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사다리 아래를 지키는 사람

대나무숲 콜센터

by 햇살나무 여운 Feb 16. 2025

언젠가 <사다리 아래를 지키는 사람>에 대해 쓴 적이 있다.



높은 사다리 작업이 점점 더 많아진다. 사다리 작업을 보조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이렇게 밑에서 사다리를 붙잡아주고 지켜주는 사람을 온전히 믿고 내맡길 수 있어야만 비로소 위에 올라서서 마음 놓고 안전하게 마음껏 자신의 재량과 기술을 펼칠 수 있겠구나. 누군가 나를 '사다리 아래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줄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가장 크게 배운 한 가지는 바로 이것이다.


어떤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을 확인하고 싶을 때,
한 번쯤 그 사람을 내가 딛고 올라설 사다리 밑에
세워두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https://brunch.co.kr/@shiningtree/211



오늘은 같은 질문을 조금 다르게 바꿔볼까?


"온전히 믿고 마음 놓고 내 집을 내맡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 두 질문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신뢰'에 대한 질문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한다. 누군가를 자신의 집에 들인다는 건 마음에 들인다는 의미와 같다. 모든 것을 다 내보인다는 뜻이다. 성향에 따라 그게 별일 아닌 쉽고 일상적인 사람도 있고 몹시도 어려운 최후의 참호(塹壕)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집수리를 다니는 일이 어쩔 수 없이 남의 집에 수시로 발을 들이는 일이고, 서로 낯선 상대를 한정된 공간 안에서 맞닥뜨리는 일이다. 게다가 잘 모르는 영역이니 주인이 힘을 발휘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먼저 기선제압을 위해 어설프게 주워들은 얄팍한 지식으로 오히려 노이즈를 일으켜 혼선을 불러오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처음에 어느 정도는 서로 상대를 탐색하고 파악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사수가 꼬박꼬박 조수를 데리고 다니려는 이유 중에 하나는 조수의 주특기인 무장해제력이 사수에 버금가는 치트키가 되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여성 안심 동행 서비스"라고 누가 봐도 언제든 집에 들여놓아도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게 생겨서는 단시간에 아이스 브레이킹이 가능하다? 이야기를 참 잘 들어주게 생겼나? 길을 묻거나 말 건네기 참 쉽게 생겨서인지 버스 정류소나 지하철 역에서 조수는 언제나 손쉽게 성경 공부하는 젊은이들이나 "도를 아십니까?" 무리의 단골 먹잇감이 된다. 이마에 쓰여 있나 보다. '나 믿음'이라고.







며칠 전 방충망 교체를 해주러 갔다가 다른 업체가 와서 매립형 수도꼭지를 교체하는 상황을 동시에 지켜보게 되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아파트를 사서 턴키로 한 번에 전체 인테리어를 다 맡기지 않고 의뢰인이 직접 여기저기 하나하나 업체를 찾아서 개별적으로 공사를 맡기는 모양이었다. 의뢰인은 우리가 오기 전에 작업하기 편하도록 미리 거실 한가운데 넓게 박스도 깔아주시고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며 필요한 것을 물어보고 아직 이사오기 전 빈 집이라 살림살이가 없는 와중에도 손수 물을 끓여 커피를 내주시고 간식도 챙겨주셨다. 그 와중에도 물을 것은 꼼꼼히 물어보시고 작은 쓰레기를 버릴 때도 분리수거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단속하셨다.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섣불리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질은 행동으로 드러난다. 오래 충분히 시간을 두고 우러나는 됨됨이를 겪어 보아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좋아 보인다고 해서 다 좋은 사람이 아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건장한 남성 두 사람이 온갖 장비를 들고 와서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며 크고 강한 어조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그래서 이건 얼마고 저건 얼마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오는 대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도 주저하거나 삼가는 기색이 없다. 나로서는 그 분위기가 꽤나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혼자 계시긴 했지만 다행히 의뢰인은 중년 남성분이셨다. 교체 부품이 독점이라 다른 데서는 구할 수 없고 그 회사에서만 팔기 때문에 비싸다며 가격을 부르는데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못 들을 걸 들어 버렸다. 사수도 놀라는 눈치였다. 부품값 별도에 또 시공비는 따로 그만큼 더 든다고 한다. 레카를 들고 와서 콘크리트 벽도 깨부수어야 하고 공사가 복잡해서 그렇단다. 의뢰인은 흥정해서 깎기는커녕 그 값에 알아서 더 얹어주면서까지 잘 부탁한다고 한다. 이미 충분히 넘치게 지불하셨는데 뭘 더 얹어주기까지 하시는지. 상대방은 한술 더 뜬다. 더 주고 싶으시면 더 주셔도 된다고. 오메! 속 터져. 이왕 온 김에 수전도 낡았으니 마저 바꾸시라며 그 자리에서 욕실 두 곳의 샤워 수전까지 얹는다. 아주 그냥 던지는 게 값이구만. 의뢰인은 또 부르는 그 금액을 고스란히 다 지불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선입금까지 하신다. 내 지갑에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분의 마누라도 아닌데 뜯어말릴 수도 없고 어찌나 아깝던지! 어쩌면 순간 그 돈이 내 지갑으로 들어오지 않아서 아까운 마음이었을까? 사수는 왜 저렇게 못 받아요? 못 받는 게 아니라 안 받는 것이겠지. 서로 기분 좋은 덤은 주고받아도 지나치게 선을 넘는 대가는 부담이 되고 반드시 치러야 할 빚이 된다. 사수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믿는 사람이니까. 횡재는 재물이 될 수도 재난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


무엇보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분과 그 업체와의 비즈니스이니 뭐라 끼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상대적으로 그들에게는 그게 합당한 가격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고 의뢰인도 그럴만하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고. 그 와중에도 의뢰인의 업무 습관인지 작업 항목별로 그때그때 금액을 장부에 다 기록하고 계셨다.


조용히 묵묵히 쭈그리고 앉아 방충망 작업을 하고 있는 우리가 꽤나 우스워 보였던 모양이다. 앞베란다 수도꼭지 커버를 뜯으며 조수로 보이는 좀 더 젊고 덩치가 큰 사람이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투덜거린다. 이런 걸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놓는지 모르겠다며. 그리고는 뭔가 많은 것을 할 것처럼 화려하게 요란하다. 마치 우리가 그쪽으로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고 고작 돈도 얼마 안 되는 방충망이나 하는 사람처럼 보였을까? 우리는 그들이 큰소리치는 것도 들었지만 콘크리트를 부수며 속삭이는 소리도 들었다. "여기에 왜 철근이 있지?" 너무 당연한 소리에 나는 그만 웃음이 삐죽 삐져나온다. 게다가 사수는 그 부품의 가격을 알고 있었다. 인근 아파트들 곳곳에 그 수도꼭지를 교체해 준 적도 여러 번 있고, 아직 쓸만하다며 전부 다 갈 필요 없이 물이 새지 않을 정도로 속 부품만 일부 교체해 준 적도 있다. 굳이 뿌레카까지 들고 와서 과잉작업을 한 적도 없다. 아무도 모른다고 해도 하늘이 알고 자신이 아니까.


조수는 입술을 깨물며 마음속으로 되뇐다.


"None of your Business!"


펄럭이는 오지랖을 접어야 하느니라.

 




엊그제는 욕실 수전을 교체해 달라고 해서 갔다가 왜 이렇게 비싸냐는 소리를 들었다. 익숙하게 자주 듣던 말인데 이번엔 유난히 억울한 마음이 든다. 며칠 전 겪은 그 일 때문인가. 저렇게 우리보다 두 배 비싸게 받는 업체들도 있는데, 이것마저도 비싸다며 깎아달라니. 그때 때마침 친정엄마를 모시고 방문한 의뢰인의 언니가 그 얘기를 듣더니 "얘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네. 그게 뭐가 비싸. 싼 거야! 요즘 인건비가 얼마나 비싼데. 이 사장님은 양심적이신 거라고." 한 마디 하신다. 그리 알아주시니 서운함이 덜어진다. 사수는 결국 또 깎아주긴 했지만.


시골에서 어르신들 댁을 방문하며 안전을 확인하고 돌보는 생활지원사 일을 하고 있는 친구가 말한다. 대부분이 할아버지는 안 계시고 혼자 지내시는 여성분들이라고. 이집저집 매일같이 다니다 보면 눈에 띄어서 문고리도 고쳐드리고, 못도 박아드리고, 형광등도 갈아드리게 된다고. 자녀들은 대부분 멀리 객지에 나가있으니 명절에나 볼 것이고 자녀분들 오시면 그때 가서 손봐달라고 하기엔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연세도 많으신 어르신들이 어디 누구 전문가를 찾아서 수리를 요청하기에도 쉽지 않을뿐더러 거기에 또 제대로 된 비용을 청구하고 받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제법 금손인 친구가 하다 하다 이제는 쓸만한 괜찮은 전동공구를 찾아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서로 웃으며 거기 시골에 우리 분점을 내면 되겠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몸이나 집이나 세월 속에서 쓰면 쓰는 만큼 닳고 낡고 고장 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집수리도 돌봄의 한 영역이라고 봐야지. 그만큼 끊임없이 사람 손이 필요한 것이다.


부모나 형제 없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멀리 여행 가서 친구 집에서 자려고 누우니 천장에 아주 오래된 옛날 형광등이 그대로 달려 있다. 그뿐인가. 안방에는 등이 나가서 불이 안 들어온 지 제법 되었는데 잠만 자니 괜찮다고 한다. 욕실에 샤워기 수전 벽붙이도 덜거덕거린다. 웬만한 건 완전히 고장 나기 전까지는 그냥 쓴다고. 나라도 그럴 것이다. 여자 혼자 살면서 누군가를 부르는 일이 그만큼 번거롭고 불편하고 쉽지 않은 일이다. 마침내 조수는 접어두었던 오지랖을 활짝 펼치며 외친다.


"사수님, 친구집에 형광등 LED로 교체해 줘야겠어요."


사수는 오늘도 대나무숲 콜센터가 되어 이런저런 상담을 해주고 있다. 저 멀리 서울 어딘가에서 걸려오는 전화, 어느 부동산에서 걸려오는 전화, 근처 아파트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지치지도 않고 성실히 궁금증을 풀어주고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털어 길을 안내해 준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사람은 다 똑같다. 계속 물어도 될 것 같으니 쉽게 끊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고객센터들은 대부분 AI 챗봇으로 대체되고 사람과 통화하기도 어려워진 요즘 어디에 대고 이렇게 세세히 묻고 한참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청하겠는가. 적당히 좀 하고 끊지 매번 밥 먹다 말고 너무 잦아지니 사수가 아까운 마음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럴 때마다 그들 중 한 명이 내 친구이거나 나이기도 할 것 같아서 귀찮은 마음을 얼른 거둬들이고 이해하는 쪽으로 먹이를 준다.


조수는 사수를 보유하고 있으니 운이 좋은 것이다.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 맡기고
맘 놓고 갈만 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 저 맘이야 '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는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함석헌 '그 사람을 가졌는가'






이전 28화 데이트 신청을 받은 사수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