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욱 교수 Nov 08. 2022

핼러윈의 호박 유령, 잭 오 랜턴

단호박 주


핼러윈 하면 바로 연상될 만큼 호박에 눈, 코, 입 구멍을 뚫은 유령을 '잭 오 랜턴'이라고 한다.


잭 오 랜턴


늙은 호박의 윗부분을 자르고 잘라진 부분을 뚜껑으로 쓰고, 되도록 무서운 얼굴 표정으로 만들고 

그 안을 파낸 후 '잭 오 랜턴'이라는 말처럼 '랜턴'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호박 안에 양초를 넣는다. 

동양에서 소금을 뿌려 귀신을 쫓아내듯이 잭 오 랜턴은 서양에서 귀신을 쫓아내는데 효과가 있어서 사용했다.


안산술공방에서 호박으로 전통주 술을 만들다 보니 호박 다룰 때가 많다. 그런데 이 맛있는 호박이 생각보다

다루기가 만만치가 않다. 가벼운 단호박이야 괜찮지만 늙은 호박은 크기와 무게가 보통이 아닌 데다가 단단해서 이 안을 어떻게 파내는지 인간의 무한한 능력에 찬사를 보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잭 오 랜턴을 만들 때 사용하는 호박은 우리가 접하는 딱딱한 늙은 호박이 아니라 속이 잘 파지는 연한 다른 종류의 품종이었다.


잭 오 랜턴은 이미 대중문화 속 깊이 들어왔다.

게임, 영화, 좀비, 귀신, 뮤지컬 등 그 장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이 들어왔다.


'문화'의 전파는 억지로 만들 수 없다.


방탄소년단(BTS)의 기획과 성공에 타 문화권에서 젊은 이들의 '문화'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듯이 서양의 어느 누구도 '핼러윈'이 머나먼 동양의 젊은 사람들의 문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10.29 이태원에서 꽃다운 젊은이들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났다.


진심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언론에서는 이들이 영어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거치며 서양의 핼러윈 행사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세대라서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이태원에 몰려들었다고 한다.

맞다. 핼러윈은 그들에겐 이미 '문화'가 된 지 오래다.


젊은 사람들이 놀고 싶고 즐기고 싶다는 걸 막아서는 안된다.

지금 자녀를 둔 아버지, 어머니라 불리는 세대 역시 그들 나이에 놀 거리도 없는 시절이었지만

지금 젊은 사람들보다 더 놀지 않았었나? 

왜 거길 갔었냐고 말하는 건 너무 비인간적이다.


매년 핼러윈은 다시 돌아오고 치명적 사고를 겪은 정부와 지자체, 경찰, 소방은

더더욱 신경을 써서 자발적 핼러윈 행사를 관리할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 이태원에서 핼러윈 행사가 열릴 수 있을지.

다른 넓은 공간에서 핼러윈 행사를 열 수 있게 만들지.

핼러윈 행사가 추모 분위기 속에서 드러나지 못할지.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지만 분명하게 예상되는 것은

사고는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잊힐 수밖에 없고,

장사하는 사람들과 물건을 팔아야만 하는 회사들은 마케팅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핼러윈이라는 문화가 없어질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참사를 통해 얻은 교훈으로 우리는 한 걸은 더 나아가야만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고 발전시켜가는 성숙한 인간이기 때문에.



고2 때 갑자기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다가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가고 싶다고 하며

우르르 집으로 쳐들어왔었다.

넓지도 않은 집에 먹을 것도 없었는데

어머니는 새알을 넣어 끓은 호박죽을 친구들에게 해주셨다.

그 후로 몇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가끔 친구들이 '그때 너희 집에서 먹었던 호박죽이 너무 맛있어서 기억난다'라는

말을 들으면 자꾸 옛날이 그리워진다.

요즘도 시간 날 때마다 공방에서 적어도 단호박 주는 떨어지지 않게 만들어놓는다. 

수제와인도 수제 맥주도 다들 좋아하시지만 단호박 주는 또 다른 감성과 사연이 들어있기에......



- 안산술공방 이정욱 작가

- 공방 주소: http://kwine911.modoo.at


이전 06화 또 훔친 일본 포도 '루비 로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