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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이 고칠 수 있습니다

명절은 왜 더 피곤할까?

by 햇살나무 여운


명절이 되면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내게는 시누이가 되는 사수의 누나와 그녀의 아들인 큰 조카가 온다. 우리를 외삼촌, 외숙모라 부르는 큰 조카는 나와 겨우 아홉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총각이다. 참고로 시누이와 나는 띠동갑이고, 사수와 나는 여덟 살 차이가 난다. 그렇게 넷이서 명절 연휴 3박 4일을 함께 보낸다.

시누이는 이혼 후 지방에서 직장을 다니며 혼자 살고 있고, 큰 조카는 재혼한 아버지와 살다가 본가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독립해 마찬가지로 직장을 다니며 혼자 살고 있다. 엄마는 아들에게 반찬이며 살림이며 이것저것 수시로 챙겨 보내고, 아들은 휴일이나 여름휴가에 종종 내려가 엄마와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명절만 되면 모자(母子)는 우리 집에 온다. 평소에 자주 왕래하는 것도 아니고, 본가도 있고 친척도 많은데 명절 때만 꼬박꼬박 굳이 우리 집에 온다. 좀 특이한 가족 형태라고 해야 하나?

두 사람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청소를 하고 이부자리를 준비하고 먹거리를 냉장고 가득 채워 넣는다. 서둘러 이른 성묘도 다녀오고, 일주일에 한 번씩 챙기러 다니고 있지만 정작 명절 때는 함께 하지 못하는 사수의 형님 되시는 아주버님을 따로 만나 미리 밥도 먹고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온다.

늘 부모님 제사를 지내는 것도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것도 막내인 사수 몫이다. 막내며느리이자 유일한 며느리인 내 몫이기도 하다. 연휴 내내 시댁 손님을 치르는 것도 다 내 몫인 셈이다. 아버지도 있고 본가도 있는 아들에게는 택배도 보내고 이것저것 잘 챙기는 형님은 정작 혼자 살고 있는 아픈 남동생은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고 왜 한 번도 챙기지 않을까? 더 어린 막냇동생이 혼자 다 감당하도록 왜 모르는 척 내버려 두는 것일까 처음엔 의아했다. 엄마와 아들이 서로 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지만 외국에 사는 것도 아니고 아들 집도 있고 수시로 만나며 사는데도, 어린애도 아니고 나이도 적지 않은 다 큰 성년이 하루 잠깐도 아니고 왜 매번 연휴 내내 우리 집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것일까? 게다가 나는 가고 싶은 친정도 없고 실제로 결혼 후 한 번도 친정 식구들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 이것은 일종의 휴전이자 평화협정이며 불문율의 가족 질서라고 불러야 할까?


처음엔 몹시 부담스러웠고 이해되지 않았다. 먹고 치우고 돌아서자마자 또 저녁은 뭐 해 먹여야 하나? 이때만 되면 나만 혼자 남의 식구 같고 부엌데기 식모가 되는 것 같은 며느리 기분이 드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또 온단다. 매번 온단다. 거 참! 아니, 이 외숙모가 전라도 여자라서 손맛이 좀 있기는 하지. 그래도 그렇지. 우리 집에 오는 게 진짜 좋기는 좋은가 보다. 오죽하면 명절에 본가 놔두고 외삼촌 집에를 올까? 형님도 우리 아니면 갈 곳이 없는 것이다. 내가 친정에 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로 그들 역시 딱히 갈 만한 곳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명절이면 남들 살듯이 따뜻하고 화목하게 진짜 가족처럼 어울려 보내고 싶은 곳이 뜻밖에도 우리 집인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잠시라도 함께 하면 견딜 수 없는 관계도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 집은 정말로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구가 물었다.


“명절은 왜 더 피곤한 걸까?”

비교하는 마음이다. 계속 나 혼자서만 다 감당하는 내 몫이라고 여겨서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좀 더 하는 것이 못마땅하고 그들의 당연시에 화가 나고 서운하고. 그런데 10년쯤 넘으니 차츰차츰 우리 몫이 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이제야 좀 서로 웃기도 하고 즐겁고 평화로운 명절을 보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평화는 어느 한쪽이 혼자서만 내내 희생하고 감수해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 공동경비구역인 셈이다. 우리는 평화유지군이다. 내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다. 장도 나눠서 같이 보고, 음식도 같이 하고, 설거지도 같이 하면서. 서로가 조금씩 배려하고 양보하고 감내하며 조금 덜 힘든 쪽이 조금 더 힘든 쪽을 챙기는 것이다. 덕분에 이 순간 우리집에서만큼은 평화가 유지된다. 이번 설에는 형님이 정식으로 내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올케 덕분에 집안 분위기가 정말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처음에 맺혔던 원망스러운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 그래도 우리집이 속편하고 또 오고싶다니 고마운 일이다. 조금 특이한 가족형태지만, 뭐 어때! 이왕이면 서로 즐겁게 보내야지.


변기를 잘 고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정말로 고쳐야 할 건 수전이나 콘센트가 아니라 집이다. 그 집 말고 이 집, 사람 사는 거 같은 집! 우리 집! House가 아니라 Home 말이다.

명절이면 다들 고향집에 내려가고 너나 할 것 없이 부모 형제 친지들을 만나러 간다. 그렇게 남들 다 갈 때 나만 갈 곳이 없는 것보다 더 슬픈 건 어쩌면 집이 있고 가족이 있어도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남이기라도 하면 봐주고 참아주기라도 할 텐데 우리는 어쩌다 서로가 잠시도 견딜 수 없는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가 되어버렸을까? 그리고 또 어쩌면,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보다 더 슬픈 건 스스로가 그렇게 아무도 찾아오고 싶지 않은 춥고 쓸쓸한 빈집이 되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옛말에 최고 경지의 의원은 명의(名醫)도 신의(神醫)도 아닌 바로 심의(心醫)라고 했다. 아무리 뛰어난 집수리 기사가 와도 고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우리 집을 자꾸자꾸 오고 싶고 살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집으로 만드는 건 바로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이라는 집, 마음이라는 집은 전설의 화타가 살아 돌아온다면 모를까 아무리 뛰어난 고수가 와도 고칠 수 없다. 오직 그 집에 살고 있는 당신 자신만이 고칠 수 있다. 새 변기에 삐까뻔쩍한 살림이나 가구보다도 조금 허름하더라도 속 편한 집구석!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인테리어가 아닐까?


부디 Home Sweet Home!





사수 곁을 꼭 지키는 호기심천국 냥조수! 러시아에서 온 러블리랍니다~♡
호시탐탐 내 자리를 넘보는 조수후보들


새로 옮긴 사무실 정비하고 손님맞이 준비!






숙원사업 드디어 해결! 똑같은 벽지가 없어서 조금 아쉬운




제대로 雪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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