다는 건 정말 생존에 필수적이고 실제로 돈을 버는 일이다. 이게 안 되면 남한테 돈을 주고 맡겨야 하니까.
새로운 도구와 장비 또한 계속 늘어간다. 집수리 역시 끊임없이 찾아보고 배우며 공부해야 하는 영역이다. 새로운 장비를 들이기 위해 투자도 해야 한다. 우리가 집에 들어설 때 가장 처음 마주하는 문고리조차 아날로그 열쇠에서 디지털 지문인식으로 바뀌고, 요즘은 집집마다 에어컨은 필수다. 양문형 비스포크 냉장고에 김치냉장고는 기본이다. 세탁기와 일심동체인 건조기, 식세이모, 로봇청소기, 무선청소기, 공기 청정기, 제습기까지 없는 게 없다. (물론 없어도 산다. 그런데 있다가 없이는 못 살지. 그럴까봐 없는 채로 최대한 버틴다.) TV 역시 거거익선(巨巨益善)이라고 거실 한쪽 벽 전체를 차지할 만큼 크다. 85인치가 대세라는데 그게 얼마나 큰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게다가 웬만한 신축 아파트는 월패드 하나로 모든 것을 제어하기도 한다. 50평이 넘는 집은 안방 욕실만 해도 다른 집의 안방만큼 크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 안방만 한 크기에 모든 것을 구겨 넣고 사는 집도 있다. 사람 사는 집이 다 똑같기도 하지만 그만큼 다양하고 제각각이다. 동시에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변화의 흐름에 발맞추려면 우리도 스마트해야 한다.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으려면 깨어있어야 한다. 적어도 두려워하지는 않아야 한다. 한 번 해볼까 하는 도전정신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래야 이 바닥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사람 사는 곳에는 쥐도 산다. 삐까뻔쩍한 아파트에도 여전히 쥐가 살고 있다. 당장 우리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도 서로서로 함께 더불어 살고 있듯 쥐도 우리 곁에 숨어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집수리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쥐구멍을 막는 것도 포함인가 보다.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의 영역에서 잘 지냈으면 서로 괜찮았을 텐데 이번엔 쥐가 선을 넘어 남의 집을 침범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처음 만나는 온갖 동물들을 모두 친구로 삼는 사수는 쥐조차 귀엽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덩치가 사수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의뢰인이 얼굴이 허옇게 질려서는 쥐가 무서워서 잠을 못 잔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작업을 하러 갔다가 쥐가 출몰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잡아버렸다고 한다. 쥐야, 미안하다. 이번엔 상생을 위해 살생을 감수한다.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하지 않겠니. 집으로 돌아온 사수에게 조수는 딱 한 마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