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지다니…
낱말카드와 사운드장난감을 흔들며 온몸으로 아이 밥을 먹이느라
모처럼 휴가맞이 호캉스로 떠난 호텔 뷔페에서도 몇 숟가락 겨우 겨우 뜨던 나.
여기저기 아무리 둘러봐도 아이의 식탁 위에 뽀통령이 안 틀려 있는 테이블이 없는데도 ‘결단코 미디어노출은 아니다!’ 굳은 다짐으로 뿌듯하게 나 자신을 남몰래 칭찬하던 나.
밥태기가 오는 시기에는 어떻게 해도 밥을 안 먹으니 내 마음 몰라주는 아이 앞에 온 마음이 애끓던 때,
30분을 넘게 실랑이를 하다가도 밥 먹을 기미가 안 보이면 ‘이럴 때 뽀통령을 등장시키면 시선이 분산돼 먹기라도 할 텐데!’ 잠깐의 유혹도 있었다.
끝내 한 시간을 어르고 달래 끈질기게 밥을 먹이며
혼미하게 지치다가도, 옳은 방식으로 잘 인내했다며 스스로를 뿌듯해하던 나.
돌이 막 지나고 떠난 첫 해외여행 비행기 안.
아이가 갑갑해 울고 떼쓸 때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 건 죽어도 싫은데 그렇다고 미디어노출에 지기도 싫어, 윤우를 안고서 장장 한 시간을 서서 비행기를 탔던 나.
수많은 유혹의 순간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굳건한 육아철칙으로 ‘이것만큼은 지켜낼 거야!’라는 다짐, 내가 편하자고 마냥 편한 길만 선택해서 아이에게 해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나의 확고한 마음가짐.
그것들로 나는 매번 쉬울지도 모를 길을 돌고 돌아 어르고 달래고 몸을 쓰고 에너지를 쓰며 윤우와 함께 했다. 미디어노출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뿌듯하게 지켜온 철칙이었는데….
결국 이 굳건하고도 육아에 있어서 내밀한 자랑이었던 내 철칙은
윤우의 19개월 차, 입원실에서 무너져버렸다!!!
어린이집에서 바이러스를 옮아와 인생 두 번째 입원생활을 보내게 된 아이.
이번엔 폐럼에 중이염까지 와 5일이나 병원에 있게 되었다.
남편이 함께 있는 주말은 한 명이 링거대를 잡고 윤우를 따라다니며 케어해 줄 수 있어, 다른 한 명이 여러 일들을 움직여낼 수 있지만
혼자 있는 평일에는 윤우를 돌보며 다른 일들을 해내기에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링거대를 잡고 아이를 품에 안느라 두팔이 없는 나는
병실 내에서 해야 하는 각종 일들, 식기를 식기대에 반납한다던가 아이물컵을 설거지한다던가 밤새 많이 맞은 수액으로 가득 새어버려 축축해진 이불과 옷들을 새것들로 교체한다던가 기저귀들과 각종 분리수거용품들을 탕비실에 가서 버려야 한다던가 하는 일은 도통 할 새가 나오지 않는 거다.
거기에 마냥 뛰어다니며 움직이기 좋아하는 시기에 병실에만 갇혀있으니 아이가 나가고 싶어 갑갑함을 느끼는 순간이 계속해서 온다.
윤우가 좋아하는 책을 수십 권이나 챙겨갔으나, 책을 수없이 읽고 또 읽어줘도 시간은 멀찍이도 남아있다.
아이가 신나게 꺄르르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재밌게 놀아주고자 할 때면 병실 안에서 꼭꼭 숨어라! 놀이를 시작하는데 그것 역시 링거대를 잡아줄 사람이 있어야 하니 남편이 함께 있는 날만 가능하다.
그래도 힘을 내어 이것저것들을 해내어주며 며칠을 버티다, 퇴원하는 날.
기어이 나는 두 손을 다 들고 말았다.
미디어노출에 져버린 것이다!
아침으로 나온 식기를 반납대에 두 번을 왔다갔다하며 반납해야 하는데 반납대가 하필이면 우리 입원방과 거리가 멀었고
탕비실까지 갈 시간이 나지 않아, 방 한켠에 비닐로 꽁꽁 싸둔 기저귀들을 한데 모아 탕비실에 버리러 가야 했으며!
5일간의 윤우 짐과 내 짐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캐리어에 넣어야 했고
마지막 진료를 보고 난 뒤 눈물이 체 멎지 않아 속상하고 아픈 아이를 기분 좋게 달래야 했다.
퇴실시간은 다가오는데 내 손은 열개라도 부족하니,
일단 안아달라고 보채는 아이를 앉혀두는 게 우선이었는데 그러자니 이번엔 두 손을 안 들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나는 (눈물을 머금고) (몇 번이나 다시금 다른 방법을 고안했다가) (한 손으로 윤우를 안고 한 손으로 짐을 정리할까도 생각해 보았으며) 아이패드를 꺼내 들어
윤우 앞에 그간 소리로만 들어왔던 (노래 트는 낱말카드는 수두룩해, 뽀로로 노래는 수없이 들어왔더랬다. 푸하하) 뽀통령을 눈앞에 실물로 마주해 주었다.
그러자 윤우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아이는 그 자리에서 (아이패드 앞에서) 몇 분동안을 앉아있었다.
그 뒷모습이 짠~하기도 하면서, 어쩐지 중간중간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려오니 내 마음도 행복해지기도 하면서, 결국은 미디어에 졌다는 절망감도 더해져
윤우가 뽀통령과 함께 하는 사이 바지런히 몸을 움직여 빠르게 정리해 나갔다.
“그래, 오늘만… 오늘만은 괜찮아.”
+조금 흥미로운 말을 덧붙이자면
윤우는, 미디어에 아직 익숙하지 않고 되려 낯선 편이기도 하고 엄마 아빠와 바깥 놀이, 책 읽기가 훨씬 더 익숙해서인지
뽀통령을 틀어주어 잠시간 즐겁게 보긴 했지만 이내 그것이 피곤했는지 곧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책을 찾았다
그 모습을 보고 굉장히 안도하기도 했고 기특하기도 했고 어쩌면 이렇게 아주 가끔, 잠시 정도는 색다른 즐거움으로 틀어줘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렇게 어쩔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일 때만.
입원하기 며칠 전,
마침 윤우의 어린이집 부모상담기간이 있었다.
혹여나 내가 모르는 아이의 다른 모습을 마주하거나 들을 일은 없을까 조금은 긴장도 하며 향했던 상담시간에
나는 이전과 같은 안도감과 행복감으로 가득 채워 어린이집을 나올 수 있었다.
ㅡ너무 순한 아이, 책을 너무 좋아하는 아이, 지금 개월에 맞게 고집과 자기주장이 생기는 아이, 너무 잘 웃는 아이.ㅡ
그 얘기들 끝에 선생님께서 조심스레 물어온 말이 있었다.
“어머님, 모두에게 물어보고 있는데요. 혹시.. 윤우는 미디어를 보나요..?”
“아, 아니요. 미디어노출은 일체 금지예요. 이건 저와 남편 모두 너무 완강한 부분이거든요. 왜 그러세요~?”
“아유, 다행이에요.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혹시나 싶어 모든 어머님들께 여쭤보고 있는데, 어머님 너무 잘하고 계세요.
아무리 힘들어도 미디어노출이 빠르게 이루어지면 많은 것들이 안 좋아요. 윤우는 책도 너무 잘 읽고 집중력이 좋은 데다가 몰두하는 힘이 있으니 계속 그렇게 애써주세요. 아주 잘하고 계세요.”
상담을 나오며 다시 한번 더 확신하며 뿌듯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 잘하고 있어! 우리 가족, 잘하고 있어!!‘
육아에서 가장 핫한 화두 중 하나인 ‘미디어노출’.
육아 방식과 방향에 대해 거의 모든 생각이 같은 우리 부부가 그중 가장 완고한 부분이 바로 ‘미디어노출은 최대한 늦게!’이다.
생각해 보니 남편이 미디어노출을 완강하게 늦추자는 의견을 피력하는 이유는 모르지만, 나의 이유는 이렇다.
먼저, 미디어에 너무 빨리 익숙해지면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리고 수동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미디어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는 것이다.
이건 여러 매체에서 다룬 ‘일찍 미디어에 노출되면 안 되는 이유’중 하나인데 그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하는 힘을 어릴 때부터 잃어버리고 빠르게 변하고 주입하는 설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지면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힘을 기르는 게 어려워질 거라 생각했다. 이건 깊고 무겁게 생각할 것도 없이, 주도적이고 자립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사라진다는 것은 성인이든 아이이든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그런데 그걸 어릴 때부터 겪게 할 이유는 더더구나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아이가 떼쓸 때 미디어노출로 달래기 시작하면 오히려 나중에는 미디어노출을 시켜달라고 떼쓰는 일이 역으로 일어난다는 얘기를 여러 군데에서 많이 듣고 봐왔다.
아이를 어르기 위해 미디어를 틀어주던 버릇을 하다 보니 어느새 아이가 미디어를 못 볼 때 떼를 더 많이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럼 그 아이를 달래기 위해 또 미디어를 노출시키는 일이 반복되면서 미디어중독이 된다. 미디어중독은 초등학생과 같은 아이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요즘은 아주 어린 3-4살 아이에게도 많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이 심각성이 커, 뉴스에서도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 여럿 화제를 올려둔 일이 많았다.
결국, 미디어노출은 어쩌면 엄마 아빠가 더 편하게 육아를 하기 위해,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엄마 아빠가 편하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닐까?
물론 너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나도 알지만, 좀 더 편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위험에 빨리 노출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맞바꿀 편함은 아니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래도, 우리는 때때로 정말 어쩔 수 없는 순간을 마주하니 그럴 때는 아주 잠깐. 허용하도록 해보자.
그런 순간이라면 찰나의 즐거움 정도로 그치지 않을까!