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지개를 볼 거야, 이 세상 모든 무지개를.
얼마 전, 윤우의 지문적성검사 결과지를 받았다.
‘이 어린아이의 지문으로 기질을 파악한다는 게 말이 될까. 근거가 없을 거 같은데.’
기관에서 어린이집으로 무료진행되는 검사였다.
모든 부모에게 검사 신청을 받고 있었는데,
물론 나는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근거가 없어 보이는 검사 하나로 아이를 어떤 기질로 판단하는 것이 싫었고, 지문으로 기질이 나온다는 것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랬더니 한 날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어머니, 이거 무료이기도 하고, 뭐든 알아 놓으면 좋으니까요. 한번 받아보세요. 신청 눌러주세요~!”
그렇게 큰 관심 없이 신청하게 된 지문적성검사.
잊고 지내다 며칠 뒤, 윤우의 어린이집 가방 안에 결과지가 함께 들려있는 걸 보았다.
호기로움도, 흥미도 없이 종이를 펼쳐 읽어나가다가
이내 놀라움과 뒤이어 묘하고 이상한 수많은 복합적인 감정이 내 안에 밀려왔다.
놀라울 정도로, 너무도 나와 같은 기질이 나와 있는 거였다.
감성이 풍부하고, 창의적이며 충동적이기도 합니다. 정서적인 반응이 민감한 편으로 감정반응이 강렬하고 낭만적이며 신뢰와 온화함으로 대인관계 맺기를 좋아합니다.
호기심이 많고 대인관계를 중시하며,
타인과의 협력을 잘하는 성격으로 포용력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들어주며, 수용을 잘하는 편으로 단체에서 인기도 많고, 적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다양하고, 분쟁이 있을 시 조정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나친 배려로 결정력이 부족할 수도 있으며 직접적인 거절이 어려운 유형입니다.
유행에 민감하고 창의력이 뛰어나며, 타인의 아픔을 예민하게 느끼고 연민이 많은 편입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부드러운 대화 나누기를 좋아합니다.
단체 활동과 융화를 중요시하며 대인관계도 충실합니다.
상대방의 거절을 두려워하며 소외당하는 느낌을 매우 힘들어 합니다.
인내심과 감정 조절 능력이 약하며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입니다.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결단력과 추진력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받는 원인:
반복적이고 고정화된 일을 해야 할 때
타인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상대에게 거절당할 것을 우려하여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지 못할 때입니다.
지문 하나로 이렇게도 세세하고 명료하게 적성결과가 나올 수 있나, 의문이 들다가도 이미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나와 같을 수 있지?”
“어떻게, 이렇게 섬세할 정도로 나랑 같을 수 있지?”
“이거, 정말 신빙성이 있는 걸까? 정말로 무언가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걸까?”
종이를 꼼꼼히 읽어나가고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나와 너무도 같은 아이의 적성결과지에 놀라움을 느꼈다면
점차 마음이 이상하게 아프고 속상한 기분으로 변해갔다.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
길고 긴 결과지에서 내 눈에 띈 문장.
[감성이 풍부하고, 대인관계를 중시하며, … 지나친 배려로 결정력이 부족할 수도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예민하게 느끼고 연민이 많은 편입니다…]
나는 언제나 내 성격이 힘들면서도 좋았다.
인풋이 많고 안테나가 예민해 보이는 것도 많았고 그만큼 눈치를 보는 것도 많았으며 사람을 좋아해서 언제나 나 자신보다 상대를 먼저 맞춰가느라 애쓰던 시기도 길었고 무엇보다 배려로 둔갑된 내 성격이 결국 스스로 상처로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보이는 게 많아서 남들보다 행복이 많았고, 상처나 외로움, 슬픔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생기기 전부터, 때때로 상상을 해보면 언제나 내 아이가 나와 같은 성격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힘든 것들이 많기도 하지만, 세상의 다양한 많은 것들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더 즐거운 시각을 누릴 수도 있으니까, 아이에게 무지개와 같은 즐거운 삶이 가득 차길 바랬다. 그리고 그것들을 아이와 내가 함께 나누고 공감해도 참으로 즐겁고 행복할 거 같다고 줄곧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완전히 반대인 것이다.
“윤우가.. 조금 더 이성적이길 바랬는데..
윤우는, 조금 덜 감성적이고 조금은 더 이기적이고 조금은 무딘 아이이길 바랬는데..”
나도 예상치 못한 내 속마음이 튀어나온 거다.
그런 마음이 내게 있는지 몰랐는데 나는 이 순간 나도 몰랐던 한켠의 마음을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이 성격을 지니고 살아가면서, 좋은 점도 많았지만 유달리 상처받는 일이 많았다.
그 상처를, 아들이 똑같은 감정으로 똑같은 상황에서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죽어도 싫었다.
이미 내가 겪어봤으니까,
이 기질에서 받는 상처는 어떤 상황들일 것이며 어떤 감정일 것인지 너무도 잘 아니까,
그것만큼은 아이가 겪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채우면서 이내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 문득 생각했다.
“이 적성검사가 다가 아니지만,
크면서 보는 윤우의 기질 역시 이와 같다면
나는 어쨌든 그것이 무엇이든 아이 그대로를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고 당연하게도 그럴 텐데. “
당연하게도,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 모든 것이 사랑스러울 것이다.
그럼 다시 생각해 본다.
“나의 감성적인 면, 사람을 좋아하는 면, 안테나가 많고 예민한 것들이
나를 약하게만 만들었을까?”
“그런 내가 힘들었던 것도 있었지만 좋았던 건 얼마나 많았나.
내가 보이는 세상의 수많은 알록달록함을 아이에게도 얼마나 전해주고 싶어 했었나.
매일매일 그런 순간이 내게 있지 않았던가.
우린 이제 그걸 함께 나눌 수 있게 된 거 아닐까?”
“나를 힘들게 만든 게 있었다면, 윤우는 덜 겪도록 알려주고 더 현명하게, 오히려 더 멋지게 이겨내서 성장해 낼 수 있도록 내가 이미 겪어봤으니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이 예민함이 아이에게 굉장한 창의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여정 속에서 내가 도와줄 일들은 아주아주 많겠다!!!”
“윤우의 이타심과 배려심 덕분에 다양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고, 작은 일에도 감동받을 줄 알고 그걸 또 베풀 줄 아는 사랑 많은 아이로 자란다면, 그건 약함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단단함이 아닐까?”
이 자그만 결과지 하나로 생각했다.
윤우가 나와 같은 성격이라도 너무 좋겠다고.
우린 더 많은 무지개들을 나눌 수 있겠다고.
같이 사랑을 더 많이 나누며 살아갈 수 있겠다고.
우리가 함께 더 멋지게 성장할 수 있겠다고.
더 즐거운 인생을 꾸려 나갈 수 있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지금의 내 인생 역시 힘을 또 받아본다.
윤우야, 역시 엄마는 엄마 성격이 좋았어.
엄마, 위축되지 않고 더 열심히 성장해 볼게.
우리 즐겁게 성장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