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그날, 19개월 육아의 전환점이 되다.
윤우가 난생처음 엄마인 나를 완강하게 거부한 날이 있었다.
19개월 인생 처음으로 엄마를 거부한 것이었다.
그건 나에게 너무 큰 충격이었다.
살면서 겪어본 어떤 충격보다도 더 큰 충격이었다.
안자고 가까이 다가가면, 내 품에 안기지 않을 거라고 거부하며 아빠한테 달려가 안아달라 했다.
수없이 반복해서 안기를 거절당하고, 이제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고개를 힘차게 저었다.
이유 모를 아이 마음을 다시 잡고 싶어, 하루를 내내 노력했지만 아이는 잠들기 직전까지 나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아빠만을 찾았다.
당황한 남편까지도 가세해,
“윤우야, 너 왜 그래. 너 엄마한테 그러면 안 돼.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래도 윤우는 고개만 힘차게 도리도리.
내 얼굴을 보기도 싫단다.
아이 눈을 바라보고 싶어 윤우에게 다가가면
윤우는 고개를 홱 돌려 나를 거부하곤
남편에게 방긋방긋 웃어 보였다.
결국 늦은 밤, 윤우를 재우기라도 하고 싶어서
용기 내어 다시 윤우를 품에 안으려는 순간,
윤우의 냉랭한 눈빛을 처음 받아 보고
곧장 아빠에게 뛰어가는 아이 뒷모습을 보고는
결국 눈물샘이 터지고야 말았다.
하루 종일을 참고 참다가 결국에 터져버린 눈물샘이라
마를 틈 없이 울었다.
서운함을 넘어서서 두려움을 느낀 순간이었다.
아이를 낳고부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이였다.
아이가 날 거부한다는 느낌을 받으니
너무도 무서웠다. 두렵고 고독했다.
그 무엇도 필요가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매일매일 나누던 기쁨의 아침 인사, 꺄르르 둘이 누워 뒹굴며 장난치던 시간, 아침에 눈뜨고부터 잠들기 전까지 내 품을 파고들어 팔에 염증이 생기도록 안아 올리던 순간들, 당연하게 느껴오던 우리만의 의식과 시간들이 지금 이 순간 내게 제일 필요했다.
그것들만 있으면 아무것도 내게 남은 게 없다한들 괜찮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충격이 너무 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도 없어 몸도 마음도 무기력함에 휩싸여
나는 이 날 눈물바다에 체력을 지새우고 여덟시, 이른 잠에 빠지길 자청했다.
/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두려웠던 건 ‘아이가 다시 나에게 올까?’였다.
‘오늘도 아이가 나를 거부하면 어쩌지…?’
두려움을 이기고 아이에게 다가서니,
걱정이 현실이 된 듯 역시나 아이가 나를 돌아서서 아빠를 찾아 안긴다.
이날까지도 아이 마음을 어르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
힘을 내보기로 했다.
남편까지도 심각성을 느낀 듯, 먼저 내게 제안을 하나 해왔다.
“자기야. 내 생각엔 내가 윤우 아픈 동안 자주 안아주고 돌봐줬더니 그런 거 같애.
이전까지는 항상 내 품에 안 오고 자기만 찾았잖아.
퇴근하고 와서 책 읽어준다 하면 싫다고 도리도리하더니
늘 자기한테만 가서 책 읽어달라 하고.
좀 웃긴 얘긴데, 이제 내 마음 좀 알겠지?
오늘은 내가 육아에 한발짝 빠져 있을게. 그게 나을 거 같아.”
맞다.
이전까지 윤우는 항상 엄마껌딱지였다.
샤워도 엄마랑 할래, 책도 엄마 아니면 안 읽어!, 엄마한테 안길 거야,
언제나 나를 찾아
남편이 미안한 눈빛으로 “팔 괜찮겠어?” 묻곤 했고
그럴 때면 늘 힘들었지만 알 수없는 기분좋음에 어깨가 들썩였다.
아이가 나를 찾아주고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었는데
어느새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아빠가 책 읽어준다고 다가가면 싫다고 도리도리하며
엄마가 읽어줘야 해! 하며 읽고 싶은 책을 내게 다가와
내 품에 안겨 책 읽기를 기다리던 윤우,
그런 윤우를 보며 남편 앞에서 괜스레 어깨가 한껏 올라가던 나.
그 모습을 멋쩍어하며 늘 서운해하던 남편이었는데
이젠 내가 남편의 상황이 되어버린 거다.
‘이거.. 생각보다 훨씬 서운한 걸..’
/
남편의 제안을 똑같이 나도 하려던 참이었다.
요는 이러했다.
며칠간 윤우가 아팠었는데, 그렇게 윤우가 아플 때면 엄마 품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안겨있으려 하니 내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경험이 몇 번 있었다. 처음 윤우가 입원하던 때, 그리고 윤우가 열이 나서 하루종일을 케어하던 때.
아파서 종일을 떼쓰고 울고 안기려는 아이를 품에 안고 세끼 밥도 거르듯하며 아이를 챙기고 화장실도 제때 못간데다가
잠도 뒤로하고 아이를 가까이에서 챙기다보니 체력과 면역력이 약해지고 아이의 바이러스까지 옮아,
되려 아이보다 내가 더 아파 병원신세를 며칠 지내거나 온몸이 펄펄 끓도록 열이 나 고생하던 날이 있었다.
그걸 몇번 봐 온 남편이,
이번에는 마침 명절기간을 맞아 긴 연휴 기간에 함께 하고 있었으니
날 배려한다고 위해준 일이었다.
“윤우는 내가 안을게. 자기 좀 쉬어.”
그렇게 며칠 윤우가 아파 품을 요할 때마다 남편이 들어안아 며칠을 품에 안았고 챙겼다.
그럼 나는 집안일과 밥을 차리는 일, 윤우 약을 챙기고 뒤에서 챙겨야 할 것들을 바지런히 챙기곤 했는데
그동안 윤우에게 어떤 심리적인 변화가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아팠던 기간동안 아빠가 주로 옆에서 돌봤으니
아빠를 요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남편과 나 모두 동일했다.
그래서 나에게 서운했다거나, 안정감을 잃었다거나 하는 무언의 마음의 변화까지 일어났는지는 도통 모르겠다.
아직은 정확한 말을 표현할 수 있는 때가 아니니까.
내게 서운했거니.. 추측만 해보는 거다.
그리고 이 날은 아침부터 날 거부하던 아들을 안고 남편을 뒤로해
둘이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아빠에게 안기겠다는 아이를 괜스레 억지로 붙잡고 내가 안아있는 시간들을 늘리며
마음을 돌리다 보니 점차 거부하는 일이 사라졌고
지금은 여전히 전과 같은 엄마껌딱지가 되었다.
그런데 이 날을 말미암아 내겐 너무 큰 변화가 일어났다.
어떤 전환점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충격적이었던 이 날들의 일화를 겪고 진지하게 생각해 봤었다.
‘왜 그랬을까?’
확실한 건 아픈 시간동안 아빠가 주로 가까이에서 돌보았으니
아빠를 가장 큰 안전기지로 여기는 게 주 이유였겠지만
요 근래의 엄마로써 나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아이가 아픈 동안 남편이 아이를 돌보는 태도를 보고 난 후였다.
아이가 아픈 동안 남편은 정말이지 지극정성으로 아이를 대했다.
지극정성으로 아이를 대하는 건 나만큼 못하지! 생각했지만, 인내에 있어서는 달랐다.
남편은 언제나 화가 없고 차분한 성격이라 그것이 가장 큰 그의 장점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런 상황에서조차 긴 시간동안 차분하게 아이를 대하고 변함없는 태도를 유지하는 걸 보고는
속으로 감탄하는 일의 연속이었던 거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어딜 가도 순하다는 얘기를 곧장 듣는 아이라도,
아플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어른이라고 다른가.
아플 때는 신경까지도 예민해지는 것이 당연한데, 표현도 못하고 말도 못 하는 아이는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까.
몸은 아픈데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 아이의 예민함과 짜증은 max를 치닫는다.
그럴 때면 아이가 아프니 그렇다는 걸 이해하고 알면서도, 나도 한계가 오는 순간을 맞이하고는
다 받아주지 못하는 때가 있는데,
남편은 달랐다.
어떻게 짜증을 내든
얼마나 울고 얼만큼 보채든 상관없이 남편은 묵묵하게 아이의 성화를 다 받아주었다.
얼굴 씻길 때도 싫다고 울고불고 짜증을 내는 아이를 붙잡고 포기도 않고 화도 없이
“그래도 얼굴은 씻어야 해~ 미안해~”
하며 얼굴을 씻기고
이것도 하기 싫다, 저것도 하기 싫다,
이유 모를 떼씀을 시전하며 품에서 몇 시간이고 내려올 생각이 없을 때에도
남편은 부드러운 말투와 차분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며 아이의 마음을 달랬다.
몇 시간만 그랬다면
“하루종일을 보는 거랑 몇 시간 돌보는 거랑 같아~!?”
하고 내심 핀잔을 줬을지도 모를 텐데
하루종일을 그렇게 느긋한 태도와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며
큰 소리 한번 없이 아이의 짜증을 다 받아내는 남편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을,
아이도 느끼지 않았을까.
어떻게 해도 아빠는 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더 굳건하게 가지지 않았을까.
내가 윤우를 낳기 전부터 제일 크게 다짐한 것이 있었다.
‘절대 부모로써, 엄마로써
약한 모습은 아이 앞에서 보이지 않을 것’
‘항상 웃음만 전해줄 것’
‘내가 할 수 있는 한, 무지개같이 알록달록한 밝고 아름다운 세상만을 보여줄 것’
정말 그 마음이 얼마나 강했냐면
언제나 나는 아이 앞에서 화를 내는 일도, 야단을 치는 일도, 울거나 힘들어하는 내색을 보이거나 짜증을 내는 일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어떤 일이든 아이 앞에서는 웃겨 보이는 코미디언을 자처해 아이의 미소를 샀고 아이가 환하게 미소짓거나 꺄르르 소리내어 티없이 웃을 때
내 행복은 배가 되었다.
그 덕이 있었는지 윤우는 감사하게도 언제나 웃음이 많았고 사랑많은 미소를 여기저기 날려 보내곤 했다.
길가를 지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거리낌없는 미소를 멈춰 서서 한참을 날려 보내는 것이다.
그럼 다들 그 조그만 것이, 티끝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보내는 것이 귀여워 웃음을 참지 못하셨고 예뻐하셨다.
어린이집에 처음 보낸 뒤 여태껏, 언제나 선생님께서는 “윤우가 정말 너무너무 잘 웃어요~~ 너무 잘 웃으니, 어찌나 예쁜지 모르겠어요~!!”
하시며 가끔은 나보다도 많을 거 같은 윤우 사진을 가득 담아 알림장에 올리곤 하셨다.
그렇게 펼쳐보는 알림장에는 언제나 두 눈이 사라질 듯 행복하게 미소 짓는 윤우가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아이에게 소리를 치는 날이 생겨버렸다.
똑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어주는 게 지쳐 “윤우야. 그만 읽으면 안 될까? 엄마도 진짜 힘들어.” 하며
아이 앞에서 한숨을 푹푹 쉬는 날도, 힘든 내색을 숨기지 못하던 날도 생겼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사람인데….
어떻게 매일매일 미소만 지으며 아이를 대할 수 있겠어.’
18개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점차 자기주장과 자기표현이 강해지는 시기가 왔고
마냥 순하던 윤우에게도 떼씀과 자기만의 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고 그 표현이 당연하기도 한데, 아니, 이 시기에 있어 가장 건강한 표출방식인데도
가끔 그 떼씀을 감당하고 인내하는 데에 내게 한계가 오는 날이 생겼다.
돌아보면 그것 역시 다 아이를 위하는 마음과 엄마로써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마음과 아이의 떼씀이 충돌하면
내 마음같지가 않아 지치고 힘들어, 아이에게 훈육이 들어가는 것이다.
요즘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훈육’의 정도, 적절한 시기와 상황을 구분하는 것인데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이 시기부터 잘못된 것을 바로 잡지 않으면
혹여나 아이가 도덕적인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게 그릇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조바심까지는 아니지만,
늦은 훈육이 들어가면 아이에게 혼란을 가져다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제는 마냥 웃기만 하고 받아주기만 하는 착한 엄마여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그것이 아이에게 되려 혼란을 준 건 아닐까.
아니면, 나를 안전기지로 생각하던 아이의 마음에 신뢰가 깨진 건 아닐까.
지난 날의 나를 반성했다.
그랬더니 돌아서서 아이에게 미안했던 그 날들이 떠올랐고 나는 아이에게 화를 냈던 순간들에 마음이 아렸다.
왜 나는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자책과 후회는 그만하기로 하고,
지금의 우리의 모든 순간들을 더 더 소중하게 여기기로 했다.
언제나 소중했지만, 가끔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순간 마음가짐을 잃어버리는 때가 오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