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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신청을 받은 사수

진정한 시너지 효과

by 햇살나무 여운 Feb 09. 2025


얼마 전 TV 드라마 <옥씨부인전>을 보는데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천한 신분의 노비였던 주인공 구덕이가 양반댁 마님 옥태영이 되어 곤경에 처한 여러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을 구하는 변호인 역할을 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바람을 담은 현실성 없는 아름다운 해피엔딩의 판타지 사극이라고 봐야지. 그중에서 내가 주목했던 장면은 주인공 옥씨부인이 많은 사람들을 돕고 구하는 겉으로 보여지는 수많은 화려한 영웅담이 아니었다. 뜻밖에도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장면이었을 수도 있다.


양반댁 아씨마님 옥태영이 된 노비 구덕이는 과거의 자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따뜻한 방 좋은 이불을 두고서 문간 앞 차가운 바닥에서 불편하게 잔다. 작위적인 설정일 수 있고 궁상맞아 보일 수 있는데, 이 장면이 특히 내 마음에 남았던 까닭은 아무도 보는 이가 없는 곳에서조차 홀로 스스로 마음가짐을 놓치지 않는 자세 때문이었다. 보이는 곳에서는 누구나 그럴 수 있고, 처음 잠시동안에는 누구나 몇 번은 그렇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래 그러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꾸준히 한결같이 그럴 수 있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평범한 한낱 인간에 불과하니까. 구덕이는 말한다. 아씨의 자리를 누리려는 것이 아니라 아씨의 자리에서 아씨가 하시려던 일, 해야 할 일을 하려는 것이라고.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한다. 스스로 고뇌하고 갈등하며 욕심내지 않고 자기 몸 하나 편하려고 하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나누고 돕고 구한다. 끊임없이 끝까지 변치 않고.


구덕이는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도 말한다. 도망노비였던 자신을 받아주고 돌봐준 주막 이모도 그러했고, 자신의 운명을 바꾼 태영 아씨와의 인연도 그러했다. 솔직히, 현실에서는 그렇게 좋은 사람을 단 번에 쉽게 만나는 일은 정말 흔치 않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사기꾼이나 나쁜 놈 한 명이라도 덜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 차라리 더 현실적인 바람일 것이다. 그리고 바라는 기대 없이 그저 묵묵히 바르고 성실하게 살다 보면 좋은 인연은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곳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사람은 편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편하고 싶고, 자신이 가진 자리에서 권한을 누리고 부리려고만 하지 맡은 바 할 일을 해내며 나서서 책임을 지려고 하는 사람은 드물다. 어디 그뿐인가 심지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 가지려고 하고 손에 쥔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악을 한다. 자신이 손해 보고 희생하는 것은 그렇게 싫으면서 왜 상대방에게는 자신도 싫은 그것을 바라고 강요하는 것인지. 그래서인지 온갖 모욕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앞에 나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사람을 만나면 마땅하고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고마워할 지경이다.





은혜는 잊기 쉽고, 마음은 변하기 쉬운 법이다. 나 역시 벌써부터 자꾸만 꾀가 난다. 주말 아침 8시부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두세 건 해내고 달리는 차 안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또 바로바로 가능한 일은 그날 안에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다 보면 밤이 깊어진다. 무슨 배달 라이더도 아니고 이제는 달리면서 주문을 낚아채는 경지에 이르렀다. 자영업자의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현장에서의 변수는 이제 기본옵션이니까. 운전 중에 연이어 사수의 전화벨이 울린다. 견적 문의만 하고 다짜고짜 저렴하게부터 시작하는 경우다. 문제는 "브랜드 있는 좋은 물건에 디자인도 자신이 원하는 구미에 맞는 예쁘고 고급스러운 것이어야 하면서 동시에 저렴해야 한다."여서다. 그런 얼토당토않은 공짜심보를 자주 마주치니 나도 모르게 그만 아주 잠시 귀찮은 마음을 품었다. 순간 얼른 곧바로 반성했다. 빛의 속도로 다시 감사함을 소환한다. 24시간 견적을 주고받는 일이 우리 일의 대부분이다. 밀당하고 흥정하다가 서로 합리적인 선에서 거래가 성사되면 그때 할 수 있는 일에 책임을 다 하면 된다. 모든 일에 하나하나 감정을 일으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물천장에 간접조명 교체작업을 하며 사수가 말한다.


"한 사람이 하면 한 사람 몫을 하고, 두 사람이 하면 두 사람 몫을 할 것 같죠? 혼자서 하면 왔다 갔다 오르락내리락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해서 한 사람 몫도 미처 제대로 다하기 어렵지만, 두 사람이 손발이 잘 맞고 합이 좋으면 서너 사람 몫을 하고도 남아요. 시간도 몇 배나 줄어들고. 그게 진정한 시너지 효과예요."     


예예! 잘 따라다니라는 말을 돌려서 길게도 합니다, 사수님.

(이실직고하자면 조수의 주특기는 땡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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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 상부장이 쳐졌다고 수리가 가능한지 문의가 왔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피하고 싶은 작업이다. 뜯어내고 벽 안을 보기 전까지 상태를 알 수 없고 자칫 잘못하면 다른 곳까지 와르르 무너질 위험부담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한번 손대면 돌이킬 수도 없고 혹여라도 불상사가 생기면 어디까지 물어줘야 할지 두렵기도 하다. 기어코 해보겠다고 하는 사수를 이길 재간은 없으니 일단 가본다. 처음은 두렵지만 그래도 그 사이 몇 번 해봤다고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


전화 통화를 할 때부터 말씀이 무척 조리있고 명쾌하고 끝맺음도 또렷하시던 의뢰인분은 직접 만나뵈니 예상보다도 연세가 제법 있으셨다. 남달랐던 느낌대로 성실하고 단정하게 오래도록 스스로를 관리하며 살아오신 듯한 품위와 삶의 자세가 몸에 배어 계셨다. 집안에서의 모습도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성실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흥청망청 함부로 살지 않고 검소하게 절제하며 살아오신 모습, 아내분께도 편하게 쉽게 대하지 않고 존중하시는 모습,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스스로 챙길 것은 아내분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챙기셨다. 대화에서 엿보이던 단정한 말끝맺음처럼 생활습관과 행동에서도 내외일치하는 한결같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가 그분을 알아보았듯이 그분도 우리를 단 번에 간파하신 듯했다. 30년 넘게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리더십 강의를 하고 계시다는데 우리가 작업하며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시더니 둘이서 아주 잘 만난 것 같다고 웃으셨다. 조수는 반박한다. 아니라고, 아무래도 잘못 만난 것 같다고. 조용히 곁에 계시던 아내분께서도 소리 없이 빙그레 웃으신다. 고수님께 읽혔다. 들키고 말았다. 곳곳에 삶의 고수가 천지 삐까리다! 


다행히 작업을 무사히 마쳤다. 변수도 많아 다섯 시간은 족히 걸린 고된 작업이었지만 결과도 만족스러웠고 바람이 상쾌했다. 평일에는 수원에서 경기도 광주까지 맞벌이하는 아들내외를 위해 손자를 돌봐주러 출퇴근하시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리신다는 아내분의 부탁으로 적당한 위치에 못을 박고 멋진 작품을 걸어 드리고 나왔다. 곱게 늙는다는 것은 아마도 이런 모습일까? 그 집을 나서며 나도 바람직한 어른으로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단정하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흐르는 대로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일상을 꾸리고 지키면서 실존하는 삶을.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의뢰인분께서 사수에게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매력적인 분, 차 한 잔 하자고. 이 정도면 데이트 요청인데, 질투해 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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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 아내분께서 그린 그림과 함께 온 문자 메시지! /  아슬아슬 쳐진 싱크대 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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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고 보니 냉장고 위 상부장은 공중부양이었다. 버팀목을 연장하고 덧대고 천장까지 추가로 더 덧대서 단단히 붙잡아 주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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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후기와 간식

드디어 나왔다. 역대급 댓글이라고 해야 하나? 역대급 친절한 서비스라니 도대체 어떤 맛일까? 사수님, 그 친절 나도 좀 맛보고 싶어요. 항상 친절한 고객님들의 자발적 감동 후기에 오늘도 심쿵합니다. 다정히 건네주시는 친절하고 따듯한 손길도 잊지 않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햇살나무 여운 교보전자책 <명자꽃은 폭력에 지지 않는다>   더불어 많이 사랑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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